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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나 Apr 11. 2022

그렇게 우리는 모두 PM이 된다 - 1

이번 달로 D 사업의 PM을 맡게 된 지도 4개월이 지나고 있다. 작년에도 그리고 전 회사에서도 'PM'이란 다소 무거운 이름을 가져본 적은 있으나, 지금과 같이 많은 영역을 다루는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이 사업의 PM을 제안받았을 때 곧바로 '제가요?'를 되물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다 보니, 내가 이끌기에는 너무 크다고 생각했던 그 프로젝트의 PM이 되어있었고, 그때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은 단지 ‘내가 부족하다'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부족했는지는 좌충우돌 조금씩 부딪히고 아파가며 깨닫는 중이다.

지금의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 많은 동료들이 나에게 강조했던 것들이 있다. 아마 계속해서 성장해가고 있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조직에서 새로이 적응하며 겪을법한 어려움에 대해 일종의 경고가 필요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나는 말로만 들어서는 제대로 아는 법이 없는 사람이라, 요즘 들어 몸소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 말들을 이해하며 되짚어보고 있다.



1-1. R&R을 명확하게 나누는 것은 위험하다.

현 회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그래서 내 역할이 어디에서 어디까지인 거지?'였다. 명확한 범위 내에서 주어진 일을 잘 마무리하면 되었던, 오히려 나에게 주어진 업무의 선을 넘어가는 것이 금기시되는 문화에서 일을 해온 터라, 어떤 행동을 취하기에 앞서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곳의 일들은 Role and Responsibilities를 명확히 나눌 수 없는 것들이다.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클라이언트(funder와 벤처기업)의 만족이 가장 중요한 업이니 만큼, 프로젝트의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그들의 요청을 우리가 먼저 잘라내거나, 예상하거나, 컨트롤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시기에 따라 업무의 범위가 깊이가 계속해서 변화하는 것이 또 다른 특징이다. 때로는 넓고 얕은 일을 다루다가, 또 그 일이 마무리되면 좁고 깊은 일에 몰입해야 한다. (물론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이따금씩은 넓고 깊을 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업무를 명확히 나누기 시작하면, 적은 인원으로 커버할 수 없는 구간이 생긴다.


고객의 급작스러운 요청과 필요로 인해, 미처 예상하지 못한 과업을 수행해야 하는 순간을 생각해보자. 최초에 해당 범위의 과업을 담당했던 A가 이 일을 할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는다면, 나머지 구성원들이 당연히 새로운 일을 나누어 가져야만 한다. 그런데 이때, B가 '거기까지는 애초에 제 역할이 아닌데요'라고 말한다면?

따라서 지금과 같은 조직에서는 팀원들에게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규정해주는 것이 오히려 더 조심스럽게 느껴진다. 차라리 모호한 게 훨씬 낫다.


1-2.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 내가 이해하고 있는 모든 상황을 팀원들과 공유한다. 만약 고객의 요청사항으로 특정 팀원이 당장 어떤 과업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고객이 처한 구체적인 상황과 그런 요청을 하게 된 이유 및 세부적인 맥락을 모두 전달하고자 애써야 한다. 이를 통해 팀원은 프로젝트의 성과를 위해 왜 그 과업이 필요한지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런 내용을 모두 공유받아야만 필요한 경우(해당 과업을 수행하는 이가 자리를 비우거나 응답이 어려운 경우) 본인이 지시받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어떤 한정된 범위의 일이 아니라 프로젝트 자체가 우리 모두의 과업임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팀 구성원이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때,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받으며 서로의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동의하지 못 하는 이에게는, 사실상 우리 조직에서 일하는 것이 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 누구에게 어떤 이유로 그 일을 부탁하게 되는지도 명확하게 소통한다. '반드시 그 사람이 이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은 프로젝트의 수많은 과업 중 아주 일부에만 해당될 뿐이다. 그보다 1) 누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2) 각자의 업무 숙련도가 어떻게 되는지 3) 이 일을 통해서 해당 구성원은 어떤 스킬 or 지식을 얻을 수 있을지가 업무 분배에 있어 결정적인 요소였다. 단순 과업이 아니고서야 이런 이유도 함께 전달해주면, 팀원들도 그 결정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2-1. 선제적으로 소통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무언가 이상하다' 싶었던 순간에도 '과장님이 생각이  있으시겠지’, 'PM이니까 알아서 하시겠지',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며 넘어갔던 나의 과거가 많이  많이 떠오르는 요즘이다. 물론 사내 문화  분위기에 따라 선제적으로 소통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기 어려운 조직이 있겠지만,  경우에는 조직 차원의 성과를 내기가  어렵겠다 혹은 거의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걸 혼자서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슈퍼 일잘러라면 해당사항이 없겠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인지라 실수를 한다. 지금처럼 절대적인 업무의 범위가 넓고 업무의 양도 많은 경우에는 특히 한 명이 모든 걸 다 살피고 챙기기가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각자가 목격한 위험 요소를 정확히 체크하고 제거하지 않는다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큰 걸림돌이 되어있을 확률이 높다. 따라서 사소한 것이라도 더블 체크하고 서로의 이해 상황을 점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2-2.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 것인가?

