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의 송곳니 사이에서
모든 삶의 교차로에는 신호등이 있다
추악해졌다. 누군가의 기쁜 소식을 접한 순간 저편 어딘가에 머물러 있던 열등한 이빨 두 개가 조용히 고개를 든다. 나는 영락없이 거대한 두 이빨 사이에 갇혀 열병을 앓는다. 아픔은 두 가지인데 우선 내가 기쁨의 대상이 아니라는 밋밋하고 멋쩍은 아픔이 하나요, 추악하게 병들어 초라해진 스스로에 대한 연민의 아픔이 둘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몸살의 끝에서 숨소리도 내지 못한 채 울음을 울었다. 너무 커 버린 덩치를 붙들고 소리 내어 우는 울음은 이제 사치라는 것을 깨닫는다. (급기야 이러한 것들마저 사치가 되어 버렸다.)
사람이 잦아든 밤길. 교차로의 소리마저 적막하다. 또 다른 거대한 무언가의 침묵을 보며 남모를 위안을 얻는다. 적색 신호등을 보며 묻는다. 나는 어느 교차로 위에 서 있는가.
모든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듯, 모든 교차로에는 신호등이 있다. 운이 좋아 시간대가 잘 맞는다면 한 번도 서지 않고 긴긴 길을 막힘 없이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꼬이고 꼬인 신호들 앞에 멈추어 서고, 멈추어 서며 답 없이 정체되는 구간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신호 앞에 한 번도 멈추지 않는 이는 없다. 적색 신호는 모두가 마주해야 하는, 불편하고도 불가피한 수순이다. 삶의 모든 교차로에는 신호등이 있다. 신호등은 잔인하리만치 모두에게 공평히 작동한다. 그래서 저만치 앞으로 달려나간 이를 다음 교차로에서 만날 수도 있고, 혹은 뒤에 두고 온(두고 왔다고 생각하는) 이를 예기치 않게 맞닥뜨리기도 한다. 길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언제, 어떠한 신호를 만날지 모르는 채 바보 같은 뜀박질을 계속한다. 앞서고 있음에 안도하고, 따라잡힘에 분노하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아련히라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달리고 또 달린다.
시동이 켜진 채 드릉대는 두 다리를 다독이며, 적색 신호 앞에 멈추어 선다. 약동하는 근육의 파장이 등허리를 타고 거슬러 올라온다. 살려면 달려야 할 텐데. 살아있음을 증명해야 할 텐데. 앞서간 저들처럼 달리고 싶어 멈춰선 두 다리가 움싯댄다. 근육들이 경직되다 못해 아려 온다. 교차로의 적색 신호가 오래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정지하는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 괴로움에 몸서리친다. 등 뒤에서 두 갈래의 이빨이 고개를 치켜든다. 열등의 송곳니 사이에 선 두 다리가 앙상하다. 영원과도 같은 찰나의 한복판에 저릿한 두 다리를 붙들고 나는 오늘도 제자리에서 뜀을 뛴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앞서간 이들을 따라잡을 만큼 세차세 달릴 수 있도록. 세세한 근육들과 혼자만의 준비운동을 한다. 언젠가는 내달릴 것이다. 언젠가는.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