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책의 메트로놈과 오래된 늪의 질문

잃어버린 일상의 박동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


일상과 함께하는 박동들. 심장이 뛰는 소리, 눈이 깜빡거리는 소리. 숨결이 들고 나는 소리. 박동들은 일정한 메트로놈의 주기 안에서 왼쪽과 오른쪽을 오간다. 메트로놈의 추는 정기적인 박자 안에서 일상의 안정을 마련한다. 그러나 박자가 언제나 일정한 것은 아니다. 추에 새로운 무게가 덧붙을수록, 주기적인 움직임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워지기도 한다.

예기치 못한 사건들은 추를 무겁게 한다. 갑자기 발생하는 문제들, 피치 못할 사정들, 자발적 선택으로 발생한 상황들까지. 박동의 고리에 무게를 싣는다. 다행히 추에 얹어지는 격한 근심은 추의 진자운동 안에서 서서히 증발해 간다. 문제는 그 이후에 남는 진득하고 끈적한 물질들이다. 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발생하는 후회와 회한. 그리고 자책. 자꾸만 돌이키는 치졸함. 만약이라는 덫이 만든 수많은 성공의 가정들. 그랬다면 어땠을까. 이랬다면 조금 더 나았을까. 의식하지 못한 사이 켜켜이 말라붙은 감정의 잔여물들은 추의 몸집을 키운다. 작고 네모나던 추가 점차 커다래진다. 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막대가 허공을 휘적거린다. 좌우로 오가던 움직임에 한 가지 박자가 추가된다. 바닥과의 충돌. 왼쪽, 바닥, 오른쪽. 바닥. 왼쪽. 무게감을 이기지 못한 추는 왼쪽과 오른쪽을 향하던 중 한 번씩 자꾸만 바닥을 찧는다. 정기적 충돌은 둔탁하게 울리며 존재감을 굳건히 한다. 제 머리가 마모되는 줄 모르고, 제 살이 갈리는 줄도 모르고, 추는 바닥을 향해 몸을 찧고 또 찧는다. 거대해진 감정의 몸집이 일상의 박동을 상하게 한다. 자책은 엉뚱한 박동의 패턴을 낳는다.


세 개로 불어난 박자는 우습게도 새로운 일상을 만든다. 추의 불안정한 움직임은 어느새 익숙한 소리가 된다. 새로운 삶의 박동이 생성된다. 바닥으로 내리꽂는 불규칙한 충돌들은 고통스러운 감각을 넘어 이상한 희열을 만든다. 새로운 박자가 주는 묘한 안정감에 잠식되어 버린다. 추가된 박동에 맞추어 일상의 행동에는 제약이 생긴다. 자책의 굴레에 빠져 자꾸만 시간을 복기한다. 행위의 순간과 순간을 오가는 자신을 붙잡는다. 붙잡아 묻는다. 행위의 의미를 묻는다. 말의 필요를 묻는다. 그들이 꼭 필요했던 것인지를 재차 묻는다. 다른 이의 시선들 안에 그것들을 놓아 본다. 타인의 시선을 해석한다. 은연중에 드러났던(혹은 드러났다고 생각했던) 의미가 무엇인지를 추론한다. 도대체 무엇이었는지를 번뇌한다. 질문들이 켜켜이 쌓인다. 메트로놈의 박자는 새롭게 무거워졌다. 추가된 세 번째 박자의 존재감이 굳건하다. 안정적인 통증의 습관에 몸을 맡긴다. 파괴적인 안정감은 수식어 없는 안정감이 된다. 오뇌는 또 다른 하루와 등가 관계를 맺는다. 세 번째 박자를 거치며 모든 행위는 완벽해진다. 기계는 이미 일상의 박동을 잊은 지 오래다. 꽤 오래전에 고장이 났다.




지지대를 상실한 메트로놈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본디 자신의 형상인 양 수그린 머리를 재차 꺼덕댄다. 나약한 끄덕임에서 벗어나 허리를 곧추세울 법을 찾지만, 홀로 받치고 일어섬에 힘이 든다. 엉겨 붙은 끈적한 감정의 잔여물들은 좁고 깊은 수렁을 만들었다. 진득한 늪에 얼굴이 묻힌다. 세상의 소음이 천천히 연소된다. 늪 안에는 고요한 적막뿐이다.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 몸을 옥죄는 단단한 구속뿐이다. 늪이 조성하는 파괴적인 안정감 안에서 얼굴은 비로소 평온함을 찾는다.


이곳에서 나갈 수 있는가?

늪에 빠진 얼굴이 묻는다.


그것은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반드시 마주해야 할, 아주 오래된 질문이다. 수없이 반복된 질문이다. 그러나 얼굴은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얼굴과 세상은 여전히 답을 찾고 있다. 늪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방법을. 불규칙한 세 박자의 울림에 익숙해지지 않는 방법을. 파괴적인 안정감의 관성에 몸을 내맡기지 않을 방법을.

자책하지 않을 방법을 찾는 것.

그것은 꽤 힘이 드는 작업임이 분명하다.

매거진의 이전글정직한 패배와 위태로운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