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씨 May 27. 2023

결핍의 교육

인샬라 - 꼬마가이드 알리





Inch'Allah(인샬라).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는 아랍어다. 

예메니들은 대화의 끝에 꼭 인샬라를 붙인다. 

내일 보자고 해도 인샬라. 

감사하다고 해도 인샬라. 

물건을 살 때도 인샬라. 

약속 시간을 정할 때도 인샬라. 

모든 상황에서 그들은 신에게 뜻을 구한다. 

마치 하루가 일생인 것처럼 예메니들은 그들의 미래를 신의 뜻에 맡기고 현재를 산다. 

세상이 자신을 무시한다 해도 나를 둘러싼 환경과 사건을 신의 뜻으로 해석하며 오히려 긍정적 에너지로 발산시키는 예메니의 삶의 태도. 

마치 '와인과 브랜디의 맛 때문에 물에 대한 사랑을 잃게 된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불행한가?라고 소로우가 한탄한 것과 같은 삶을 산다.



인샬라. 

이 말에 나는 한 소년을 떠올린다. 

예멘의 유명 관광지 중의 하나인 2천년이 넘은 유대인의 마을, Bait Baws에서 만난 알리. 

관광하려고 도착한 마을에서 차문을 열기가 무섭게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나를 향해 돌진하던 소년. 

남루한 옷차림의 여느 다른 아이들의 수줍은 모습과는 달랐다. 

소년은 거침이 없었다. 

먹잇감을 향해 정확하고 재빠르게 달려드는 독수리처럼 알리는 우리에게 무섭게 돌진했다.


"Mr, Mr! I will be your guide today!" (사장님, 사장님! 오늘 제가 가이드 해드릴게요!)


무슨 애가 저렇게 당돌하지? 

아이는 너무도 당연스레 자신이 우리의 가이드가 될 것처럼 말한다. 

아이의 당당함이 재밌다. 

그러다가 아이의 얼굴을 본 나는 순간 얼음이 되었다. 

정신차리자. 

일단 놀란 표정을 지으면 안된다. 

내 마음을 아이에게 들켜서도 안된다. 

서둘러 나의 감정을 감추려다 '오케이, 레츠고' 라고 말하는 내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아이가 눈치챘을까. 

곁눈질을 한다. 

열 두어살쯤. 

또래보다 체구가 작은 아이는 얼굴의 반 이상이 쭈글쭈글 화상으로 얼룩져 있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아이의 얼굴에 계속 눈길이 간다. 

어쩔 수 없이 발밑을 본다. 

어쩌다 저렇게 얼굴을 뒤덮는 화상이 생겼을까. 

다행히 알리에게 내 마음이 들키지는 않았나보다. 

알리는 신이 나서 우리에게 이 쪽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나는 알리를 무심히 대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알리의 가이드 실력은 훌륭했다. 

그는 우리에게 Bait Baws 곳곳을 여러 가지 스토리를 곁들여 가며 소개해 주었다. 

켜켜이 쌓은 벽돌이 아직도 견고해서 자기들이 여기서 사는 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 

집 안에 빛이 잘 들어올 수 있도록 아치형 모양의 창문을 방안 곳곳에 만들어 두었는데, 그 덕분에 집이 환하다는 이야기. 

솔직하게 패키지 여행에서 함께 간 가이드보다도 훨씬 맛깔나는 가이드였다. 

우리는 알리의 이야기를 숨죽여 들으며 예멘에 살았던 유대인들의 발자취를 느꼈다. 

알리의 표현대로 '아직도 살아 숨쉬는 황토벽'처럼 아주 생경하게 알리는 뛰어나게 우리를 가이드했다.



아 그런데 잠깐. 

갑자기 기가 막힌다. 

얘 왜 이렇게 영어를 잘하지? 

나무 하나 설명하는 게 아니라 마을을 설명하는 거다. 

마을에 대한 역사, 그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거다. 

무슨 유학파 출신도 아니고, 학교 갈 시간에 우리를 가이드하고 있는 아이가 학원을 다닐 리도 없는데 발음하며, 어휘력과 문법까지 아이의 영어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아까 분명 알리를 무심코 대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그의 영어 실력만큼은 무심코 대하지 못하겠다. 

얼마나 빤히 쳐다보았는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예멘, 이 안에서도 살 집이 없어 자신들이 혐오해 마지 않는 유대인의 마을에서 살 수밖에 없는 최하위계층 예메니 가족으로 태어난 알리. 

얼굴이 화상으로 뒤덮인 이 작은 아이는 어떻게 영어를 배웠을까?


