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 ‘책방공책’에서 우연히 만난
아주 예리한 칼로 사람의 심장을 찌르면, 그 사람은 바로 쓰러지지 않는다. (p.351)
에메렌츠는 반인텔리주의자였으며, 그녀의 의식 속에서 오직 그녀의 감정들만 가끔씩 예외를 행했다. (p.149)
누군가 나에게 늙은 그녀가 흰 카밀라, 흰 협죽도, 부활절의 히아신스라고 한다면, 나는 웃어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 저기 내 앞에서, 여전히 짓눌린 노쇠함 속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그녀의 청아함이 드러나 있었다. (p.275)
- 서보 머그더, <도어> 중 발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치닫는 두 사건이 동시에 벌어지는 건, 생각보다 비일비재합니다. 가볍게는 사은품에 당첨되었는데 자전거를 도난당하기도 하고, 골치 아픈 일에 심경이 복잡하던 중 만원 지하철에서 예상치 못하게 자리를 양보받기도 하죠. 모든 일에는 균형이 있습니다. 균형은 늘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지는 않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죠. 한쪽 저울에 무거운 추가 얹어진다면, 반대편 추 역시 똑같은 크기로 무거워진다는 사실입니다.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둘 중 하나의 규모가 커진다면, 반대쪽의 무게 역시 같은 비율로 늘어나죠.
<도어>는 그런 아이러니의 순간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주인공인 ‘나’의 집안 살림을 돌봐주는 가정부 ‘에메렌츠’는 주변을 돌보고 베푸는 사람입니다. 동네에 아픈 사람과 동물이 생기면 어김없이 등장할 정도죠. 그러나 동시에 무뚝뚝하고 고집불통이기도 합니다. 소설의 표현에 따르면, 에메렌츠는 ‘1인 제국의 1인 국민’이며, 어떠한 권력과 정부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정한 자신만의 법과 규칙’ 외에는 어떠한 제도에도 수긍하지 않죠. 그녀의 삶을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그녀는 평생 빼앗기고, 빼앗기고, 빼앗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릴 때는 가족을 잃었고, 변해 가는 시대 속에서 약혼자는 사람들에게 갈가리 찢겼고, 부유한 변호사에게 마음을 농락당했으며, 목숨을 걸고 지킨 주인집의 아이는 장성한 후 자신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죠. 전부 양차 대전을 겪으며, 격변하는 사회 속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제도란 한낱 말장난일 뿐입니다. 인민 교화원과 히틀러, 호르티(헝가리 독재자)와 라코시(헝가리 공산주의 혁명가)는 다 똑같은 억압하는 자고, 철학가와 영화 제작자는 거짓말쟁이들일 뿐입니다. 종교는 허상이고요. 그렇지만 그녀는 반정부주의자도 아닙니다. 그녀의 세상에는 ‘무정부주의’라는 말조차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그저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자신의 규칙에 따라 구분하고 나누어 도울 뿐입니다. 에메렌츠는 그만큼 순수하고, 솔직한 사람입니다. 철학에 무지하면서도, 철학을 행하는 인물이죠.
전형적인 인텔리이자 부르주아지인 ‘나’는 그런 에메란츠에게 끌립니다. 평생 부모님과 교회에 순종적이었고, 결혼 후에도 남편에게 고분고분했던 나는 점차 ‘에메렌츠’라는 새로운 가치관에 빨려듭니다. 처음에 ‘나’는 그녀를 교화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력합니다. 지식인의 의무를 앞세워 그녀를 나의 세계로 끌어당기려 하죠. 하지만 정작 끌려가는 것은 나일 뿐입니다. 어떠한 책에도 적혀 있지 않은 그녀의 인문학은 나의 고고한 세계를 무너트립니다. 결국 몇십 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어 에메렌츠와 절친이 되죠.
그러나 마지막 순간, 나는 에메렌츠의 손을 놓습니다. 신보다 나를 더 신뢰했던 에메렌츠의 마음을 배신하며, 그녀를 무참히 짓밟아 버리죠. 내게 찾아온 일생일대의 행복은, 에메렌츠에게는 나락이 됩니다. 최상의 기쁨은 최악의 불행과 그렇게 완벽한 대칭을 이루죠. 나는 평생 수많은 배신을 당했던 에메렌츠의 마지막 순간마저 앗아갑니다. 그날 이후 그녀는 나의 원죄가 됩니다. 어깨 위 십자가처럼 그녀를 짊어진 채로, 오래도록 악몽에 시달리게 되죠. 악몽의 끝에는 언제나 ‘문’이 등장합니다. 내가 절대 열어선 안 되었던, 판도라의 상자 같은 바로 ‘그’ 문이죠. (책 내용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이렇게밖에 기술할 수 없는 점, 양해 바랍니다.)
소설을 읽으며 균형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주 모순과 괴리에 노출됩니다. 기쁨과 슬픔은 빈번하게 교차하며, 우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겉보기에 모든 균형은 좋고 나쁨이 엇비슷해 서로를 상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상처 입지만 또 금세 치유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상처는 나을 뿐, 소멸하지 않습니다. 한번 입은 상처는 영원히 기억됩니다. 그러면서 주저하는 것들은 늘어만 갑니다. 화상을 입으면 뜨거운 것을 멀리하게 되고, 칼에 베이면 날카로운 것을 회피하게 되죠. 나이가 들면 감정과 감각이 무뎌진다고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세상의 파고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한선을 정해 두고 그 안에서만 움직이기 때문에 물살에 떠내려갈 일이 줄어든 것뿐이죠. 그러면서 우리는 서서히 죽음으로 향해 갑니다.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모든 것을 빨리 끝내고 안식을 찾길 바라는 거죠.
‘아주 예리한 칼로 사람의 심장을 찌르면, 그 사람은 바로 쓰러지지 않는다’. 이건 소설을 관통하는 문장이자, 작가가 소설을 통해 던지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빼앗기고, 빼앗기고, 빼앗기는 인생을 산 에메렌츠처럼, 지금도 우리는 인생이 던지는 무수한 칼날 속에서 조금씩 스러지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를 구원할 방법이 있긴 할까요? 책을 읽는 내내 고민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벌써 몇십 년을 살았지만, 인생은 여전히 어렵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