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패배와 위태로운 승리

요동하는 감정 앞에 당당해지는 법


우리는 모두 승리한다. 승리는 좋은 성적이나 성과처럼 거창한 무언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일상의 매 순간은 사소한 승리와 패배로 가득 차 있다. 기다리지 않고 만난 택시, 유난히 빨리 줄어든 계산대의 줄, 때마침 오는 지하철, 우연히 받게 된 사은품은 모두 승리의 일종이다. 특히나 바로 옆에 나의 승리를 목격한 누군가가 있었을 때, 그들과 달리 오로지 나만이 승리의 당사자가 되었을 때, 승리의 기쁨은 배가 된다. 오묘하게 만족스러운 감정은 하루를 지내는 원동력이 된다. 승리의 규모가 커질수록, 인생의 꽃밭은 화창해진다. 삶은 더욱 맑아진다.


그러나 우리는 패배한다. 예정보다 빠르게 도착한 지하철은 낙오자를 생성하고, 누군가를 먼저 태운 택시는 다른 이를 태우지 못한다. 누군가가 승리하면 누군가는 패배한다. 매우 간단한 승자 공식이다. 가끔 인생의 패배는 간발의 차로 타지 못한 택시 이상이 되기도 한다. 특히 염원하던 시험이나 경연에서 맛보는 패배는 고통스럽다. 패배가 격하게 쓰라린 것은 반대의 시선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크든 작든, 승리가 주는 묘한 도취감에 휩싸여 세상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패배의 자리에 선 자신에게 가장 먼저 초라한 시선을 보낸다. 승자가 되고 싶은 씁쓸한 열망이 몹쓸 자아를 만들어낸 셈이다.


진부한 어투로 위로를 좀 하자면. 성공은 또 다른 성공의 보험이 아니며, 실패는 또 다른 실패의 보장이 아니다. 승리와 실패는 다가오는 시간의 초입을 정의하는 기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가끔 이상한 쪽으로 비상하게 작동하는 우리의 머리는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곤 한다.




패배는 언제나 미약한 억울함을 동반한다.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약간의 무시와 조소. 패자는 매번 소정의 값을 치른다. 그러나 패배는 인생이 무상으로 갈취하는 적선이 아니다. 패자에게는 승자를 관람할 기회가 주어진다. 패자는 승자를 통해 승리에 도달하기 위한 지도를 제작할 기회를 얻는다. 패배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 거울은 잔인하리만치 유용한 도구이다. 아침에 얼굴과 몸을 씻을 때, 우리는 거울 앞에서 얼굴에 붙어 있는 이물을 털어낸다. 패배란 그런 존재이다. 얼굴에 붙은 이물을 적절히 떼어낼 수 있는 계기. 그래서 승자를 관람하는 기회는 소중하다. 승자를 통해 우리는 장애물의 견적을 낼 수 있다. 승자는 성공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려주는 좋은 지표이다. 그를 지형지물로 잘 활용한다면 성공에 닿기 위해 극복해야 할 각자의 장애물의 높낮이와 험준함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패배는 유용하다. 순수하리만치 정직한 나의 모습을 비추어 내가 좀 더 온전해질 수 있도록 돕는다.


반대로 승리는 서늘한 불편감을 동반한다. 승리는 고생한 시간을 축복하는 트로피이자, 눈물겹게 이겨낸 시간의 적금을 깨어 받은 포상이다. 그러나 트로피는 활짝 웃는 모습을 찍은 사진처럼 인생의 한 조각을 포착하여 새긴 기록물에 불과하다. 승리는 인생이 무상으로 지급하는 기부금이 아니다. 승리가 파생한 행복과 자신감은 완납된 적금에 붙는 약간의 이자이다. 이자가 온전히 내것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적금에 다시금 헌신해야 한다. 그러나 이 사실은 쉽게 망각된다. 승리의 트로피가 주는 중독적인 도취감은 교환 가치재라는 트로피의 본질을 망각하도록 한다. 망각은 욕망을 키운다. 한 번의 승리가 영원할 것이라는 나태한 욕망. 탐욕의 늪에 발을 디디는 순간, 승자는 패자가 된다. 이치를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염원은 끝없는 패배를 동반한다. 실현될 수 없는 착각은 승자를 실패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다. 승리의 감각이 애써 재생시킨 자기 신뢰의 세포들은 그렇게 서서히 소멸된다. 승리의 예리한 칼날은 살벌하고 위태롭다. 잘 단련하면 좋은 도구가 되지만, 잘못 놀리면 서슬이 퍼런, 슬픈 결말을 맞게 된다.


승리와 패배는 인생의 시간을 알려주는 시곗바늘과도 같다. 인생 시계 안에서 그들이 가리키는 기호들은 끝없이 바뀌고 변한다. 그러나 무수히 많은 시간들은 다만 하루 안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알려줄 뿐, 그 자체로 옳지도 그르지도, 늦지도 빠르지도 않다. 시간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인생 시계의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승리와 패배는 다만 내가 디디고 있는 오늘의 위치를 알려줄 뿐, 진리의 전언이 되지 못한다. 그들의 의미가 필요 이상의 모양으로 비대해지는 건 우리의 이상하리만치 비상한 해석 능력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요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릴없는 기호들 따위에 잠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만 위축되고 조금만 자만하자. 나의 오늘을 가리키는 시간 앞에서, 조금만 더 자신감을 가지자. 고작 찰나를 기록하는 기호들일 뿐이다. 그래도 괜찮다.

매거진의 이전글절망과 무료의 이질적 상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