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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Feb 10. 2024

너와 나, 우리만을 위한 프라이빗한 책방

작은 아지트가 되어주는, ‘희정서재’

너와 나, 우리만을 위한 프라이빗한 책방. 작은 아지트가 되어주는, ‘희정서재’


오늘의 책방

너와 나, 우리만을 위한 프라이빗한 공간, ‘희정서재’     


책방 3줄 요약

1. 의외의 장소에서 시작되었던 책방과의 첫 만남  
  : 작은 책방은 원래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에 잘 숨어 있다. 예를 들어, ‘장미전철상가’의 지하 같은 곳에. 

2. 감각 있는 친구의 방에 놀러 온 것 같은 안락함
  : 잡동사니와 인테리어는 정말 한 끗 차이다. 책방은 책장의 구석진 곳까지 센스 있게 꾸며져 있었다.

3. 빈손으로 와도 할 일을 만들어 주는 공간
  : 아무것도 없이 몸만 덩그러니 입장해도 구경하고, 읽고, 쓰고, 보고, 꾸미다 보면 두어 시간은 순삭이다. 물론, 그보다 더 많은 걸 할 수 있기도 하지만. 


오늘 소개할 책방은 너와 나, 우리만을 위한 프라이빗한 공간, ‘희정서재’다. 

공유 서재는 최근 대두되고 있는 책방의 다양한 트렌드 중 하나다. 통상적으로 책이 있는 공간을 대여하는 걸 ‘공유 서재’라고 부르는데, 도서관처럼 공간 전체를 무료로 개방하는 곳부터, 독서실처럼 책상별로 대여하는 곳, 책방 전체를 대관하는 곳까지 운영 방식이 다양하다.      


책을 팔지도 않고, 책이 있는 공간을 대여하는 것이 어떻게 ‘서점’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지 궁금할 수도 있겠지만, 공유 서재는 이 시대의 책방이 살아남는 방식 중 하나다. ‘책방지기가 없으면 책방 운영이 더 잘 된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책방은 어느 순간부터 ‘책을 파는 곳’이라는 정의를 조금씩 뛰어넘고 있다. ‘이게 다 책이 팔리지 않는 탓이다’라며 시대를 한탄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관점을 달리하여 해석해 볼 수도 있다. ‘인간의 영리함이 한 단어의 의미를 어디까지 바꾸어 놓을 수 있는가’라고. 공유 서재는 책방과 책방이 아닌 어딘가의 회색지대에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다. 책방을 운영하는 현명한 방식 중 하나일 뿐.  

    

오늘의 서점은 그런 새로움을 온몸으로 흡수한 책방이었다.      



의외의 장소에서 시작되었던 책방과의 첫 만남     


‘희정서재’는 뜻밖의 장소에 있었다. 본래 가고 싶은 책방을 정할 때, 좀 두서가 없는 편이다. 사진 한두 장이나, 후기, 혹은 그 밖의 끌어당김이 있다면 일단 가 보는 편인데, 희정서재 역시 그렇게 가게 되었던 서점이었다. 사진 한두 장에 마음이 동해 대략적인 위치만 알아본 후, 책방에 가겠다고 덥석 날짜를 정해 버렸다.  

    

이윽고 서점에 방문할 날이 다가왔을 때, 난 비로소 서점이 있는 ‘상세한 위치’를 알게 되었다. 이름부터 화려한 ‘장미전철상가’, 잠실나루역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아파트 상가였다.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도저히 책방이 있을 법한 곳이 아니었다. 장미전철상가는 연남동이나 홍대, 망원동에 즐비한 ‘낡음을 대강 끼얹은 뉴트로한 건물’이 아닌, 간판부터 오랜 생활감이 짙게 배어 나오는 건물이었다. 아무리 좋게 봐도 90년대 이전에 지어졌을 법한 오래된 연식의 시멘트 건물. 그곳에 세련되고 깨끗한 모습의 서점이 있다니.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아니, 적어도 나의 고리타분한 편견은 ‘그럴 수 없지 않을까’라며 물음표를 던지고 있었다.      