- 우리 팀은 지난 달부터 간트차트 관리 툴을 도입하여 활용하고 있다.  전에도 시도해보았지만 업무 범위가 너무 넓고 작성 과업별 단이 일치하지 않아 오히려  헷갈리고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는데,  적당한 툴을 발견한 것이다. ('Team Gantt'라는 툴인데 조만간 리뷰를 작성해보겠다.)  이후 매일 아침저녁으로 간트차트  업무 캘린더, 팀원별 업무 현황을 확인하는 것을 습관으로 만들고 있다.  과정에서 놓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냥 넘어갈 뻔한 과업의 진행 상황을    묻게 되었다.


- 클라이언트와의 미팅 외 짧은 주간회의도 주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매번 사내 메신저 등으로 누군가가 맡고 있는 업무를 더블체크 하기에는 서로 좀 껄끄러운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이해한다. '내가 너무 마이크로 매니징 하나?' 혹은 '내가 너무 보채나?' 싶은 걱정은 일하면서 다들 한 번쯤은 해보지 않았을까? 바쁜 와중에 30분씩이라도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주 작고 사소한 내용까지도 편안하게 공유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일 수 있는데, 적극적인 의견과 불평의 구분도 꽤 명확해졌다. 둘 다 표면적으로는 물론 '의견'일 수 있지만, 함께 프로젝트를 실행해가는 과정에서의 '의견'은 어떤 것을 어떤 상황을 개선해보자는 목적의 발언에만 해당한다. '하지 않기 위한' 의견은 일터에선 '불평'에 불과하다. 그래서 본인은 나름 적극적으로 낸 의견이, 동료들에게는 적극적인 불평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적극적인 불평은 당연히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3-1. 솔직한 피드백을 이끄는 것은 주변의 역할이 8할이다.

비단 업무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피드백은 너무나 중요하다. 처음에는 그저 작은 피드백이었던 것들이라도, 그때그때 건네지 않고 마음에 쌓아두면 나중에는 '분노'나 '실망'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이 붙게 되기 때문이다. 예고 없이 별안간 분노와 실망을 쏟아내면, 당연히 상대방은 억울하다. '갑자기 왜 이래? 예전에는 아무 말 없었잖아!' 그때부터 서로의 신뢰에는 금이 간다.


지금까지는 내가 피드백에 이렇게 약한 줄을 정말 몰랐다. 하지만 나의 모습을 돌아보니, 동료의 말에 순간적으로 당황하거나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경우, 상황을 그저 빠르게 모면하기 위해 못 들은 척 넘어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게 아닌가...? 또 동료의 업무 퀄리티나 속도 등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괜히 아쉬운 소리를 하기가 싫어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기보다 '내가 빨리 마무리하지 뭐'하는 생각으로 삼키고 넘어가는 게 아닌가...?!


피드백은 어떤 순환 구조와도 같아서 A에서 B에게, B에서 C에게, C에서 D에게, D에서 다시 A에게... 계속 돌고 돌아야 한다. 이 중 누군가 받기만 하고 주지 않으면 바로 그 지점에서 순환이 막히고,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사람은 나한테 이런 얘기는 잘 안 하던데, 나는 이렇게 말해도 되나?' 따라서 내가 피드백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그게 우리 팀 전체에 큰 방해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3-2. 나는 어떻게 더 쉽게 피드백할 수 있을까?

-  피드백에는 감정이 동반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상대에게 바로 주어야 할 것이 내 마음에 오래 머물다 보면, 자연스럽게 거기에 감정이 묻어나게 된다. 그러니 동료에게 줄 피드백이 떠오른 그 순간에 표현하는 연습을 하자. 그만큼 내 말은 더 담백하고 간결하게 전달될 것이다.


- 일 자체도 좋지만 그보다 사람에 먼저 관심을 갖자. 과업의 결과에만 집중하면 할 수 있는 말이 너무 한정적이다. 그 사람이 이 회사에 오기 전에는 어떤 환경에서 일을 했는지,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속도를 중요시하는지 혹은 정확도를 중요시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더 좋은 성과가 나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를 면밀하게 확인하면 줄 수 있는 피드백의 깊이도 달라질 것이다.


- 서로에게 피드백을 어렵지 않게 건넬 수 있는 상황을 만들자. 먼저 떠오르는, 가장 쉬울 법한 방법은 프로젝트의 각 단계를 마무리할 때마다 회고를 갖는 것이다. 그때까지의 과정에서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업무 단에서 뿐만 아니라 상대에게도 적용한다면 어떨까? 물론 처음에는 조금씩 불편하고 어색할 수 있겠지만, 그런 감정은 매 단계마다 조금씩 무뎌질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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