"Ali, Where did you learn English?" (알리, 어디서 영어를 배웠어?)

"At school. But because of the bomb, I don't learn well there." (학교요. 그런데 폭탄 때문에 사실 학교를 잘 못가요.)


예메니 빈곤층 아이들은 대부분 구걸을 한다. 

아니면 교통체증으로 정차되어 있는 차에 다가와 허락없이 유리를 닦고 원달라를 외친다. 

그런데 알리는 달랐다. 

자기의 가치를 아는 아이였다.



왜소한 열두살짜리 아직 어린 소년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그의 능력과 경험에 대해 재단하는 법을 아는 아이였다.

자신의 가치를 높여 구걸 대신 능력으로 댓가를 치르고 보상을 얻을 줄 아는 아이였다.

현실에서 경제를 몸으로 익히는 아이였다.

노동보다는 재능을, 화상을 입은 외모로 인한 위축보다는 자신의 능력으로 당당히 세상에 도전장을 던지는 아이였다.

그렇게 자기가 삶을 끌고 나가는 주체적인 아이였다.



예멘은 전기 폭발과 테러가 자주 일어난다. 

그래서 학교가 문을 닫는 경우가 많은데 그 소식을 학교에 가야 알 수 있다. 

1시간 가까이를 걸어서 학교에 간다. 

하나밖에 없는 그 조리를 신고 학교까지 매일을 걸어가는구나. 

마음 한 구석이 아린다.



행여 학교까지 갔는데 학교가 문을 닫은 날이면 알리는 고민 없이 거리에 나온다. 

외국인 관광객, 외국인 사장, 외국인이 운영하는 커피 가게에서 일하는 예메니 형들 모두가 공부거리다. 

알리는 그들을 찾아 다닌다. 

영어를 묻고 답하기 위해서다. 

거리에 보이지 않으면 그들이 보일 때까지 찾아 다닌다. 

알리를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닥치는 대로 거리에 나가 영어를 말하는 사람들과 대화했다. 

이렇게 찾고 묻고 답하는 반복을 통해 그는 평범한 일상에서 예리한 감각까지 얻어낸 듯하다. 

그리고 매일의 부지런한 연습을 통해 시련이 더욱 쉽고 만족스러워지는 미스터리한 과정을 거쳐 다른 나라의 언어를 정복하는 경지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비단 영어 뿐만 아니다. 

알리는 배움 그 자체를 좋아했다. 

우리가 머문 반나절의 시간 동안 알리는 계속해서 한국만을 물었다. 

'kitchen'이라는 단어는 한국말로 어떻게 발음하는지, 'roof'는 한국말로 무엇인지, 'desk'는 어떻게 말하면 되는지. 

수많은 질문을 하는 알리와 이야기하면서 나는 아이의 호기심에 감탄했다. 

배움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을까. 

쉬지도 않고 종알대는 알리를 보며 나는 이 아이가 끌어당기는 강한 힘에 이끌려 감을 느꼈다.


주방, 주방, 주방. 지붕, 지붕, 지붕. 책상, 책상, 책상.


수 번씩 자기 입으로 그 발음을 따라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꼭 내게 이 발음이 맞는지 확인을 한다. 

이런 단어들을 묻기를 반나절 내내, 지금 당장 한국에 갈 것도 아니고, 이것을 배워서 어디에 써먹을까 싶은데도 그는 얼마나 끈질긴지 모른다. 

그리고 그 집중력은 또 얼마나 대단한지. 

알리는 모든 순간을 스캔해서 머릿속에 저장했다. 

여차하면 다시 꺼내보기가 가능한 것처럼 그는 계속해서 물어보고 계속해서 되뇌이고 계속해서 저장했다. 

그는 질문이 많았다. 

자기보다 지식이 많은 사람에게서 그 지식을 어떻게든 얻고 싶어했다. 

그 열정과 인내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가난한 예메니들은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생업에 종사를 시키거나 구걸을 하게 하는데, 알리의 부모님은 자기들은 염소와 양떼를 치지만 알리에게는 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으라고 했단다. 

오직 교육만이 알리를 이 삶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라 믿었으리라.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스캇 펙은 '아이들은 계속 자라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그들과 함께 변하고 자라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알리의 부모님은 알리의 성장과 더불어 함께 변화하고 자랐다. 

그들은 교육받지 못했지만 그 어떤 부모들보다 교양있었다. 

알리는 그런 부모님께 감사했다. 

그래서 우리 가이드를 하고 그 번 돈을 부모님께 드린다고 했다. 

