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동방서림’에서 우연히 만난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시몽에게서 온 편지였다. 폴은 미소를 지었다. (p.59)
-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사랑일까, 불륜일까, 일탈일까, 혐오일까. 수없이 질문해 봤지만, 가장 적당한 표현은 ‘기 싸움’이 아닐까 합니다. 과연 기 싸움을 사랑싸움이라 할 수 있을까요. 사랑이라는 관계도 안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시도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그마저도 사랑의 일부라 할 수 있다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사랑에 대한 소설입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소설입니다. 뭐, 사랑이 본래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긴 하지만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권태기에 빠진 커플, 폴과 로제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둘은 중년의 한창때를 보내고 있는 커플로, 폴은 실내 디자이너로 우수한 커리어를 쌓아 가는 중이고, 로제는 성실한 비즈니스맨으로 하루하루를 무탈하게 이어나가죠. 로제는 늘 업무가 끝나면 폴의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함께 술을 마시러 나갑니다. 기분 좋게 칵테일을 한두 잔씩 하고, 가볍게 춤을 추고서 로제는 폴을 집으로 데려다주죠. 그러고서 로제는 다시 파리의 로맨틱한 밤거리로 나섭니다. 주된 이유는 하나. 하룻밤을 보낼 여자를 찾기 위해서죠. 그의 삶에는 오래된 파트너인 폴 외에도 무수히 많은 여인네들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폴에게 바쳤지만, 로제에게는 결핍된 부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폴이 자신의 모든 결핍을 충족시켜줄 필요는 없기에, 그는 폴에게 모든 짐을 지우지 않죠.
폴도 로제의 일탈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습관처럼 반복되는 사건들 앞에서 그녀는 이미 무뎌질 대로 무뎌져 있었죠. 아프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상황을 뒤집을 방도도 딱히 없습니다. 없는 에너지를 그러모아 굳이 지지고 볶고 싶지도 않고요. 자신에게 그런 힘이 있을까도 의심됩니다. 이미 한 번 이혼을 했고, 나이도 먹을 대로 먹은 자신이, 로제와의 관계마저 잃고 나면 다시 이만한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내버려 둡니다. 그녀의 인생에 그보다 더 나은 선택지는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어느 날, 그런 폴 앞에 젊은 청년이 나타납니다. 무려 열네 살이나 어린, 클라이언트의 아들 ‘시몽’. 수습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부잣집 미망인의 아들이자, 매우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입니다. 순백색의 피부와 조각 같은 얼굴, 활달한 성격과 부드러운 말투. 그는 로제와 대극점에 있는 인물입니다. 폴에게 한눈에 홀딱 빠졌다는 점도 로제와는 정반대죠. 그녀를 잠깐 들르는 휴게소 따위로 생각하는 로제와 달리, 시몽은 온 사력을 다해 그녀를 아끼고 사랑해주니까요.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경험해 보는 소년처럼, 그는 폴에게 맹목적입니다. 한없이 빛을 쏟아내는 태양처럼, 그의 사랑은 영원히 마르지 않을 기세로 타오르죠.
그가 로제와 단 한 가지 같은 점이 있다면, 대책 없는 천덕꾸러기라는 점일 겁니다. 시몽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입니다. 스물다섯임에도 불구하고 엄마에게 용돈을 타 쓰며, 수습 변호사 자리도 집안에서 거의 꽂아주다시피 한 직장이었죠. 외적으로 눈부시게 매력적이며, 폴을 극진하게 아껴주긴 하지만, 시몽은 폴의 기준에서는 한없는 어린아이입니다. 그래서 폴은 시몽에게 흔들리면서도 쉽사리 그에게 다가가지 못합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시몽의 순수한 질문에 속절없이 미소 짓다가도, 그 순수함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으며 화들짝 놀라 그에게서 멀어지기를 반복했죠. 열네 살의 나이 차는 확실히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몽은 그냥 놓아 버리기에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사내이자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녀를 자주 열네 살 소녀로 만들어 버렸고, 사랑이 진정 어떤 모습인지를 돌이키게 해 주었죠. 사회적 체면 때문에 크게 내색하지는 못했지만, 시몽은 누가 뭐래도 폴의 단조롭고, 종종 음울하기까지한 일상을 환히 밝혀 줄 구원자였습니다. 말 그대로 중년 한복판에 나타난, 거부할 수 없는 행운 그 자체였죠.
자, 지금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가장 궁금한 게 무엇일까요. ‘그래서 폴은 로제와 시몽 중 누구를 선택했을까’. ‘폴은 다시 자신의 행복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을까.’ 등이 아닐까요. 하지만 유명 작가들이 흔히 그렇듯, 사강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도 이 삼각관계를 쉽사리 끝맺지 않습니다. 가장 궁금한 질문들에도 역시 답을 해주지 않았고요. 그래서 소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긴장감이 유지됩니다. 로제와 시몽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폴과 그런 그녀에게 이끌려 다니는 두 남자를 감각적으로 묘사하며 비참한 아름다움의 정수를 보여주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좋은 소설인 건 맞습니다. 문장도 훌륭하고, 장면 구성은 더할 나위 없으며, 로맨스 소설을 좋아한다면 빠질 수밖에 없는 ‘간질간질한’ 장면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구석에서 불쑥 튀어나오죠. (그런 거 되게 좋아하잖아요, 우리. 갑자기 훅 들어오는 고백 같은 거.)
