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작별

2026년 2월 19일(목)

밤늦게 본 유튜브 영상 하나가 마음을 일렁이게 했다. 숨을 헐떡이는 강아지를 품에 안고 어쩔 줄 몰라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와, 곁에서 담담히 고마웠노라, 사랑했노라 속삭이며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부모의 낮은 목소리. 그 담백하고도 깊은 이별의 장면 앞에서 나는 한참을 울었다.


우리 집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유난히 마음이 시렸던 신혼 시절, 내 곁을 지켜준 고마운 친구들이다. 하지만 첫째 쿤이는 태어난 지 일 년 만에 선천성 심장병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Intermediate AV canal defect'. 이름조차 생소한 병명. 길어야 한 달을 버티기 힘드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선고는 나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날 이후 나의 시계는 조금 다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언제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아이를 보며 나는 '죽음'을 준비하는 대신 '오늘'에 충실하기로 했다.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슬픔이 아니라 다짐이 되었다. 외출할 때 잊지 않고 건네는 인사, 돌아와 마주하는 평범한 눈 맞춤, 매일 함께 노는 시간처럼 자칫 생략할 수도 있는 사소한 일들을 거르지 않고 꼭 챙기는 것. 그리고 눈을 마주칠 때마다 사랑을 듬뿍 표현해 주는 것. 그것이 내가 쿤이와 아리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었다.


성격이 온순하고 예민하지 않은 쿤이는 다행히 그 세월을 잘 버텨주어 어느덧 7년이 흘렀다. 이제는 아윤이가 소꿉놀이 의자에 쿤이를 앉혀두고 놀 정도로 둘은 늘 붙어 지낸다. 아윤이가 프뢰벨 수업을 하는 동안에는 책상 위에 누워서 함께 수업을 듣고, 거실에서 낮잠을 자는 동안에는 아윤이 옆에 붙어 함께 잠을 자기도 한다. 그런 둘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다가올 이별의 그 어떤 순간을 떠올리게 된다.



남편과 나는 쿤이와 아리의 마지막 순간을 아윤이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누군가는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트라우마가 되지 않겠느냐고 묻겠지만, 나는 그것이 아이가 감당하며 배워야 할 삶의 무게라고 믿는다.

사랑하는 가족을 보내주는 법, 슬픔을 마주하고 애도하는 법, 그리고 이별이 비단 공포가 아니라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최선의 예우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우리는 그저 곁에서 나지막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아이의 손을 잡아줄 것이다. 떠나는 이가 우리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평온히 길을 떠날 수 있도록. 그리고 남겨진 우리가 서로를 보듬으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