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도 괜찮았던 여행

by 서담

​8월의 창원은 뜨거워야 마땅했다.

나의 계획은 완벽했다. 서원곡 계곡의 차가운 물살, 그 위에서 율이와 함께 잡을 물고기들, 그리고 계곡 평상에서 먹는 백숙까지. '여름 피서'라는 단어에 가장 충실한 하루를 그려두었었다.


​하지만 하늘은 내 완벽한 계획에 관심이 없었다. 야속하게도 비가 쏟아졌다. 불어난 물살은 계곡으로 향하는 길을 막아섰고, 준비했던 채집 도구들은 갈 곳을 잃었다.

장마와 더위를 피할 피서지를 소개하겠다던 나의 8월 미션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계곡을 못 가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잠시 멍해졌지만, 일단 백숙은 먹기로 했다.

비가 와도 솥은 끓으니까. 빗소리가 타닥타닥 지붕을 때리는 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국물을 넘겼다. 율이는 창밖으로 세차게 흐르는 계곡물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묘하게 운치가 있었다. 빗속의 계곡은 들어갈 수는 없어도, 바라보기엔 더없이 좋은 풍경이었다.


​그때 문득 생각이 났다. 비가 와도 상관없는 물, 아니 비가 오면 더 좋은 물이 있지 않나?

창원 북면 마금산 온천.


​우리는 차를 돌렸다. 차가운 계곡물 대신 따뜻한 온천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실내 풀장은 날씨의 변덕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평온했다. 율이는 어린이 전용 풀에서 물을 튀기며 깔깔거렸다. 계곡에서 놀지 못한 아쉬움 같은 건 아이의 웃음소리에 씻겨 내려갔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야외 노천탕이었다. 머리 위로는 차가운 여름비가 떨어지고, 몸은 따뜻한 온천물에 잠겨 있는 기분. 그 이질적인 감각이 오히려 여행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맑은 날 계곡에서 찍으려던 '인생 사진' 대신, 빗방울이 맺힌 몽환적인 사진들이 카메라에 담겼다.

​집으로 돌아와 포스팅 제목을 적었다.

'장마철·더위 피서에 딱! 온천 물놀이장 & 가족탕'.


계획대로 계곡에 갔다면 그저 평범한 여름날의 기록이 되었을 테지만, 비 덕분에 '비 오는 날에도 갈 수 있는 보석 같은 곳'을 발견한 셈이다.

​블로그를 하며, 그리고 아이를 키우며 배운다. 완벽한 계획보다 중요한 건 유연한 대처라는 것을.

비가 오면 비를 피하는 게 아니라, 비를 맞으며 즐길 수 있는 곳을 찾으면 된다. 계획이 틀어진 그 빈틈 사이로, 때로는 예상치 못한 행복이 스며들어오기도 하니까.

​그날의 우리는 비가 와서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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