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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Aug 17. 2024

천국의 모습을 한 지옥 탈출기

<지옥>, ‘읽을 마음’에서 우연히 만난

천국의 모습을 한 지옥 탈출기, <지옥(L’Enfer)>, 가스파르 코에닉 지음, 박효은 옮김


드디어 사후 세계가 어떤 곳인지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이미 확실했다. 천국과 지옥, 그리고 그에 관한 온갖 미스터리를 묘사했던 작가들은 우리를 완전히 기만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저승은 생각보다 훨씬 더 익숙하고 훨씬 더 불가해한 곳인 듯했다. (p.24)   

바로 그때, 나는 내가 완전히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있는 이곳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었다. 영원히 계속되는 가혹한 형벌이란, 유황불과 쇠꼬챙이가 아니라 등받이가 조절되는 안락한 의자가 있는 공항 대기실이었다. (p.72)    
이곳에서 우리는 꿈을 꿀 수 없었다. 우리는 자신의 상념이라는 감옥에서 영원히 나올 수 없는 종신형을 받은 죄인들이었다. (p.81)     

지옥에서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지만 어떤 것에도 만족할 수 없었다. (p.117)   

죽음을 맞고서야 나는 나의 위선을 마주했고 내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독백의 찌꺼기까지 모조리 다 들이켤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p.220)     

가스파르 코에닉, <지옥(L’Enfer)> 중 발췌

                      

그곳의 지옥은 천국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도 제한 없는 카드, 즐비한 상점들, 전 세계음식을 파는 식당, 어느 도시로든 향할 수 있는 비행기까지. 이곳의 지옥에서는 무한히 소유할 수 있으며, 어디든 갈 수 있었습니다. 물건들의 내구도가 현저하게 좋지 않아 사나흘이면 전부 바스러지는 가루가 된다는 게 문제긴 했지만, 조금 불편할 뿐 절망스럽지는 않았습니다.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카드가 있으니 새것을 사면 그만이었으니까요. 더군다나 우리는 여행자입니다. 공항에 머무는 시간은 기껏 해 봐야 하루 이틀 남짓이고, 아무리 오래 비행을 해도 하루를 넘기지는 않으니, 사나흘은 물건을 사용하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이번 공항에서 산 물건이 증발하더라도 다음 공항이 있으니까요. 모두에게 한도 제한 없는 카드가 있다는 사실은 제가 앞에서 방금 말씀드렸죠?      


네? 공항에 내려서 관광해야 하는데 물건을 새로 살 시간이 어딨냐고요? 호텔에 체크인에 투어 예약에 정신이 없을 거라고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셨군요. 이곳은 천국의 모습을 한 지옥이지, 천국이 아닙니다. 이곳 공항에는 ‘출구’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항은 곧 출발지이자 도착지이고, 거쳐 가는 경유지이자 목적지죠. 그러니 공항에 필요한 만큼 머물다 다음 비행기를 타고 떠나시면 되는 거예요. 이승에서 흔해 빠진 여행이니 숙소니 투어니 같은 것들은 머릿속에서 완전히 비워주시면 되겠습니다. 당신이 도착한 내세는 하늘을 끝없이 누비는, 누벼야만 하는, ‘하늘나라’니까요.      


가스파르 코에닉의 소설 <지옥>은 ‘지옥이 공항의 모습을 하면 어떨까?’라는 재밌는 상상으로 시작하는 소설입니다. 그의 소설 속의 지옥은 천국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화려하고 현대적입니다. 결제는 카드로 하며, 관리인들은 QR 코드와 전자 장치로 망자들을 관리하고, 원한다면 뇌 이식 칩을 심을 수도 있습죠. 물질은 무한하며, 공간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온 지구를 끝없이 떠돌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여행하며 살아가는’ 로망을 실현할 수 있는 세계인 것이죠. 공항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는 게 흠이긴 하지만, 2만 곳이나 되는 전 세계의 도시들을 무제한으로 방문할 수 있는데 공항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게 뭐가 문제일까요. 심지어 공항 내부도 인천 공항이나 싱가포르 공항처럼, 공항에만 있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쾌적한데 말이죠.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이러한 현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흥이 나서 티켓을 예매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싣지만, 첫 여행지인 보츠와나 카사네 공항에 도착해 공항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좌절의 수렁으로 굴러 들어가죠. 출구를 찾기 위해 반항하다 공항 직원에게 끌려가기까지 하고 말입니다. 그에게는 공항 시스템이 ‘경제학적으로 흠잡을 데 없이 이상적’이라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무한 공급과 생산, 소비자들이 모든 물건을 경험할 수 있는 ‘영원’의 시간과 끝없는 자본이 있는, 경제학 교수인 주인공이 살아생전 설계했던 ‘경제적 유토피아’임에도 그는 단지 이곳에 ‘출구’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항을 지옥이라 단정 짓죠.      


