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 곁에 남는 사람

2026년 2월 12일(목)

결혼 전의 나는 스스로 꽤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었다. 글로벌 대기업의 최연소 팀장, 자정이 넘은 퇴근과 누구보다 먼저 불을 밝히던 사무실. 주말도 없이 전우애 같은 동료애로 뭉쳐 일에 파묻혀 살던 시간들. 고되었지만 그 치열함이 곧 성공의 증거라 여겼다.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에 결혼은 나와 먼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운명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두 시간이나 늦어버린 소개팅. 보스의 갑작스러운 호출로 소개팅남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했던 그날, 그는 화를 내는 대신 나를 기다려 주었다. 고양이 이야기로 밤이 깊어가는 줄 몰랐던 소개팅남과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다. 데이트 도중에도 회사로 불려 들어가는 나를, 그는 늘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인생의 가장 화창한 날에 예고 없는 폭풍이 찾아왔다. 임신 7개월, 아이를 먼저 보내주기 위한 시린 진통을 겪어야 했다. 한 평 남짓한 방 안에서 가족들이 들을까 숨죽여 울다가도, 어느 날은 세상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그 암흑 같은 시간 속에서 남편은 또다시 나를 기다려 주었다. 본인의 마음도 무너졌을 텐데, 그는 언제나 나를 먼저 안아주었다.


그 후로 아이를 기다린 4년의 세월.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일이 반복될 때마다 남편은 늘 내 편에 서 있었다. 내가 힘들면 그만두는 것이고, 내가 원하면 다시 해보는 것이라며 나의 속도에 자신을 맞추어 주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변함이 없다. 늘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 주는 사람.



나는 아윤이가 언젠가 자립해 떠나갈 존재라는 것을 안다. 제 날개가 단단해지면 자신의 하늘로 날아가 버릴 아이. 하지만 남편은 다르다. 아이가 떠나간 빈자리에는 결국 신혼 초의 우리처럼 단둘이 남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윤이도 소중하지만, 남편이 더 귀하다 생각하려 애쓴다. 부모로서 마음의 첫 번째 자리는 당연히 아이겠지만, 의식적으로라도 나의 첫 번째는 남편이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곤 한다.


아윤이가 천진하게 묻는다. "엄마는 아빠가 좋아, 내가 좋아?"


나는 한순간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엄마는 아빠가 제일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