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 육아의 적인가

큰 아이의 아토피 덕분에 사람 됐다

by 루시골드

내 딸은 아토피언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홉 살이 된 지금까지 하루도 이별한 적 없는 아토피.


아토피를 육아의 적으로 두고 싸울 때마다 다름 아닌 나 자신을 많이 발견합니다. 아토피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임을요.


나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입니다. 나에게 맡겨진 임무/일이면 반드시 해냅니다. 어떤 방법을 쓰든 일단 그건 해내고 봅니다. 그 일을 하는 동안 찾아오는 ‘하고 싶은 일’도 모두 그 임무를 해내야만 할 수 있고, 그 임무를 생각한 데드라인 내에 해내지 못하면, 하고 싶던 그 일도 같이 밀려납니다. ‘ㅇㅇ하면 ㅇㅇ할 거야’ ‘ㅇㅇ해야 ㅇㅇ할 수 있어’라는 조건부 삶으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책임감을 다하지 못하면 그 무엇도 누릴 수 없는 삶 속에 나 자신을 가두고 살았습니다.


수능을 준비하는 고등학교 시절은, ‘수능이 끝나야만’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대학에 가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매일 술 마시고 놀았습니다.


논문을 쓰고 고시를 준비하던 대학원생 때는 ‘고시에 합격해야만’ 여행도 다니고 연애도 맘껏 하고 효도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처음 친 임용고시에 탈락하자마자 덜컥, 임신-결혼-출산-육아의 직행열차에 올라탔습니다.


출산을 준비하는 임신 기간에는 ‘출산과 모유수유가 끝나고 나서’ 맛있는 것도 먹고 친구도 만나고 나로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첫 아이 모유수유가 끝나고 이제 말 좀 통한다 싶으니 둘째가 찾아왔습니다.


나는 주어진 현재와 존재를 오롯이 즐겨본 적이 없었습니다. 두 아이에게 그런 삶을 은연중에 물려주고 있었음을 깨달았을 때, 섬뜩했습니다.


"이거 다 하면 과자 줄게"

"밥 잘 먹으면 이거 해줄게"

"아토피 다 나으면 먹을 수 있어"


육아하며 어느 정도의 협박 스킬(?)이 필요한 게 현실이지만, 나는 이런 조건부 삶을 통째로 아이에게 물려주고 있었습니다.


숨 막힐 듯한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자신을 옥죄며 살아온 내 인생의 한 톨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아이만큼은 하고 싶다는 거 다 하고, 갖고 싶다는 거 다 가지며 살게 해주고 싶었는데... 자유하게 키우겠다는 마음만 앞서서 아이의 진짜 원함과 떼를 구분하지 못하고 아이가 원한다면 들어주는 육아를 하고 있었어요. 억압하며 키우지 않겠다는 마음이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허용한다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민주적이고 주도적인 삶의 방법을 몰랐던 저는 여전히 아이에게 데드라인 안에 해내야 하는 삶, 지켜내지 못하면 실패자고 현재를 누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 낙인찍는 삶을 물려주고 있다는 걸, 아토피를 대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내 아이들이 평범하고 순둥순둥 하게 자랐다면, 저는 아마 그렇게 살았던 내 삶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물려주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토피라는 아이의 아픔을 대면하지 않았다면, 일에 미쳐서 아이도 가정도 뒷전인 워커홀릭 맘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아이의 입에서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매번 ‘어차피 안 될 세상’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수능 공부를 대하듯 아토피를 대했고, 고시 패스 대하듯 내 아이를 대했습니다.


내 옆에서 끊임없이 존재 자체로 빛을 내며 엄마의 사랑을 원하는 '아이'보다 아이의 '아토피'가 더 커 보였습니다. 사랑보다 치료가 우선이라 생각했고, 사랑도 치료 후에 더 많이 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육아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인 아토피만 사라지면, 모든 게 다 좋아질 것 같았습니다. 아이와의 관계도, 양육 방식도, 아토피가 낫고 나면 고칠 수 있을 거라고, 좋아질 거라 믿으며 모른 척하며 미뤄두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장애물이 사라지면 또 다른 장애물은 찾아옵니다. 그 장애물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마음이 달라지지 않는 이상, 나는 평생 장애물에 끌려 다니며 누가 주지도 않은 책임을 나 혼자 짊어지고 살겠죠.


하지만 너무나 감사하게도 신은 내 잘못된 방식을 그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아이에게 진짜 물려줘야 하는 건, 많은 돈이나 좋은 집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그 어떤 것보다 존재를 먼저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라는 걸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토피는 '나와 내 아이를 성장시키려고 찾아온 선물'임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저의 육아는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아토피는 그대로인데, 내 관점의 변화가 가져온 기적은 대단했습니다. “왜 하필 나야”에서 “아픈 아이를 둔 엄마들을 위로하고 함께 성장하고 싶다”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내 아이 존재 자체보다 아토피 상처에 집중하던 그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 아이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장애물에 가려서 못 보던 그 실수를, 다른 부모들은 안 하면 좋겠습니다. 내 아이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선물이고 전환점이라는 걸 나누기 위해 오늘도 엄마들을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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