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4일(토)~16일(월)
명절을 맞아 대가족이 무주로 향했다. 시부모님과 형님네 식구들까지, 열 명 남짓한 인원이 모여 고기를 굽고 왁자지껄하게 시간을 보내니 명절 특유의 기분 좋은 소란스러움이 방 안 가득 차오른다. 불과 3주 전 용평 스키장에 다녀온 터라, 이번 여행에서도 자연스럽게 아윤이의 두 번째 스키 레슨에 모두의 관심이 쏠렸다.
아윤이는 태생적으로 조심성이 많은 아이였던 것 같다. 걸음마를 떼던 시절에도 놀이터 한편에서 또래 친구들이 뛰노는 모습을 가만히 관찰하다 돌아오곤 했다. 가구 모서리에 몸을 부딪치는 일조차 드물 만큼 매사에 신중했다. 그런 아이가 40개월을 넘어서며 조금씩 활동적으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지난 여행에서는 기특하게도 첫 스키 수업을 끝까지 마쳤다. 사실 중간에 당연히 나오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스키 재밌어"라며 끝까지 수업에 참여했던 아이에게 내심 기대가 생겼나 보다. 이번에도 당연히 잘 해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스키장에 들어서자마자 아윤이는 돌연 타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우리는 아윤이에게 조용히 일러주었다. "타기 싫으면 중간에 나와도 괜찮아. 하지만 선생님과 이미 약속을 한 것이니, 일단 가서 수업에 참여는 해야 해."
평소에도 우리는 아윤이에게 다른 사람과의 약속, 선생님과의 약속은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임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아직 아이에게 약속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에 불과하겠지. 아윤이는 한참을 망설이다 알겠노라 고개를 끄덕이며 수업에 들어갔다.
한 시간 뒤,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아윤이가 다리도 아파하고 힘들어서 더는 못 타겠다고 한다. 결국 슬로프를 한 번 오르고 수업은 끝이 났다. 처음 용평에서 스키를 탔을 때에는 중간에 나와도 괜찮다고 생각했으면서, 한 번의 성공을 맛보고 나니 어느새 내 마음의 잣대는 아이의 보폭보다 앞서 나가 있었던 모양이다. 서운함일까 조급함일까. 아이에게 어떤 말을 먼저 건네야 할지 수없이 많은 문장을 고르고 골랐다.
우리는 아이가 스키 장비를 챙겨 나갔던 그 모습을 칭찬해 주기로 했다. 비록 스키 실력은 늘지 않았을지 몰라도, 비록 20만 원이라는 거금이 날아갔다 생각할 수 있을지 몰라도, 아윤이는 오늘 그 아이의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것을 지켜냈을지도 모른다. 하기 싫은 마음과 몸의 고단함을 이겨내고, 끝내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려 슬로프 앞에 섰던 그 마음. 결과보다는 아이가 내딛기 싫었을 그 첫발을 생각하기로 했다. 하기 싫은 마음을 누르고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려 장비를 챙겨 나갔던 그 용기를 먼저 봐주기로 했다.
빠르게 설원을 내려오는 기술보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약속의 자리에 서는 법을 먼저 배워가고 있는 아이. 세상은 늘 빠르게 나아가라 재촉하지만, 모든 꽃이 같은 계절에 피지 않는다. 조심스레 세상을 살피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재촉하는 손길이 아니라, 느린 걸음 뒤에 서 있는 든든한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속도는 틀린 것이 아니라, 그저 아윤이만의 리듬일 뿐임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본다. 돌아오는 아윤이를 향해 환하게 웃어줄 준비를 했다. "아윤이 오늘 정말 대단했어. 힘들더라도 선생님과 약속을 지킨 아윤이, 정말 멋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