개인적으로, 유한한 자원과 자본에 매일같이 허덕이며,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대공황과 전쟁을 겪는 이승의 사람으로서, 무한 생산과 공급이 이루어지는, 완전무결한 시스템에 갇혀 사는 게 대체 왜 지옥일까, 라는 의문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저자가 경제학 교수이기 때문에, 경제학자의 눈에만 보이는 어떤 까다로운 맹점이나, 견딜 수 없는 결함이 있는 것일까, 라는 불손한 반항심이 들기도 했고요. 소시민적인 시각으로는 전 세계 공항을 아무런 제약 없이, 심지어 자리의 제약도 없이 퍼스트 클래스석을 자유롭게 타고 다닐 수 있는 게 대체 왜 지옥일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도착하는 공항마다 무제한 쇼핑을 즐길 수도 있고 말이죠. 저런 게 지옥이라면 죽어서 지옥을 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설에서 묘사하는 지옥은 풍족하고 평화로웠습니다.      


하지만 소설이 전개됨에 따라 그의 지옥이 왜 ‘지옥’같은지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겠더군요. 지옥에서의 사람들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울지 몰라도 심리적, 정신적으로는 끝없이 공허함을 겪습니다. 어떠한 물건도 평생 소유할 수 없고,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감을 느낄 수 없으며, 심지어는 잠을 자거나 꿈조차 꿀 수 없습니다. 소위 ‘도파민’이나 ‘엔돌핀’ 같은 흥분감이나 만족감을 조금도 느낄 수 없는 것이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지옥의 사람들은 어떠한 유대나 애착도 형성할 수 없습니다. 한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바로 다음 공항에 가기 위한 티켓을 끊어야 하므로 공항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하루 정도입니다. 그러니 공항에서 누구를 만나든 하루 이상 친분을 쌓을 수는 없게 되죠. 전 세계에는 2만 곳이나 되는 도시가 있으니 도착지가 같은 사람을 만나기는 늘 하늘의 별 따기고요. 혹시나 운이 좋아 누군가와 급속도로 친해졌다고 해도 저승의 관리인들은 친목을 위한 동승을 금합니다. 그래서 소설의 주인공도 세월이 지나 저승에 오게 된 아들조차 딱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하죠. 그마저도 각자의 비행기를 타러 가는 통로에서, 유리 벽을 사이에 두고 절박하게 인사를 나눈 게 전부였죠.      


하루살이처럼 전전하는 공항 방랑자의 삶. 입고, 먹고, 생활하는 것에는 아무런 불편감이 없는 완전무결한 삶은, 아무런 불편감이 없기에 되려 지옥이 됩니다. 기초적인 욕구만 충족할 수 있는, 그 이상은 꿈조차 꿀 수 없는 현실은 생각보다 괴로움이 되죠. 어떠한 감탄, 공감, 연대, 친교를 나눌 수 없으며, 그저 서로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며 철저한 타인으로 살아야 하는 영생. 아무런 목표도, 의미 없이 충족되는 삶은 그 자체로 고역으로 다가옵니다. 이렇게 놓고 보니 주인공이 왜 지옥을 탈출하겠다고 목놓아 부르짖었는지 알 것도 같군요. 뭐든지 정도가 과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한 법이죠. 뇌를 비우고 바보처럼 두둥실 떠다니며 사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결국 구원받았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것을 말하는 것은 스포일 수 있으므로 이쯤에서 되돌아가세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문장을 적음으로써 결론이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내포한 셈이니 ‘정말 결론이 궁금한 분을 제외하고는 전부 돌아가세요.’      


자, 그래서 결론을 말씀드리면, 주인공은 다행히도 구원받습니다. 기나긴 지옥의 생활을 청산하고 마침내 그가 그토록 원하던 ‘출구’를 찾아내죠. 출구를 찾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옥에 오게 된 이유를 알아내야 하지만, 현명한 우리의 교수 주인공은 마침내 그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깨달음 덕분에 무망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며, 자신이 창조한 ‘사변적인 감옥’에서 벗어나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목적지인 ‘천국’에 이르게 되죠. 소설 속 천국은 지옥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이긴 합니다만, 우리의 주인공은 그곳에서 마침내 진정한 마음의 안식을 찾게 됩니다. 물질적인 안락함이 아닌, 마음의 평온을 얻는 것. 그것이 진정한 천국이자 유토피아였던 것이죠.      


