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느린 아이, 감정이 느린 엄마

5장 아들의 여자친구

by 서담

1년에 2번 하는 상담 전화

ChatGPT Image 2025년 6월 10일 오후 12_38_01.png

어린이집 정기 상담 전화가 왔다. 1년에 2번, 율이의 어린이집 생활에 대해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율이가 요즘 어떤가요?"

"음... 율이가 서은이를 좋아해요. 낮잠도 꼭 서은이 옆에서 자려고 하고, 놀 때도 항상 서은이를 찾아요."

"어떻게 좋아하는데요?"

"소꿉놀이를 하다가 서은이가 '여보~'하고 부르면 교실 저편에서도 달려와요."

37개월에 벌써 역할놀이를?

"그리고 민솔이라는 친구도 있는데, 이 친구와도 많이 놀아요. 특별한 친구들이 생긴 것 같아요."

37개월 율이에게 특별한 두 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이었다.

며칠 후, 남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사진 한 장과 함께.

율이가 민솔이에게 뽀뽀하는 모습이었다.

"민솔이 한번 안아줘라고 했는데 뽀뽀했네 ㅋㅋㅋ" 남편의 메시지가 따라왔다.

37개월에 벌써 이런 행동을? 놀랍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율이만의 방식인 것 같았다.


집에서 확인하기

집에 와서 율이에게 물어봤다.

"율이야, 서은이랑 놀았어?"

"응!"

"민솔이랑도 놀았어?"

"응!"

평소 말이 느린 율이지만 친구들에 대한 질문에는 확실하게 대답한다.

이름을 정확히 말하지는 못하지만 누구인지는 확실히 안다.

궁금해서 더 물어봤다.

"율이야, 민솔이 누구 꺼야?"

"내 꺼!"

"서은이는 누구 꺼야?"

"내 꺼!"

사진을 보여주며 물어보면 뽀뽀로 대답한다.

그럼 엄마는?

"엄마 누구 꺼야?"

기분이 좋을 때는 "내 꺼!" 기분이 별로일 때는 "아빠 꺼!"

율이만의 기준이 있는 것 같다.


엄마의 심통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괜히 심통이 났다.

"둘이 못 만나게 어린이집 바꿔야겠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더니

율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안돼~!"

그 순간 깨달았다. 율이에게 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런 변화를 보며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만들어줄 수 없었던 동기를 친구들이 만들어줬다는 것을.

언어센터 선생님의 전문적인 도움도, 집에서의 꾸준한 연습도 율이에게는 '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소통은 '하고 싶은 일'이었다.


변화의 시작점

그동안 나는 율이의 언어 발달을 어른의 관점에서만 봤었다.

정확한 발음, 완전한 문장, 어른이 원하는 대답들.

하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건 친구와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서은이한테 말하고 싶어!" "민솔이랑 놀고 싶어!"

그 간절함이 율이를 변화시켰다.

물론 극적인 변화는 아니다.

여전히 말은 또래보다 느리고, 어른이 시키는 말은 잘 안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율이에게 말하고 싶은 이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야 알겠다.


친구의 힘

어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친구와 함께 웃고, 친구와 놀이를 나누고, 친구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욕구.

그것은 오직 또래 친구들만이 만들어줄 수 있는 마법이었다.

요즘 율이를 보면서 생각한다.

언어 발달이 빨라지길 바라기보다는 지금처럼 친구들과 즐겁게 소통하며 자연스럽게 자라길 바란다고.

"서은아!", "민솔아!"를 부르는 율이의 밝은 목소리가 그 어떤 완벽한 문장보다 소중하다.

오늘도 율이는 어린이집에서 서은이, 민솔이와 함께 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서은이랑 민솔이랑 놀았어!"라고 신나게 이야기할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마음도 함께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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