그의 인정사정 없는 끈기는 어쩌면 그가 처한 결핍의 상황과 생업에 자기를 데려가지 않고 교육을 시켜주는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에서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Bar mizvah and Bat mizvah(바나 배트 미츠바)를 아는가. 

이는 유대인읜 교육방식으로 13세가 되어 성년의례를 치른 아이를 일컫는 말이다. 

성인식을 치르기 전의 아이들에 대해서는 부모가 책임을 지지만, 그 이후 아이들으 스스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기 시작한다. 

이제 부모는 아이가 설사 잘못을 행하더라도 그 죄를 묻고 벌하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겨주신 아이를 최선을 다해 양육하고 성인식 이후에는 그에게 아이를 맡긴다. 

아이가 그의 삶의 모든 것을 책임지게 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할 뿐. 

알리도 곧 성인식을 치를 나이다. 

알리는 이미 부모로부터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법을 배웠다. 

그는 이미 성년의례를 치를 준비가 되었다.



열두 살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은 내 마음을 툭 건드린다. 

기본. 기본이 중요하다. 

알리는 기본이 바른 아이다. 

무엇일까. 

무엇이 그의 바른 기본을 만들었을까. 

그 어린 소년은 어떻게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자기 현실을 기만하지 않고 자신의 재능으로 최선을 다해 세상을 성공적으로 살아내는 기본을 배웠을까.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어떻게 부모가 보여준대로 그대로 그 기본을 흡수했을까?



그것은 정신이었다. 

인샬라. 모든 것은 신의 뜻이라는 인샬라. 

이는 현실을 회피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믿고 나아가려는 의지를 의미한다.


그래서겠지.

낡은 담요로 가린 뚫린 창문도,

흙먼지 날리르 황토바닥에 겉오르 이불삼아 지내는 것도,

제대로된 방 한칸에 화장실 없이 사는 환경도,

조리 하나로 그 먼 거리에 있는 학교를 매일 오가는 힘겨움도,

화상 입은 얼굴에 적절한 치료를 해주지 못한 부모도,


매일을 그렇게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나간다. 

그렇게 그는 자신을 이겨낸다. 

그는 일상을 이겨낸다. 

그는 삶을 이겨낸다. 

알리는 이러한 기본 정신을 부모로부터 그대로 일상에서 부여받은 것이다.



시간이 흘러 지금 내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그래서 한국의 열 살 아이들을 자주 만난다. 

부모님에게 귀한 사랑을 듬뿍 받은 요즘 열 살들은 감사가 없다. 

무엇이든 부모가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채워주는 환경에서 자라 없는 것이 용납되지 못하는 불평 속에 산다. 

먹고 싶은 간식을 맘껏 사먹고, 공부만 잘하면 갖고 싶은 것도 오케이다. 

장난감부터 스마트폰, 태블릿, 게임기까지 아이들의 방 안에는 없는 것이 없다. 

할 수 있는 것이 넘쳐나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는데 아이들은 현재에 만족감이 없다. 

남들과 비교해 가지지 못한 것부터 이야기한다. 

태어나 평생을 원하는 것을 가지는 인생을 살았으니 안된다는 말이 쉬이 들리진 않을테지만,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해 만족스럽지 않은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 마음이 답답하다. 

아. 이건 아닌데. 

원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 이렇게 당연한 게 아닌데.


결핍. 

우리 아이들은 결핍이 없다. 

결핍은 어떤 것이 부족한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당장 부모가 아이에게 채워주어야 할 것 같고, 채워주지 않으면 마치 부모의 역할을 소홀히 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정말 결핍이 나쁜가. 

꼭 그렇지는 않다. 

결핍은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물질적 결핍의 부족은 새로운 결핍을 부른다. 

감사, 수용, 인내. 알리에게 넘치는 이 가치들이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는 결핍되었다. 

부족하지 않아서 감사가 사라지고, 나의 환경을 다른 이들과 비교해서 수용하지 못하며, 기다리는 것에 인내가 없다. 

나는 아들을 바라본다. 

지독한 결핍 속에 사는 알리와 결핍이 없는 세상 속에 사는 나의 열 살 아들. 

나는 마음 한 켠이 묵직하다. 

아들은 결핍의 무게를 아는가. 

아들은 삶에 감사가 있는가. 

아들에게 나와 남편은 어떤 존재인가. 

아들은 결핍을 수용하고 오히려 성장의 원동력으로 여길 수 있는가. 

우리는 기준 없이 떠다니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어떤 결핍을 경험하게 하고, 어떻게 세상에 감사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 

알리의 넉넉한 마음과 세상을 이기는 태도가 나에게도 전해지길. 

그래서 바른 기본으로 아이들의 바른 성장을 위해 결핍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