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느린 아이, 감정이 느린 엄마

4장 공룡에서 코끼리, 다시 공룡으로

by 서담

16개월, 첫 번째 사랑


"코옹룡~"


16개월 율이가 처음 명확하게 발음한 단어 중 하나였다.

브라키오사우르스를 가리키며 "코옹룡~"이라고 외쳤다.

목이 긴 브라키오사우르스. 율이의 첫 번째 진짜 사랑이었다.

브라키오 피규어를 안고 다니고, 잠들 때도 옆에 두고, 어디를 가든 챙겨갔다.

집에는 브라키오사우르스가 3-4개나 있었다. 크기별로, 색깔별로 모아뒀다.


어린이집에서 만난 새로운 사랑


새로 바뀐 어린이집 첫날. 율이가 한 구석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코끼리 피규어.

다른 아이들이 놀던 장난감을 선생님이 정리하려고 가져가려는 순간이었다.


"아니야! 코끼리!" 율이가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이 장난감을 치우자 율이는 울면서 문 앞까지 뛰어갔다.

"코끼리! 코끼리!" 절규하듯 외쳤다.


그날부터 율이의 코끼리 사랑이 시작되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코끼리 이야기뿐이었다.


"코끼리! 코끼리 봐!" TV에서 코끼리가 나오면 신나게 소리쳤다.

코끼리 책을 사주니 매일 밤 읽어달라고 했다.

코끼리 다큐멘터리를 찾아서 보여주니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집중해서 봤다.

아프리카 코끼리, 인도 코끼리, 코끼리의 모든 것을 흡수했다.


브라키오사우르스는 어느새 장난감 박스 구석으로 밀려났다.


에버랜드 이후의 변화


에버랜드에 갔다 온 후 또 다른 변화가 찾아왔다.

"사자! 호랑이!" 맹수들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사자와 호랑이 다큐멘터리를 보며 "으르렁~" 소리를 따라 했다.

코끼리는 여전히 좋아했지만 사자와 호랑이가 새로운 최애가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최근 들어 율이가 코끼리를 가지고 놀지를 않아 물었다.

"율이야, 아빠 코끼리 어디 있어?"

율이가 "코~~" 하고 자는 흉내를 낸다.


"아빠 코끼리 자고 있어?"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율이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며칠 후, 율이의 관심사가 또 바뀌었다.


공룡으로의 복귀


"공룡~"

갑자기 율이가 외쳤다.


"어? 공룡 또 좋아해?"


"응! 스피노!"

16개월 때의 브라키오사우르스가 아니라 이번엔 스피노사우르스였다.

물고기를 잡아먹는 거대한 공룡. 등에 돛처럼 생긴 지느러미가 있는 공룡.

공룡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찾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보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덕후


율이의 특이한 점이 있다. 동물을 좋아할 때마다 관련 다큐멘터리를 찾아본다는 것.

코끼리 시절에는 코끼리 다큐, 사자 시절에는 사파리 다큐, 지금은 공룡 다큐 시리즈를 정주행 중이다.

37개월 아이가 한 시간짜리 다큐를 끝까지 집중해서 본다.

어른들도 지루해할 내용을 율이는 진지하게 시청한다.


엄마의 적응기


율이의 관심사가 바뀔 때마다 나는 적응하느라 바쁘다.

공룡책을 사놨더니 코끼리로 바뀌고, 코끼리 용품을 준비해놨더니 사자로 바뀌고, 사자 다큐를 찾아놨더니 다시 공룡으로.


'이번엔 얼마나 갈까?' 항상 궁금하다.


하지만 율이의 열정은 진짜다. 일시적인 관심이 아니라 그 순간만큼은 완전히 빠져든다.


스피노사우르스의 시대


요즘 율이는 스피노사우르스 전문가다.

물고기 장난감을 스피노사우르스 입에 가져다 댄다. "냠냠!"


"스피노!"라고 말할 때는 등 뒤에 손을 세워서 돛 모양을 만든다.

율이에게는 특별한 룰이 있다. 좋아하는 동물들에게 밥을 줘야 한다는 것.

코끼리 시절에는 풀을 먹였고, 사자와 호랑이 때는 항상 고기를 줘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스피노사우르스에게 물고기를 먹인다.

자기가 늘 잘 먹어서 그런지 동물들도 배고프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말로는 길게 설명하지 못하지만 몸짓과 놀이로 완벽하게 표현한다.

말이 느린 아이라고 했는데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이의 관심사는 예측할 수 없다.

어제까지 코끼리를 사랑하던 아이가 오늘은 공룡을 외친다.

그 변화를 따라가기는 힘들지만 율이의 열정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순수한 집중력,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유연함, 그리고 그 모든 걸 표현하려는 의지.

37개월 율이가 가르쳐주는 것들이다.


오늘도 율이는 스피노사우르스 다큐를 보며 "물고기! 스피노!"라고 외친다.

언제까지 이 사랑이 지속될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율이에게 스피노사우르스가 전부다.

아빠 코끼리가 한 달째 자고 있는 동안 율이의 마음은 새로운 사랑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새로운 사랑에 빠져드는 모습이 가장 소중하다.


이 작은 탐험가의 모험은 내일 또 어디로 떠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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