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가 무슨 경찰관이야?

엄빠가 말하는 안전성에 대하여

by 루시골드


영화 《주토피아》의 주인공 주디는 토끼 신분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주토피아(zoo + utopia)에 가서 경찰관이 되고 싶어 합니다. 주디의 부모님은 홍당무 농사를 해서 그것들을 트럭에서 파는 장사 일을 하시지요. 주디의 부모님은 주디도 홍당무 농사를 지으며 안정적으로 살기 원하지만 주디는 굳이 안전하고 편안한 부모님과 집을 떠나 크고 무서운 동물들과 여러 사건 사고가 많은 더 넓은 세상으로 가려 해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간 주토피아에서 계획과는 다른 상황들에 계속 부딪히지만 진짜 경찰관이 되고자하는 마음을 놓치지 않고 결국 주토피아의 명예 경찰이 된다는 이야기의 영화입니다. 저희 아이들이 정말 좋아해서 책으로도 영화로도 수십번 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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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는 극한의 경찰학교 훈련을 이겨내고 수석으로 졸업하여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경찰서에 첫 출근했어요. 주요 사건에 바로 투입되길 원했던 바람과 달리 큰 동물들의 텃새와 주차 위반 단속 요원으로의 발령에 실망하여 터덜터덜 자취방으로 들어갔을 때 주디의 부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주차 위반 단속 요원 조끼를 입고 있는 주디를 보고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우리 딸, 실망했겠다. 형사사건을 맡고 싶었을텐데...’라며 위로하는 대신 “우와, 여보 주디가 주차 단속을 하나 봐요. 너무 잘됐어요. 다칠 일도 없잖아요.”

“너무 잘됐다 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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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에겐 너무나 속상하고 실망스러운 경찰로서의 첫 날이 부모님에겐 안심을 주는 날이었어요. 주디의 부모님을 보면서 저의 부모님과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저의 부모님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직장과 전문직’을 우상시하는 우리 사회 전체의 모습이지요. 한국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도 아니고요.


부모님뿐만 아니라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대학원까지 20년의 공부와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7년의 모든 시간이 안정적인 직업에 하루라도 빨리 IN하여 남은 평생을 걱정없이 (설렘도 없이) 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으니까요.


홍당무 농사를 포기하고 경찰관이 되기로 결심하고 주토피아로 뛰어든 주디처럼 제가 중학교 교사가 되기를 포기하고 엄마들의 숨은 능력을 찾고 함께 성장하는 엄마성장연구소장이 되기로 결심한 것은 다름 아닌 저의 아이들 덕분이었어요.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아야겠다 싶었다면 끝까지 고시 공부하는 엄마로 만족했을지 몰라요. 하지만 남들이 정해놓은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따라 걷는 삶은 내 아이에게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았어요. 젊은 내 청춘을 끝이 보이지 않는 고시 공부와 바꾸는 것은 결코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죠.


내 아이에겐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고 말하면서 나는 ‘나 하고 싶은 대로’가 아닌 ‘해야 할 것 같은 대로’ 살고 있었어요. 내 딸에게 “너는 엄마처럼 살지 마라. 넌 다르게 살아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내 삶에 반해서 “너도 이렇게 살아봐. 엄마가 살아보니까 이렇게 사는 거 정말 재밌고 좋더라”고 말하며 현재를 충분히 누리며 미래를 만들어가는 엄마가 되고 싶었어요. “엄마랑 같이 나답게 신나게 살자”라고 말하기 위해 안정된 시골의 집 대신 리스크가 있어 보이지만 가능성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주토피아를 선택했어요.



정말 치열하게 나 자신을 읽어내고, 치유하고 성장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나는 존재 자체로 빛나는 사람이구나.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사람이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특별하고 고유하며 소중하다는 걸 알았고, 그걸 말해주고 싶었어요. 특히 엄마들에게요. 아이를 키우느라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는 엄마들이, 육아 우울증과 사회적 고립으로부터 차별받는 엄마들이 자신이 얼마나 귀하고 멋진 존재인지 알고 아이와 함께 성장하면, 우리 아이들 또한 너무나 행복하게 자랄 것이고, 이 세상이 선해지는 것은 당연한 그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세상이 저에게 붙은 ‘경단녀’ 혹은 '고시생' 딱지 대신 저 자신에게 선물한 ‘엄마성장연구소장’ 명찰을 선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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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하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있다는 주디의 엄빠.
하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주토피아로 간 주디는 최초 토끼 경찰관이 된 것처럼
나 역시 시도도 실패도 없이 안전한 삶보다 매순간 가슴뛰고 설레는 삶을 선택합니다. 그런 삶을 딸에게 선물하고 싶기 때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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