하지만 고리타분한 편견은 깨야 제맛인 법이다. 희정서재는 장미전철상가의 지하에 있었다. (그러니 혹시 희정서재를 가실 분들, 장미전철상가 외벽에 희정서재 간판이 없다고 놀라지 마세요. 책방은 건물 지하에 있습니다.) 상가 중앙에 있는 계단을 타고 한 층을 내려가자마자 깨끗한 하얀 외벽과 에메랄드빛 민트색 문이 보였다.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이런 곳에 책방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서점을 보자마자 여태 품어왔던 생각들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 책방은 이런 곳에도 있었다. 이런 곳에 있지 말아야 할 이유는 또 뭐겠는가.     


생각해 보면 작은 책방은 늘 상상도 할 수도 없는 곳에 있었다. 이런 곳 책방이 있으면 운영이 될까 싶을 정도로 상점가와 번화가에서 멀찍이 떨어진 깊숙한 골목, 주택가와 아파트 상가, 지하와 옥탑 등 책을 놓을 수만 있다면 어디든 카멜레온처럼 섞여 들어 있었다.      


책방을 다니며 영상까지 만든다는 인간이 이런 기본적인 책방의 규칙조차 알지 못하다니.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잊지 말자. 책방은 어디에든 있다. 그러니 놀라지 말자. 그게 책방의 본래 성질이므로.    

  


감각 있는 친구의 방에 놀러 온 것 같은 안락함      


희정서재는 공유 서재다. 공유 서재의 운영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희정서재는 예약자 혼자 혹은 한 팀만이 공간 전체를 온전히 이용할 수 있는 프라이빗한 공간 대여 서점이었다. 나 혼자서 혹은 우리만이 이용할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 집이 아닌 곳을 마치 내 집처럼 누빌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적잖은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더군다나 희정서재는 인테리어 또한 기분 좋은 안락함을 선사했다. 책방은 두세 명 정도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기 안성맞춤인 크기였는데, 중앙의 책상과 소파를 제외한 모든 공간이 빈틈없이 책과 소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입구부터 분위기를 돋우는 벽난로와 트리, LP판과 와인 병, 책장의 구석구석까지 놓여 있던 플레이모빌 레고 블록, 책방의 곰 인형 ‘부끄부끄(bookbook)’와 각종 인형들, 그리고 엽서와 사진들까지. 공간은 크고 작은 물건들로 빠짐없이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물건이 그토록 많음에도 공간은 부담스럽거나 번잡스럽지 않았다. 계획된 어질러짐은 버겁지 않고 자연스럽다. 인테리어와 잡동사니는 한 끗 차이다.      


그래서인지 희정서재에는 친구의 방에 놀러 온 것 같은 안락함이 있었다. 상업적인 공간이고, 그렇기에 분명 의도된 꾸밈이 존재하는 곳이었지만, 티가 나지 않았고, 의식할 수 없었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예쁜 생활감’이랄까. 인테리어를 정말 잘해 놓은 친구 집에 가면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기분 좋은 편안함이 있는데, 희정서재는 그런 분위기를 가진 공간이었다.      


※ 희정서재를 방문하기 전 미리 알면 좋은 리빙 포인트 

  : 희정서재의 인테리어는 분기마다 바뀐다. 추운 계절에는 전기 벽난로와 트리, 따뜻한 계절에는 강아지 인형과 꽃이 만발한 러그를 깔아놓는 식이다. 슬램덩크가 한창 인기 있었을 때는 작은 농구 골대를 설치해 놓기도 했다. 매번 부지런히 시기와 유행에 걸맞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곳이니, 심심할 때마다 한 번씩 방문하면 바뀌는 소품들을 확인하는 재미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책방과의 거리와 시간 등 여건이 된다는 조건 하에 말이다.)     



빈손으로 와도 할 일을 만들어 주는 공간      


책방에는 책을 포함한 각종 읽을거리가 많았다. 읽을거리뿐만 아니라 쓰고, 보고, 놀거리도 쌓여 있었다. 책방은 웬만한 서점만큼 책을 보유하고 있었고, 책들은 높은 확률로 신간 혹은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들이었다. 대중적이고 유명한 책들은 소설, 시집, 심리학, 철학, 경제학, 예술, 역사 등 장르도 방대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운영되는 책방인 만큼, 누구에게나 부담 없는 책들로 책장을 채우는 모양이었다.     


