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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May 01. 2023

안녕, 대한민국

예멘으로 가는 길



초등학교 시절,

머나먼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전학 온 친구가 있었다.

지나치게 얼굴이 까맣고 이가 하얗던 친구.

전학 온 친구들에게 늘 일어나는 일처럼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은 그녀를 둘러쌌고,

그 곳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이런 문화를 이해할 수 없어

영어도 아닌 이상한 외계어를 쓰며 소리를 쳤다.



2012년 11월.

결혼을 하고 나는 예멘이라는 나라엘 갔다.

석유가 펑펑 나는 부자국가 사우디 아라비아 옆 나라다.

불현듯 초등학교 그 친구가 생각이 났다.

외계어로 욕을 하던 그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터키 공항에서 예멘으로 들어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가 아주 작다.

국제선이 마치 국내선 정도 크기의 비행기 같았다.

열 명이 채 되지 않은 승객을 태우고 비행기는 터키 이스탄불을 떠나 예멘의 수도 사나로 향했다.

이제 약 4시간.

이 시간만 지나면 남편을 볼 수 있다.



결혼한지 4개월.

그리고, 신혼여행 후 떠나보낸 남편을 4개월 만에 만난다.

예멘은 대한민국이 지정한 여행금지국이라 입국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나라라서

남편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그 나라에서 살기 위해 나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공항에 내리니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까만 천으로 두른 여자들이 보인다.

처음 밟아보는 땅인데 깜깜한 밤하늘 아래 까만 여자들은 나를 환영하는 것 같지가 않다.

영어가 통할까 노심초사하며 여권 확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선다.

신기한듯 뚫어져라 쳐다보는 눈초리를 피해가며 탕탕 도장을 받는다.

그러다 수하물을 찾으러 가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남편이다.

합법하게 남편이라고 불러도 되는 도장을 찍고 난 후 4개월 만에 보는 남편이다.

까만 천을 둘러싸고 눈만 빼꼼히 내놓은 여자들과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세세히 관찰하는 남자들 사이에서

영어도 일본어도 중국어도 아닌 그 옛날 초등학교 동창 그녀가 말했던 외계어밖에 들리지 않는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남편이 정말 반갑다.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 까만 여자들도, 매서운 눈의 남자들도, 이상한 외계어도 안심이 된다.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간다.

예멘에서 남편이 혼자 살았던 집이다.

예멘에서 우리가 같이 살아갈 집이다.

우리가 처음 함께 살아보는 집이다.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

한국과는 다른 빨간 불빛이 넘실대는 거리는

새벽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불빛르 좇고 좇아 집에 도착했다.

20여 시간만에 집에 도착했다.



오늘부터 나는 예멘에 산다.

까만 여자들이 살고 빨간 불빛이 반짝이는 예멘에 산다.



대학교 내내 국문학과 교직이수에만 관심 있었던 내가

대학 졸업 후 뉴질랜드에서 서양인들과 부딪혀가면 영어를 배우던 내가

대학원에서 국제지역학을 공부하며 세계에 대해 관심을 넓혀가던 내가

결혼 후 예멘이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나라에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그 시간은 언제였는지

왜 굳이 동양인으 나 하나밖에 없었던 그 시골 마을에서 무시를 당해가며 영어를 배워야 했는지

학우들과 둘러앉아 세계정세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토론하고 발표하던 그 모습은 어디에 갔는지

그리고 그렇게 배워왔던 것들이 앞으로 쓸모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지만

나는 한 남자의 아내로,

그리고 가정을 일구는 주부로

이 땅에서 산다.



이 곳에서의 시간을 잘 살아내길.

내 20대의 마지막을 장식할 이 곳의 이야기가 아릅답고 행복하길.



나는 그렇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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