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대신 사랑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가 너무 귀찮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너무 피곤해서 당장 쉬고 싶을 때,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에 집중하고 싶을 때,
진짜 오랜만에 책이 막 재밌을 때,
어젯밤 보던 드라마 다음 화가 너무 궁금할 때,
갑자기 샘솟는 아이디어로 창작활동에 몰입하고 싶을 때...
적다 보니 많네요 ㅎㅎㅎ
아이가 귀찮게 느껴지면 꼭 양가감정이 불쑥 올라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지 못해서 올라오는 짜증 혹은 불만 + 아이를 귀찮게 느끼는 감정에 대한 죄책감이요.
"엄마라면 당연히 ...해야지" 의 명제가 한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초보 엄마 시절에는 아이를 위해 내 것을 희생했습니다. 내가 일 할 시간도, 쉬는 시간도, 공부하고 노는 시간도 무조건 아이의 스케줄과 원함에 따라 맞췄습니다. 그러다 보면 나도 지쳐 쓰러져 잠드니... 내가 하고 싶은 걸 며칠 혹은 몇 달 못하고 사는 생활이 이어지기도 했지요.
그렇게 죄책감 때문에 아이를 위한 희생을 반복하다 보면 켜켜이 쌓여있던 억울함이란 감정이 올라오기도 하고, 때로는 무력감과 우울감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이제는 아이를 키우며 나도 많이 자란 덕에
아이를 귀찮아하는 나의 상황에 죄책감이란 짝지를 끼워 넣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아이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면,
우선 알아차립니다. 내 감정과 상태를요.
내가 많이 피곤하구나. 어제 요가에서 했던 물구나무서기가 심하게 힘들긴 했지. 그래서 너무너무 쉬고 싶은데 아이가 자꾸 놀아달라 하니 짜증날만도 하지.
'나'에게 '엄마'란 잣대를 들이대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아차리면,
죄책감의 무게가 확 줄어듭니다.
알아차린 후에도 아이의 요구는 이어지지요.
그럼 아이에게 아주 구체적으로 저의 상태와 감정, 원하는 바를 요청합니다.
엄마가 어제 요가에서 물구나무서기 하며 무리를 했나 봐. 밤에 잠도 잘 못 잤고. 그래서 지금 너무 많이 피곤해. 30분만 자고 싶은데, 그동안 채은이 아까 약속했던 방 치우기 할 수 있겠니?
아이는 안된다고, 자지 말고 놀아달라고 떼를 쓰지만, 저는 이미 반 이상 꿈나라입니다.
이럴 땐 당당하게 부탁하고 '엄마의 쉼'을 얻어냅니다.
감사하게도 기특하게도
아이는 약속했던 자기 방 치우기를 다 하고 저를 깨웁니다.
엄마~ 방 다 치웠어요.
이제 놀아주세요!
벌떡 일어나서 아이에게 눈을 맞춥니다.
채은아, 너무너무 고마워.
엄마가 채은이 덕분에 30분 자고 일어났더니 정말 개운하다. 고마워!
아이를 키우면서,
적당한 희생과 헌신은 필요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육아를 하는 모든 순간에 '나보다 아이'가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나 자신을 없애고 아이에게 맞추는 삶을 살다 보면... 5년 뒤든, 10년 뒤든
엄마는 "내가 너에게 어떻게 했는데..."
자녀는 "내가 언제 그렇게 살랬어?" 라는
슬픈 핑퐁을 주고받을 것만 같습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존재 자체로 사랑하고 귀하게 다룰 줄 알아야
아이도 그렇게 사랑하며 바라봐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희생이나 죄책감으로 인한 선택이 아니라 사랑에 의한 선택을 하려고 합니다.
성숙한 정신 건강에 필요한 것은 상충되는 요구, 목적, 의무, 책임, 목표 같은 것들 사이에서 융통성 있게 균형을 잡고 계속해서 이를 조정해나갈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다. 균형 잡기에서 근본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은 '포기'다.
책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위와 같이 말하는 M.스캇 펙의 말대로라면,
저는 엄마-나 사이의 균형 잡기를 위해
'완벽한 엄마 되기'를 포기했습니다.
대신 '사랑하는 엄마 되기'를 선택했습니다.
정답이라 생각했던 것을 포기하고
진리라 믿는 것을 선택하면서,
저는 더 행복한 엄마가 되고
아이와의 관계는 더 진실하게 성장해갑니다.
아이가 귀찮게 느껴져도,
아이가 버겁게 느껴져도,
내가 아이를 무한히 사랑한다는 사실은 변함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충분히,
좋은 엄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