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1일(토)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늘 바쁜 사람이었다. 여행지에서조차 피곤에 겨워 잠들어 있거나,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출장지로 떠나던 뒷모습이 내 유년의 풍경이었다. 아버지를 좋아했지만, 거실 바닥에 나란히 앉아 무언가를 조물거렸던 소소한 기억은 성글기만 하다. 그 시절, 오빠와 나를 홀로 감당해야 했던 엄마의 고단함을 이제야 내 육아의 무게로 가늠해 본다.
그래서인지 퇴근 후 온전히 아이의 세계로 입장하는 남편의 모습은 내게 늘 생경한 감동을 준다. 그는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눈높이에서 기꺼이 '함께 노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며칠 전부터 과자집을 만들자고 성화를 부리던 아윤이는 이른 주말 아침, 곤히 자고 있는 우리를 깨운다. 아빠는 마지못해 침대에서 일어나 아윤이의 손을 잡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품 가득 과자와 초콜릿, 젤리를 안고 돌아온 부녀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무언가를 만드는 손재주가 전혀 없는 나는 그저 한 발치 뒤에서 그 풍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식탁 위에 펼쳐진 물엿과 과자들. 남편은 끈적이는 물엿을 접착제 삼아 조심스레 과자 벽을 세웠다. 정작 만들자고 졸랐던 아윤이는 아빠 곁에서 응원가만 부르다 이쑤시개로 물엿을 콕콕 찍어 먹기에 바쁘다. "네가 만들자며, 왜 먹기만 해." 나의 핀잔에도 아이는 그저 해맑게 웃는다. 달콤한 냄새가 거실을 채우고, 점점 제법 그럴싸한 집이 완성되어 가는 동안 아윤이의 마음속에는 아빠와 함께한 시간의 조각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나 보다.
남편은 일 년에 두 번, 아윤이를 데리고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다. 처음에는 1박 2일로 시작했던 여행이 아빠들의 자신감이 붙었는지 이제는 제법 긴 2박 3일의 여정이 되었다. 엄마 없이 아빠와 딸, 단 둘이 떠나는 여행이 반복될수록 아이의 내면에는 어떤 무늬가 새겨지고 있을까.
문득 아윤이는 참 행복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갖지 못했던 풍경을 일상으로 누리는 아이.
훗날 어른이 된 아윤이에게 꼭 한 번 묻고 싶다. 너의 기억 속에 머무는 아빠와의 시간들은 과연 어떤 기억이었는지. 아빠와 함께 지은 과자집,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세상을 함께 걸었던 이 소소한 추억들이 아윤이의 삶에 단단한 씨앗이 되어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