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9일(월)
퇴근 후 현관문을 열면 시곗바늘은 이미 하루의 끝을 향해 가차 없이 달려가고 있다.
아이와 오롯이 마주 앉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세 시간 남짓. 그 짧은 틈바구니 속에서도 저녁을 하고, 고양이들에게 약을 먹이고, 잠자리를 갈무리하다 보면 정작 아이의 눈을 진득하게 바라봐 줄 시간은 30분도 채 남지 않을 듯하다.
아윤이는 만족하지 못하다는 표정으로 침대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나 아직 못 놀았는데!"라며 터뜨리는 울음은 단순히 잠들기 싫어하는 투정만은 아니었듯 싶다. 함께 있어도 함께 있지 못한 듯한 공백, 그 허전함을 채워주지 못한 미안함이 워킹맘인 나의 마음을 짓누를 때가 가끔 있다.
변화는 의외로 사소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하루 5분, 식탁에 마주 앉아 보드게임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무언가를 함께 '하고 있다'는 그 명확한 행위 자체가 아윤이에게는 커다란 안심이었나 보다. 자러 가기 싫다며 부리던 억지가 잦아들 무렵, 우리는 매일 한 장씩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예쁜 추억을 기록하는 일기가 되길 바라는 엄마의 욕심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아윤이는 이제 기록의 의미보다 '만드는 행위' 그 자체에 푹 빠져있다. 오리고, 색칠하고, 손길 닿는 대로 스티커를 붙인다.
어떤 날은 일기였다가, 어떤 날은 정체불명의 그림 조각이었다가, 주제는 매일 제멋대로 자리를 잡는다.
책을 만드는 건 아윤이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다. "엄마는 여기를 만들고 나는 여기를 그릴게"라거나 "좋은 생각이 났어! 여기에 별 스티커를 붙이는 거야!"라며 조잘대는 아이를 보면, 함께 무언가를 완성해 간다는 감각이 아윤이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모양이다.
가끔은 마음처럼 꾸며지지 않아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그럴 때 슬쩍 빈 종이를 건네며 망친 그림 위에 덧붙여 다시 그릴 수 있다고 일러주면, 아이는 금세 눈물을 닦고 "그거 참 좋은 생각이네" 하며 웃는다. 실수한 자리 위에 새 종이를 덧대듯, 우리의 시간도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 걸까.
한 장일 때는 힘없이 펄럭이던 종이들이 겹치고 쌓여 제법 묵직한 두께를 만들어내고 있다. 매일의 짧은 30분이 켜켜이 쌓여 아이의 마음속에 어떤 문장을 새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훗날 이 낱장들을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날, 아윤이는 알게 될까. 제 손으로 채워 넣은 이 종이 뭉치들이 그리 대단한 기록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차곡차곡 모아본 사람만이 느끼게 되는 뿌듯함을.
형태가 무엇이든 기록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라 믿는다. 글이나 그림, 혹은 사진이나 영상처럼 겉모습은 달라도 그것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묵직한 가치는 훗날 삶을 지탱하는 커다란 자양분이 되어줄 것이다. 나는 아윤이가 그 힘을 몸소 느꼈으면 한다.
그리고 훗날 훌쩍 커버린 아윤이가 무언가를 다시 기록하게 될 때, 어렴풋하게나마 이 시간들을 떠올려주길. 엄마 아빠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책을 만들던 그 저녁의 온기가, 아이의 인생에 찾아올 고단한 날들을 버티게 할 따뜻한 힘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