그렇다면 아마 이쯤에서 또 하나의 궁금증을 제기하는 분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다 지옥에 갔대?’라는 질문 말이죠. (두 번째 경고입니다. ‘책을 읽고자 한다면 이쯤에서 돌아가세요.’) 주인공은 소설 전반에 걸쳐 자신이 얼마나 ‘평범한 대학 교수’였는지를 독자에게 각인시킵니다. 얼마나 평범한 결혼생활을 했고(바람을 안 폈다는 소리입니다), 경제학 교수임에도 사치하지 않고 절제하며 살았고, 불법적인 일에 가담하지 않은 모범적인 시민으로 살아왔는지를 회상하죠.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런 사람도 지옥에 간다면, 나도 지옥에 갈 수도 있겠구나’라는 재수 없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물론,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런 곳이 지옥이라면 전 기꺼이 갈 의향이 있긴 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의문이 들죠. ‘대체 왜 이런 평범한 사람이 지옥에 가게 된 거지?’라고 말입니다.     


그 답은 마지막 교수의 고백과 매 챕터 서두에 인용된 단테의 <신곡>과의 연관성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인 교수는 소설의 막바지에 ‘신의 얼굴을 한 지옥 청소부’에게 마침내 자신의 죄목을 고백합니다. 그가 깨우친 죄목은 바로 ‘학자로서의 세상 기만’이었죠. 그럴듯한 말과 수, 이론들을 나열하며 마치 그것이 올바른 이상향인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하고 설득하는 전형적인 학자로서의 행보. 이상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론들을 대충 던져 놓고는 실천은 나 몰라라 하며 자신만의 안전가옥으로 도망치는 정형적인 지식인의 행태. 그는 이러한 위선과 기만 때문에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단테의 지옥에서는 이러한 배반을 가장 엄중한 죄로 여깁니다. <신곡>에서 단테는 지옥을 죄목에 따라 아홉 개의 층위로 구분하며, 탐욕, 분노, 이단 등의 죄목으로 열거되는 지옥의 최하단부에는 ‘배신’의 지옥이 있습니다. 사기보다 더 중한 죄로 취급받는 ‘믿음에 대한 배신’은 국가, 가족, 친구를 불문하고 모든 형태에 적용되는데, 저자는 그런 배신의 목록에 ‘학자의 기만’을 추가합니다. ‘현실에서의 실현 가능성이 모호한 이론을 마치 이상향인 것처럼’ 떠벌리며 대중을 속이는 행위 또한 배신의 한 형태로 정의한 것이죠. 우리의 주인공이 지옥의 구덩이에서 ‘자신의 설계한 이상의 감옥’에 갇혀 무한 루프를 돌아야 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이승에서 떠벌렸던 허상의 이론에 대한 죗값으로 이론을 시시포스처럼 반복하는 형벌에 처해진 것이죠.      


저자가 경제학 교수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러한 결론은 전형적인 ‘학자의 자기혐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현실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이론 놀이와 사고 실험을 반복하는 교수들을 보며 들었던 동족 혐오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무엇에서 비롯되었든 그의 주장이 ‘배신의 신선한 해석’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연구란 자고로 허황된 가설을 다루는 일이지만, 결과가 도출되지 않는 이론들은 탁상공론을 반복하는 것과 진배없으니까요. 물론, 탁상행정과 달리 이론적인 탁상공론은 종종 진보한 무언가의 실마리가 되지만, 그래도 매일같이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을 논하는 학자로 살다 보면, ‘지금 우리가 나누는 언쟁들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들지 않을까요. 저자는 내면에 오랫동안 쌓여 왔던 그런 허망함을 소설로 풀어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합니다. 이론적인 완벽함보다 현실의 세상에는 더 중요한 것들이 분명 있으니까요. 좀 더 사소하고, 소박하며, 만족스러운 것들. 어쩌면 저자는 이러한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않기 위해 소설을 쓴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우연히 만날 수 있었던 이유


읽을 마음




< 우연히 만난 책들 >


책방 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방을 방문할 때마다 공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을 한 권씩 구매합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책들을 그냥 묵혀 두기 아까워 책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 우연히 만난 책들 >은 그렇게 탄생하게 된 글 모음집입니다.

글에서는 책방에서 책을 고른 이유와 책에 대한 소소한 감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달 모나 Monah the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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