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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달 Sep 20. 2020

꿈이 없으니까 내가 꼭 모자란 사람 같아

저는 서른 아홉에 내 꿈이 뭔지 겨우 알았는데 말이죠

2020/9/19/토


요즘도 이거 하나? 해마다 학기초면 "나의꿈"이란 주제로 글쓰기를 시킨다. 그것도 아예 한 반에 한명씩 잘쓴 글을 뽑아 상장을 수여하는, 꽤 중요한 글쓰기대회 형식으로 말이다. 보통 아이들이라면 얼렁뚱땅 과학자, 의사, 변호사, 연예인, 가수...라고 쓰고 대충 말 만들어서 휙 제출했을 법도 한데, 2호는 달랐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자기 마음 속 이야기가 아닌 글을 단 한줄이라도 쓸 수 없는 2호에게 그 글쓰기 시간은 죽을만큼 괴로왔던 모양이다. 공책에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글쓰에서 당시 아이의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짠했다. 초3 때였다.


(초3)


"나는 꿈이 아무래도 없는 거 같다. 나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은데, 엄마가 "축구는 그냥 취미로 하는거지 꿈으로 하기엔 좀 그렇지" 라고 말하는 순간 머리가 텅 비면서 나의 꿈이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내가 피아노를 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피아노는 너무 피곤하고 짜증난다. 나는 피아노를 이제 하기도 싫다. 그래서 엄마가 억지로 시키는 느김이 든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꿈을 찾을거다."


(하지만 2014년 2호의 피아노치는 모습을 보면 이 말과는 사뭇 다른.. 음.. https://blog.naver.com/afantibj/20210553798 )


꿈이 없는 사람에게 '너 꿈이 뭐야?' 라고 묻는 것은 폭력일 수 있다. 마치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아이에게 '너 어느 대학 나왔어?" 라고 묻는 것과 같은 실례다. 꼭 대학을 나와야 하나? 꼭 꿈이 있어야 하나? “꿈이 뭐예요?” 란 질문이 내포하고 있는 무례는 바로 거기에 있다. 꿈이 있는 것을, 대학 교육 받은 것을 '기본전제'로 깔고 질문을 하는 것. 이는 곧 대학을 나오지 않고 꿈이 없으면 넌 문제있는 인간, 한심한 인간이란 뜻이기도 하다.  꿈이 없을 수도 있고, 대학을 안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거지?


나는 "너 꿈이 뭔지 적어봐" 라는 제도권의 질문에 "나 아직 꿈 없는데? 어쩔껀데?" 하는 자세로 담백하게 글을 쓴 초3 2호를 온마음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꿈을 찾을거다'라는 마무리 단어도 마음에 든다. 2호는 꿈을 '찾고 싶다' 가 아니라 '찾을거다'라고 말했다. 무엇을 하고 '싶다'라는 말은 '하하지 않을 꺼임' '지금은 하기 싫음' 이라는 강한 의지를 담은 말이다. 하지만 '할거다' '하고 있다'는 강력한 실행을 예고한다.


'저도 새벽달님처럼 새벽기상 하고 싶어요~ 새벽에 모닝글쓰기 하고 싶어요~ 나만의 새벽루틴 갖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은 흘려듣게 된다. 왜냐면 그들은 ‘할 생각없음’을 무의식중에 ‘~하고 싶다'는 말에 담아 표현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일부터 할꺼에요'라는 말은 반색하며 반긴다. "내일부터 하지 말고 오늘 저녁에 호수공원 돌아요. 지금 걷기 딱 좋은 계절이야" 라며 오지랖까지 부려본다.


말은 그사람의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난다. 그 말의 힘을 알기에, 꿈이 없는 아들이 기분은 꿀꿀하나 당당하게 '나 꿈 없어요. 그런데 언젠가는 찾을꺼에요' 라고 쓴 글을 봤을 때 나는 속으로 아이를 꽉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아이가 자신이 확언한 그대로, 꿈을 찾을 것을 믿는다.


아이 공책을 뒤적거리다보니 초4때 똑같은 주제로 쓴 '나의꿈'도 있다.



(초4)


"나는 솔직히 말해서 꿈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있지만, 그것들은 다 취미로 하고 싶다. 그래도 꿈이 없다고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생각인 것 같다. 우리 아빠도 꿈이 없을 수록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 꿈이 생기면 공부를 잘해서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지금 공부를 잘해서, 나중에 꿈이 생겼을 때 그 꿈을 이루겠다."


한결같은 2호님. 이때도 꿈은 없었고. 취미와 꿈을 구별했고. 꿈이 없을 수록 공부해야 한다는 아빠의 뻔한 조언을 뻔하게 듣기 않고 새겨들었다. 마무리는 역시, "공부 열심히 해서 꿈이 생겼을 때 그 꿈을 이루겠다'라는 확언으로. 그 꿈을 이루고 싶다, 가 아니라 이루고 말겠다는 저 마무리가 참 맘에 든다.


이 제도권과 입시의 집요한 '꿈타령'에 대한 이야기를 블로그에서 나눈 적있다. 한 중1 딸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이런 댓글을 남겼다.


"하고 싶은게 이거저거 많을때도, 없을때도..학교에서는..꼭 꿈을 가지고 목표를 정해야 하는것처럼.. 적성 테스트다뭐다해서..애를 힘들게 하던시절, 딸아이가 묻습니다.

따님 : 엄마, 꿈이 없으면 나쁜거야?