‘불특정 다수’에는 성인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포함되었다. 책방에는 어른을 위한 책들뿐만 아니라 그림책과 아동 도서들도 많았다. 그리고 놀라웠던 사실. 아동 도서의 절반 이상이 영어로 된 원서들이었다. 책방 후기 중에 ‘주말에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책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책들을 보는 순간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책방에는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책들도 많고, 은근히(?) 영어 공부도 할 수 있을 듯해서, 만약 아이가 있다면 주말에 가족끼리 간단한 간식을 싸 들고 도서관에 가듯 놀러 오기 좋을 것 같았다.     


그 밖에도 유명한 시를 필사해 볼 수 있는 필사 노트와 독특한 독서 기록장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독서 기록장을 ‘독서 영수증’이라고 표현해 놓았던 종이가 유독 재밌어서 기억에 남는다.) 뿐만 아니라 책방에는 사진을 찍을 때 사용하기 좋은 삼각대도 준비되어 있었고, 빔프로젝터도 있어서 영상이나 영화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나열된 책과 소품들만 봐도 이미 짐작하겠지만, 희정서재는 빈손으로 와도 한두 시간은 뚝딱 보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번 책방에서 만난, ‘책방의 책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번 책방에 가기 전에 미리 읽을 책을 한 권 챙겨갔었다. 책방에 책이 많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어떤 책이 있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혹시나 내 취향의 책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앞선 설명을 읽었다면 알겠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책방에는 평소 읽고 싶었던 책들이 몇 권이나 있었고, 예상치 못하게 새로이 발견한 책도 있었다. 책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편이 아님에도, 눈앞에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쉽게 지나가지 못하는 나는 결국 여러 책을 사이에 두고 갈등하다 두 권의 책을 들고 책상으로 돌아왔다.      


이때 고른 책은 예술가들의 서재를 도록처럼 정리한 <예술가의 서재>와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간 <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였다. 그리고 집에서부터 읽겠다고 가져간 책,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도 있었다. 주어진 시간은 몇십 분, 읽어야 할 책은 무려 세 권. 거기에다 필사와 독서 기록장, 방명록까지, 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시간은 짧고 할 일은 많아서인지 결국 난 그 어떠한 책도 끝까지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럼에도 독서 기록장은 또 착실하게 작성했다. 병렬 독서도 어쨌든 독서긴 하니까.     


하지만 맞다. 난 결국 세 마리의 토끼를 잡고 싶어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결국 한 마리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뭐, 그래도 평소 궁금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도 들춰 보았고, 들고 갔던 책은 집에서 마저 읽으면 되니까. 무엇보다 <예술가의 서재>라는 좋은 책을 알게 되었으니 좋은 하루였던 셈 치기로 했다. 지금 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영상 촬영이 없었다면 더 여유롭게 책방을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영상 촬영하고 책방 구경하고, 책까지 읽기에는 그날의 시간이 너무 짧았다.      



희정서재는 조용하고 포근한 아지트 같은 곳이다. 공간 전체를 혼자서(혹은 한 팀만) 온전히 차지할 수 있고, 위치도 지하에 있어서 주변 소음도 거의 없는 편이다. 그래서 두세 명 정도가 함께 하는 독서 모임이나 소모임, 데이트나 가족 나들이에 잘 어울린다. 물론, 나와 내가 함께하는 ‘나 홀로 모임’을 하기에도 매우 적당하고 말이다.      


그러니 주말이나 쉬는 날, 밖에는 나가고 싶은데 카페같이 북적거리는 데는 싫고, 도서관이나 만화방도 그리 끌리지 않는다면, 마음 놓고 뒹굴거릴 수 있는 ‘희정서재’를 추천한다. 집이 아닌 공간에서 집만큼이나 편안한 마음과 기분으로 휴식할 수 있을 테니. 좋은 책과의 만남(다른 말로 하면 독서), 필사, 글쓰기 등 평소 미뤄왔던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덤으로 주어질 테고 말이다. 타인의 방을 대여하는 경험, 친구의 집에 놀러 간 것 같은 아늑한 시간, 희정서재는 분명 쉬어가기 좋은 서점이었다.      



희정서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ookvibes_project/

공간대여 (네이버 예약) https://booking.naver.com/booking/10/bizes/838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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