하지만 저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자기 파괴적인 사랑을 하는지. 지리멸렬할 정도로 서로에게 질질 끌려다니며 괴로운 사랑을 꼭 해야만 하는지. 그렇게까지 서로를 아프게 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사랑’인지. 그저 남 보이기에 부끄럽지 않은 어떤 모습이 되기 위한 집착이 아닌지. 혼자가 두려운 고독 공포증 환자들의 병리적인 회피는 아니었는지. 책을 읽는 내내 개운치 못한 짜증이 솟구쳐서, 중후반쯤 되었을 때는 이 말도 안 되는 관계성을 빨리 끝내버리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결말도 화딱지 나더군요. 미적지근의 끝판왕인 결말 앞에서, 저는 이렇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 맞다. 나 로맨스 싫어하지.
개인적으로 맺고 끊는 거 확실하게 못해서, 자신 포함 모든 주변인들 속 터지게 만드는 사람을 정말 질색하거든요. 최근 트렌드인 로맨스물들, 특히 ‘혐관’ 같은 장르들을 기피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고요. ‘싫어하는데 좋아하고, 좋아하는데 싫어해’ 같은 허튼소리를 듣다 보면 머리가 다 아파 오거든요. 머리 아플 일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굳이 남의 사랑 찾아보면서까지 괴로워지고 싶지는 않아서, 로맨스를 보지 않은 지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웹소설 세 번 시도했다가 세 번 다 실패하고 이제는 쳐다도 보지 않습니다.)
뭐, 저도 처음부터 요따위로 낭만 없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꽃보다 남자>라는 세기의 띵작(...)을 일본 원작까지 찾아볼 정도로, 한때는 혐관도 로맨스도 참 좋아했었죠. 하지만 서로를 헐뜯고 아프게 하는 사랑 외에도 사랑의 형태가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밀당이 끝없이 이어지는 불같은 사랑이 아니라도 세상에는 낭만을 느낄 요소들이 많다는 걸 깨달으면서. 어느 순간 로맨스는 쳐다도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 하지만 오해는 마세요.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아닙니다. 연극적인 사랑을 싫어하게 되었다는 뜻이죠. (참고로 잔잔하고 따뜻한 로맨스는 아직도 좋아하고 잘 봅니다.)
사랑은 어떻게 봐도 사랑일 때 비로소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데 싫어하는 거면 그건 사랑이 아니죠. 괴롭히는데 아껴주는 것도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탈을 쓴 간악하고 공격적인 마음일 뿐이죠. 진정한 사랑은 누가 뭐래도 보살피고 아껴주며, 그의 편이 되어 주고 싶은 것입니다. 남녀 간의 사랑이든, 가족 간, 친구 간, 동료 간의 사랑이든 사랑의 근본적인 정의는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같은 사랑을 더 이상 믿지 않습니다. 그런 사랑을 다룬 소설도 그리 즐겨하지 않고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그런 의미에서 그다지 마음 가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소설을 추천하냐 추천하지 않느냐 하면, 추천하는 바입니다. 내내 투덜댔으면서 왜 갑자기 돌변하냐, 유명한 책이라서 기본 예의라도 갖추려는 것이냐 (혹은 ‘유명한 책이라서 좋게 얘기하려는 것이냐’), 라고 묻는다면. 음,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개인적인 취향이 아니다 뿐이지, 기본적으로 좋은 소설인 건 맞거든요. 불같은 로맨스를 싫어하는 제가 이렇게까지 알러지 반응을 보일 정도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순도가 상당히 높은 격정적인 로맨스임이 틀림없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로맨스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인생 책으로 꼽을 만큼 잘 쓰인 소설이라는 뜻이죠. 또한 꼭 로맨스가 아니더라도 나약한 인간의 갈팡질팡하는 심리 묘사와 중년에 접어든 이들의 위기의식도 세심하게 잘 표현했고요. 거기에 사강이 스물네 살에 쓴 소설이라는 사실까지 염두에 두고 읽다 보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확실히 천재적인 소설이 맞습니다.
그러니 이번 서평은 아마도 이렇게 끝맺을 수 있겠군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정말 좋은 소설이지만 좋아하는 소설은 아닙니다. 모두에게 한 번쯤 읽으라고 추천하고픈 소설이지만, 개인적으로 아무에게도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매 문장마다 천재적이라 감탄했지만, 하나도 재밌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싫어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제 진짜 마음은 무엇일까요. 좋다는 걸까요, 안 좋다는 걸까요. 싫다는 걸까요, 안 싫다는 걸까요. 글쎄요. 제 마음이 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게 요새 유행하는 ‘혐관’이라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