엄마 : 왜?

따님 : 꿈이 없으니까...말할 수 있는 게 없을때가 많아서, 내가 꼭 모자란 사람같아서..

엄마 : 아냐. 엄마는..사는동안 내내 딱히 하고싶은일 잘하는일이 없어서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다보니 해야할일을 만나고 열심히 살다보니..지금이야. 너도 모르는거야..인생이 너를 어디로 데리고 갈지. 그냥 순간을 열심히 사는거야. 행복하게...라고 말해줬네요. 중1된 딸아이...꿈이 없으면 모자란 사람취급하는 사회에서 살게해서 미안하네요."


꿈이 없으면 모자란 취급하는 사회. 도대체 왜이러는 걸까요? 꿈을 진로, 진학과 착각하는 것도, 꿈을 강요하는 것도 멈췄으면 좋으련만.



이 꿈타령 이야기를 유튜브영상으로 만들어서 올렸을 때,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다.  https://youtu.be/suA8I7oHV2I


-2호 일기 보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네요ㅠㅠㅠㅠ 글을 참 야무지게 잘 썼어요 하루하루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행복하게 사는 가치보다 평생 무언가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며 살아왔던 시절이 오버랩돼서 눈물이 나왔던 거 같아요.


- 이 영상 왤케 눈물 나요... 40 넘었는데 아직 꿈이 뭔지 모르겠는 저한테 해주는 말처럼 들리네요. 아직 꿈이 뭔지 모르겠지만 꼭 찾을거다. 그때까지 하루하루 재밌게 살자!


- 전 평생 꿈없이 살아서 내심 불안하고 실패한 인생인것 같아 우울한 날이 많았어요...찾아지지않는 꿈 찾는것도 지치거든요. 결혼하고 아이둘 키우며 드는 생각은 소소한 행복으로 하루를 채워가고 있는데 이러한 삶도 나쁘지않은것 같아요. 영어공부에 새롭게 눈을 떠서  새벽달님 유튜브,카페까지 요즘 할게 많아 행복해요☺


- 방황 전문가 저도 35살에 직업을 찾고, 40대에 들어서 꿈을 꿉니다. 꿈이 없는게 아니라 꿈을 발견하고 실현하는 시기가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한 모두를 응원하고 싶은 영상이네요


- 애가 둘이지만 아직도 저는 제 꿈을 찾고 있어요. 예전에는 이런 제가 부끄럽기도 하고 끈기가 없다고도 느껴지고 왜 나는 이렇게 불만이 많나 싶기도 했어요. 그래서 계속 시도 알아보고 새로운 분야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그런경험을 통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점점 골라낼 수 있게 됐어요. 지금도 꿈은 없지만 열심히 살고 있어요. 좋은 기회가 왔을때 그것을 잡고 싶을때 제 능력이 부족하지 않길 바라며 하루하루 쌓아가고 있고 그 과정 자체가 가치있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남이 꿈이 뭐냐고 묻는건 그 사람을 단정짓는 손쉬운 기준 같아요.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쉽게 물어보고 쉽게 잊어버리는 수단이요. 오늘 영상 감사히 보고 갑니다.


- 꿈이란게 진짜 있긴 한걸까? 늘 생각합니다.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꿈이라고 하는 건가... 오늘 블로그 글과 이 영상을 함께보니 제 모습이 짠해서 눈물이 다 날려고 해요 �ㅎㅎㅎ 고맙습니다~


- 너무 감동이에염��제 어린시절 생각두 나궁. 울컥울컥. “꿈이 없을수록 공부는 잘해야해. 그래야 나중에 어떤 꿈을 꿔도 다 이룰수 있으니깐.” 정말 그렇더라고요!! 저도 이런이야기 해주던 어른이 있었다면 제 어린시절은 참 풍요로웠겠다. 살만했겠다(?)싶네요. 꿈 찾아 돌고돌아왔네요. ㅎㅎㅎ영상 감사합니다!�


- 저도 난 왜 꿈이 없지? 하며 자책했던 시간이 있었거든요. 그럴 수 있다. 이상한게 아니다. 편안하게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것 같네요. 아이들이 마음껏 성장할 기회와 시간, 그리고 너그러움을 허락치 않는 세상이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방황 좀 하면 어떻고, 거창한 꿈이 없음 어때요. 꿈이 직업도 아니고... 세상이 그럴수록 조급하고 불안한 엄마가 되지 말아야지.. 노트에 적고 또 적습니다~^^


- 어른이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 '장래희망'이라는건 없어질줄 알았어요. ㅎㅎ근데 아이둘을 키우고 전업으로 살면서 우울해질때도 있지만 새벽달님께서 '경력단절 아니고 경력심화' 라고 말씀하신것을 마음깊이 새기며... 오늘도 '난 더 크면 뭐가 될까?' 생각해봅니다 ~~ 아침운동하고 스트레칭하면서 이 영상보고 힐링하고 가요❤︎ 오늘도 집콕중인 우리 아이들, 더 아껴주고 사랑하는 하루 될게요!




현 중3부터는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 '장래희망' 쓰는 란을 뺀다고 한다. 대학 지원서에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진작 그렇게 했어야 했다. 해마다 새학년 올라가면 적어내는 통지문에 그 취미, 특기, 장래희망, 이것도 부모가 생각하는 장래희망은 왜 묻는거지? 아무튼 그 모든 질문에 우리는 이렇게 소리지를 배짱이 필요하다.


아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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