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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수Momosu Oct 14. 2024

나의 앨리스

도서관 낡은 책들 사이에서 앨리스를 만났다



 앨리스는 거기에 있었다. 나는 그림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학교 도서관의 원서코너에는 영어로 된 특별한 책들이 많았다. 내가 읽을 순 없지만 볼 수 있는 많은 아름다운 그림책들이 말이다. 책의 모양새도 다양하고 책 자체로도 충분히 감탄스러웠다. 피카소의 그림도 샤갈의 그림들도.


 도서관에는 원래 오래된 책들이 많기 마련이지만, 원서 코너에는 특히 고서가 많았던 것 같다. 원서는 흔히 보이는 익숙한 한국출판 책과는 달랐다. 종이의 질, 디자인이 달랐다. 그 이국적인 사물들은 나는 사로잡혔다.      

  여느 때처럼 영어책의 신기한 형태들을 보면서 원서책들을 지나가다가 오래된 앨리스 책을 찾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그 책 말이다. 양장된 책이었다. 종이는 누렇게 변해있었지만, 인쇄된 글씨는 알아볼 수 있었다. 글자들 사이에 그림도 있었다! 아, 읽을 수 없는 문자들 사이에 눈 둘 수 있는 그림이라니. 그 안도감이란.      


 조용한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낡은 앨리스 책 속 존 테니얼의 그림을 나는 그렇게 만났다. 마치 밭에 감추인 보석처럼.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은 운명적 장면이다. 나는 그 오래된 앨리스책을 도서관에서 빌렸고, 반납할 때까지 잘 보았다. 한동안 그 책을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다. 삽화 사진도 찍고 책의 모양도 사진 찍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이 어느덧 20년 전의 일이다. 그때 찍었던 앨리스책의 사진은 결코 켜지 않는 외장형 대용량 하드디스크의  폴더 속에 남아 있으려나. 아마도 그 시절 싸이월드에는 흥분한 20대의 격앙된 감탄사가 사진과 함께 게시물로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나의 영어책 사랑의 시작점은 그때였던 듯하다. 이색적이고 새로운 모양의 다른 나라에서 만든 책들이 흥미로웠다. 마치 외국 여행을 같이. 그리고 그 책 속의 글자도 언젠가는 읽고 싶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20년 전 앨리스 영어책을 발견하고 기뻐했던 청춘은 어떻게 되었을까?      


당신이 대학생이라면, 대학의 도서관 원서코너에서 오래된 영어책을 살펴보라. 그리고 거기서 앨리스책을 찾아라. 책 속에서 그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꼭 앨리스가 아니어도 괜찮지만, 앨리스를 추천해 본다. 삽화가 있는 이야기책이니 말이다. 그 기분을 당신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고요한 도서관에 아무도 찾지 않는 잠자는 책들의 숲에서 발견한 반짝이는 보물을. 꼭 대학 도서관이 아니어도 어쩌면 국회도서관이나 동네 큰 도서관에서도 그것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여러분도 아마 흥분되는 일이 될 것이다. 과거의 미지의 나라의 한 조각을 발견이라도 한 듯이 말이다.     


  지금, 도서관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화려한 패턴의 에스닉한 치마를 입고 보라색 스카프를 두른 어린 나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그 때의 순간을 나는 지금 잔잔히 기억하지만, 그냥 평범한 하루이기도 했다. 그 날의 기억이 지금 의미가 갖는건 이제는 그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인생의 지나갔던 잔잔한 한 장면은 시간이 지나 현재와 공명하며 의미를 갖게 되었다. 빛을 발하게 되었다. 마치 운명인 듯이. 앞으로 나의 인생은 지금부터 써내려가는 나의 발걸음으로 또 과거와 공명하며 의미를 만들어갈지 모르겠다. 아무일 아닌 당신의 오늘 하루도 사실 미래에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될지 모르겠다.




<사진출처: 칠복선사https://7-luck.tistory.com/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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