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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달 Sep 21. 2020

아들이 운다

사람과 사람, 인연


2020/9/21/월


눈에 넣어도 안아플 울아들. 그 아들이 내 팔에 안겨 펑펑 울었다. 여자친구랑 헤어졌단다. 자기가 좀더 잘해줬으면 이런 일 없었을텐데. 너무 착한 아인데.. 자기 탓이라며, 여자친구한테 미안하다며 운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다 큰 대학생 아들이 무너져서 우는 걸 보니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아들은 고3 때, 같은 학교 한 학년 후배와 사귀었다. 고3 때 여자친구라니.. 그 사실도 대학 합격 발표가 난 그날 아들이 말해서 알았다. 여자친구는 공부도 잘하고 실기성적도 우수한 야무진 학생이었다. 아들이 대학 캠퍼스 생활을 한참 즐길 때, 여자친구는 고3이라 그 아이가 조금 힘들겠다.. 생각은 했으나, 결국 이렇게 헤어지게 되었구나.


다 큰 아들이 이렇게 무너져 우는 것을 처음 봤기 때문에 너무 놀라고 속상한 마음에 아무말도 못하고 몇분동안 그저 말없이 등만 두드려 줬다. 지금 당장은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꺼야. 괜찮아. 아들. 울음이 잦아든 아들은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제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내 방으로 들어와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대학 때, 철없던 시절, 쉽게 사귀다 헤어진 남자들, 도도하고 차갑게 굴어 상처 준 남자들.. 매정하게 차버린 친구들이 생각나면서 그 죄를 내가 이렇게 되받는 걸까...? 란 생각이 들 정도로 속상했다.차라리 내가 아프면 아팠지, 아들이 힘들어 하는 걸 보는 것이 참 힘들었다. 아니지, 정신 차리자. 지금 이 순간 가장 힘든 건 내가 아니라 아들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아들에게 장문의 카톡편지를 썼다.





눈에 넣어도 안아플 울 아들인데, 아들이 펑펑 우니 엄마 마음이 너무 아프네. 근데 oo야.


인연이면
아무리 못됐게 굴어도
안 헤어지고

인연이 아니면
아무리 잘해줘도
반드시 헤어져.

인연이면
헤어져도
결국 다시 만나고.

인연이 아니면
10년을 같이 있어도
결국 헤어져.

인간관계도
우리 인생이란 비슷해서
내가 인위적으로 애를 쓴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흐르는 파도에 내 몸을 맡기고
배영하듯 누워 있으면
그 파도가 내 인연과 맞는
그런 인간을, 친구를, 선배를, 인생을
내 눈앞에 펼쳐주더라.

엄마도
삼촌도
어떤 한사람한테 헌신하는 스타일이 못돼.
내가 빠져있는 세상에 몰입하는 사람이라
사귀는 사람들이 서운해 할 수 있는 그런 타입.
이게 잘 안 바뀌더라고.

그런데
그런 나를 못견디면
그건 인연이 아닌거야.

그런데
엄마는 아빠를 만났고
삼촌은 숙모를 만났어.

차가워 보이는 엄마를
무심해 보이는 삼촌을
있는 그대로 아껴주고 사랑주는 사람을.

그게 인연이야.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
서운해도. 그 서운한 맘때문에 날 할퀴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사랑으로 날 감싸주는 사랑. 그런 사랑도 있어.

인간관계랑
인생은 너무 “애쓰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거나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을 낳기도 해.

오늘은 맘이 너무 아프겠지만
울 아들, 대범하게 툭툭 털어내길 기도할께.

너를 있는 그대로
귀엽다 사랑스럽다 할
그런 인연 만날꺼야. (엄마가 네 아빠를 만났듯)  (2019/9/13/금) 딱 1년 전이구나..




이튿날 아들은 한결 좋아진 표정으로 방에서 나왔다. 여자친구랑 다시 얘기 잘 했고, 오빠 동생 친구로 남기로 했단다. 한번 생채기 난 상처는 없어지지 않고 흉터로 남겠지만 그 흉터는 다음 사람을 만났을 때 좀더 성숙한 관계맺음에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내 연애시절이 생각난다. 철없고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았던 그 시절의 나.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귀여워하고 사랑스러워 한 남자도 있었고, 나를 고치고 바꿔 자신의 스타일로 만들려고 했던 남자도 있었다. 어떤 사람이건, 어떤 상황에서건 배울 것은 있다는 생각이 강했던 나는, 믿기지 않겠지만, 후자에게 끌린 적도 있었다. 나보다 연륜도 있고 가르치는대로 배우면 내가 더 성숙한 인간으로 업그레이드 될꺼란 생각에 순한 양처럼 그렇게 휘둘렸다.까짓, 배려심 쩌는 여친 코스프레 한번 해보지 뭐. 성격좋은 내가 함 해볼께요. 하지만 그건 진짜 내모습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내가 부자연스럽고, 그와의 관계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나를 고치려 하는 남자 말고, 나를 있는 그대로, 나의 장점이나 단점 모두를, 안아줄 수 있는 그런 남자가 진짜 내 인연이 아니야? 이렇게 피곤할리가 없잖아. 내 인연이라면.”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 안개가 걷힌 것처럼 앞이 선명해지고 마음이 편안해 졌다. 그 얘기를 아들한테 해주고 싶었다.


아들아, 너도 엄마 닮았으면 무심하단 소리, 서운하단 소리, 친구들한테 많이 들을꺼야. 함께 있으면 재미있고 즐겁지만 벽을 두고 있는 것 같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어. 그게 네가 틀렸다는 말은 아니야. 우린 그냥 조금 다른거야. 특이한..? 그대신 자신의 일에는 무섭게 몰입하고 열정을 쏟고 성과를 낼 수도 있어. 그 모습을 가치있게 보고, 그 몰입을 서운해 하지 않을 네 짝꿍이 분명 어딘가 있어. 그러니, 나의 모난 점 때문에 친구가 떠났다는 생각은 하지마. 그 친구는 떠날 때가 되서 떠난 거고. 그 빈자리엔 항상 더 멋진 친구가 다가오더라. 그래서 인생이 참 설레고 재미져. 살만한 인생이야.



#관계는너무애쓰는거아니야

#자연스럽게흘러가도록두렴

 

(1호 고3 때 학교 교정에서 친구들과)



https://youtu.be/yKPEb5-RP0M


https://youtu.be/UYwF-jdcVjY





#다친마음

#너무아프지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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