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특성을 존중한다는 것

아이를 향한 지지와 지원, 그리고 한계와 제한 설정

by 박밝음

아동중심 육아관이 보편화되면서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가 가진 개성과 고유성을 인정하고 존중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아이에게 가능한 다양한 선택권을 제공해주고, 선택을 존중하고자 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아이의 특성을 인정하고 존중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의 연령에 따른 적절한 발달 수준을 고려한 상태에서 개별성의 중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술활동을 유난히 힘들어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봅시다. 유치원에서 미술활동 시간이 되면 하기 싫다고 울고, 혼자서 다른 놀이를 하겠다고 합니다.


이 아이가 다섯 살이고 시기가 3월이라면, 발달 수준에 비추어봤을 때 이러한 행동 특성은 어느 정도 이해해줄 수 있는 범주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개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더욱 적절한 교육방식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 아이가 일곱 살이고 시기가 10월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이 때는 하고 싶지 않더라도 조금은 참고 견디며 시도해보는 정도의 노력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통의 일곱 살 아이라면 이 정도는 가능할 만큼의 발달이 이루어져 있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학령기 진입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더 큰 어려움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영아기와 달리 유아기에는 아이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그것이 수용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 못지않게, 적절한 수준에서의 제한과 한계를 경험하는 것 또한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 시기 아이가 가정에서, 그리고 교육기관에서 반드시 배워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유치원은 아이들의 첫 사회생활이 펼쳐지는 곳이라고들 하지요. 아이들 간에 다양한 상호작용과 역동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이 하나하나 따로 살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가정에서는 미처 몰랐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부분이 원 생활에서는 도드라지게 문제시되는 경우들이 생기고요.


교사는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에서, 나름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다수의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그러다 보니 '동 연령에서의 적절한 발달 수준'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쌓이게 되지요. 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지지와 지원, 그리고 한계와 제한을 알맞게 제공해주려고 노력합니다.


때로는 가정에서의 협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문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방어적이고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는 학부모님이 적지 않습니다. 아이의 개성 혹은 특성이니 존중해주기를 요구하기도 하고, 아직 어리기 때문에 그렇다는 식으로 치부하기도 하고요. 그럴 땐 참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 상황에서 가장 힘든 건 바로 '그 아이'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또래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요. 그 아이와 함께 놀이하고 가까이 지내는 것이 불편함을 유발한다는 것을요. 교사가 함께 놀이하기를 권유해도 "누구누구는 소리를 지르고 장난감을 던져서 같이 놀기 싫어요."라는 말이 아이들 입에서 나옵니다. 또래관계에서 지속적으로 거절을 경험하는 것은 또 다른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돼요.


아이의 원 생활에 대해 가감 없이 가정과 소통하고 함께 지도할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교육 현장의 분위가 조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누구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기회를 놓친다면 앞으로 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될지도 모르는 그 아이 자신을 위해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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