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나'를 더 빛나게 해준다
누구의 엄마로 불리면, '나'라는 사람을 잃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엄마가 되기 전부터 결심했죠.
나는 ㅇㅇ엄마라는 호칭으로 불리지 않겠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로 쭉~
이름을 부르던 시어머니도 '채은이 애미야'
새롭게 만난 친구들에게도 '채은이 엄마'
어린이집 유치원 선생님들에게도 '채은이 어머니'
관공서에 볼일을 보러가도 '어머니'
심지어 어떤 친척분은 저를 '채은아'라고 불렀어요.
큰 아이 아홉 살,
얼마 전까지만해도 'ㅇㅇ엄마'라고 불리는 것이 싫었습니다.
엄마성장연구소를 운영하면서는 나를 소개할 수 있는 명확한 타이틀이 생겨 좋았습니다. 저 스스로 아이를 키우는 일보다 성과가 바로바로 보이는 일을 하는 나 자신을 더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채은이 엄마'라는 호칭이 참 좋습니다.
내가 채은이 엄마라서 '온전한 나'일 수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아이를 떼놓아야만 나로서 기능하고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있어서 나라는 존재가 더 빛나고 가치롭다는 걸 알아버렸어요. 아홉살, 여섯살을 앞둔 아이들 덕분에요.
채은이의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함께 성장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몰랐을 거예요.
채은이의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의 장애물이 나를 성장시켜주는 기회이자 선물이라는 걸 짐작도 못했을 거예요.
유준이의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내 안의 순수하고 사랑스런 어린 아이에 대해 완전히 잊고 살았을 거예요.
유준이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나에게 얼마나 무한한 표현력과 잠재력이 숨어있었는지 몰랐을 거예요.
이젠 아이도 아홉살,
저도 엄마 나이 아홉살입니다.
"엄마, 내가 학교 일찍 마치는 월요일, 금요일은 친구랑 교실에 있다가 미술학원에 갈게. 왜냐하면 첫째, 엄마가 나를 데리러 나오기가 힘드니까. 둘째, 친구가 교실에 혼자 있으니까 나도 같이 있음 좋으니까. 셋째, 친구랑 놀고 싶어서" 라며 히히히 웃는 아이가 나의 딸이라서 너무 좋습니다.
내가 이 아이들의 엄마라서 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