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과 무료의 이질적 상관성
절망의 만찬을 채우는 두 가지 심플 레시피
절망의 만찬에는 두 가지 음식이 오른다.
좌절의 누룩이 곰삭아 만들어낸 술 항아리와 지글거리며 타오르는 내 살점의 고기.
우리는 모두 고유의 항아리를 지고 살아간다. 오직 좌절의 일렁임만을 담는 이 항아리는 주인에 따라 크기도, 형체도, 보관된 위치도 모두 다르다. 침대 머리맡, 회사 책상 밑, 앞자리 조수석, 화장실 귀퉁이, 골목의 후미진 곳 등. 몹시 견고한 항아리들은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유연히 수납된다. 은밀히 숨겨진 항아리는 홀로 될 때 비로소 유용해진다. 침대, 책상, 차, 화장실, 골목의 귀퉁이에서 우리는 조용히 항아리를 머리에 쓴다. 매우 고집스럽게 눌러쓰고는 비좁은 어둠 안에서 비로소 편안히 절망한다.
눈을 가리면 용맹해진다. 검은 시야는 좌절된 마음을 마치 실재처럼 영사한다. 아직 닥치지도 않은 미래,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마음, 타인의 얼굴에 흐릿하게 지나갔던 미약한 비웃음의 흔적을 되돌리고 되돌린다. 수없이 반복된 장면은 - 비록 그것이 현실이 아닐지라도 - 온전한 현실이 된다. 정수리와 관자놀이 곳곳에서 수근대는 언어들을 출력한다. 모래알처럼 꺼끌거리는 절망의 누룩들은 순식간에 얼굴을 뒤덮는다. 항아리를 쓴 자는 말들의 어둠 안에 꼼짝없이 갇혀 버린다. 커다란 머리와 뾰족한 언어들은 옹색한 공간 안에서 지독하기 엉기고 설킨다. 항아리는 곧 머리의 자리를 대체한다. 속수무책으로 비대해져 버린 머리는 갑갑함을 이기지 못해 휘청인다. 미련하게 휘청이다 그대로 고꾸라진다.
그렇게 우리는 좌절의 술 항아리가 된다.
미처 항아리에 담기지 못한 몸뚱아리는 이글거리는 불판 위로 던져진다. 욕망의 불판. 그 위에서 머리 잃은 몸뚱아리는 광란의 춤을 춘다. 머리를 가득 채운 좌절과 절망이 일말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마음을 잃은 자는 되찾으러 달려가고, 비웃음을 받은 자는 비열한 웃음을 빼앗기 위해 총력을 다한다. 미래가 두려운 자는 지루했던 대비의 계획이 더 이상 지루하지 않다고 느낀다. 원하는 삶과 실재하는 삶, 항아리에 투사된 미련한 삶의 상상이 한 데 모여 비루한 몸을 움직이도록 만든다. 행동과 계획이 지속되는 동안 욕망의 불판에 얹어진 살갖은 까맣게 타들어 간다. 그러나 검은 항아리에 가려진 두 눈이 그것을 볼 리 만무하다.
그렇게 우리는 지글거리는 불판 위의 고기가 된다.
절망의 만찬이 비로소 완성되었다.
조리 방법은 제법 심플하다.
애석하게도 만찬에 초청받은 이는 나 하나뿐이다. 좌절의 항아리를 끌어안고, 제 살점인 줄 모르는 고기를 씹어 가며 결의를 다지는 이도, 나 혼자뿐이었다. 술독에 차 있던 좌절은 바닥을 보이고, 고깃덩이에 불과해 보였던 육신은 감각을 되찾는다. 언젠가처럼 보였던 머나먼 미래가 현재가 된 그곳에, 스스로를 식인하는 영혼 없는 내가 있다. 감각마저 꺼 버린 무감정한 얼굴로 나를 짓밟고 뜯는 낯선 나를 발견한다. 열없이 머쓱해진다. 입에 반쯤 우겨넣었던 왼쪽 정강이의 일부를 도로 내뱉는다. 조심스레 본래 있던 자리에 기워 넣는다. 상처를 멋쩍게 토닥인다.
무료하다. (국어사전 의미 1. 부끄럽고 쑥스럽다)
또 무료하다. (국어사전 의미 2. 흥미 있는 일이 없어 심심하고 지루하다)
공격성이 할퀴고 간 자리는 허망하다. 하릴없이 손가락을 놀린다. 축 늘어진 모양새가 꽤나 우스꽝스럽다. 내일을 지고 갈 힘조차 남아있지 않는 모양새로 다가오는 아침을 맞는다. 지리멸렬하게 부서지는 햇살이 무척이나 따갑다.
집념에 찬 좌절은 공허한 무료함을 낳는다.
엄한 화마가 헤집은 심장이 괴괴하고 허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