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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Oct 05. 2022

2. 외톨이의 색깔

나의 작은 아기 사자 : 달작가 글뚜레의 소설(이야기책) NFT



2      



야생에서 무리에 섞이지 못하는 건 흔한 일입니다. 잔인한 섭리지만, 카메라와 오랜 시간을 함께 다니다 보면 그게 썩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죠. 어딜 가나 약자가 있는 걸 보면, 자연은 약한 존재를 필요로 하는 게 틀림없습니다.      


자연은 세심하고 성실하게 약자를 만듭니다. 누구나 그를 알아볼 수 있도록 외톨이의 표식을 달아 주죠. 세상에 밑거름이 되어 줄 존재가 여기 있다고 살뜰히 알리는 겁니다. 참으로 정성스러운 잔인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외톨이는 금세 티가 납니다. 빛으로 따지면 꺼져가는 불씨 같다고나 할까요. 종을 막론하고 외톨이들은 옅은 색채로 일렁입니다. 자신의 색깔을 선명히 빛낼 만큼 태울 수 있는 땔감이 많지 않거든요. 먹이나 물, 부모의 사랑, 의지할 대상 등. 외톨이들은 늘 무언가가 부족합니다. 당연하게 취하지 못하는 결핍은 그들을 흐릿한 색으로 만들죠. 그들 중 운이 없는 몇은 사냥감으로 전락하여 색채를 완전히 잃기도 하고요.     


하지만 나의 작은 아기 사자는 달랐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했음에도 그는 자신만의 단단한 색깔로 빛이 났죠. 다가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거절에 쉽게 지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색깔로 끝없이 빛을 냈죠. 여느 외톨이와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촬영 팀이 그를 사흘 만에 발견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을 겁니다.     


그를 처음 발견한 건 나였습니다. 별이 하나도 없던 밤, 우리는 여느 때와 같이 야간 촬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불만을 켜 둔 채 야간 카메라를 돌리던 중이었죠. 카메라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나는 옆에서 졸고 있던 선배의 어깨를 조심스레 두드렸습니다. 선배는 짜증 섞인 신음을 내뱉었고, 나는 뒤로 설금 물러났습니다. 지금이야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 되었지만, 당시 나는 수많은 선배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야생 다큐멘터리 촬영에 있어서 완벽한 주니어였죠. 초심자의 허둥댐을 겨우 수습하고 막 정신을 차린 단계 정도. 꽤 보잘것없었습니다. 당연히 선배의 졸음기 가득한 눈을 억지로 띄울 배짱 따위가 있을 리 만무했죠.     


"아기 사자 하나가 무리에 섞이질 못하는 것 같습니다..."     


웅얼웅얼거리는 내 목소리가 선배에게는 자장가 같았던 걸까요. 대충 알겠다는 손짓을 보낸 그는 지프차 뒤편에 마련된 침낭으로 기어들어 갔습니다. 그걸로 그날 밤의 대화는 끝이었습니다. 아침이 될 때까지 난 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선배의 코 고는 소리를 벗 삼아 시간을 보내야겠지요. 다시 카메라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시간을 보내기에 녹화 중인 화면만큼 좋은 것도 없었으니까요.     


카메라 안에는 여전히 아기 사자가 있었습니다.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크기였던 그는 카메라 배율을 잔뜩 키우고 나서야 화면 안으로 들어왔죠. 아기 사자는 풀숲에서 버둥대고 있었습니다. 제 어미에게 세 번째 거절을 당하는 중이었거든요. 어미는 도통 그에게 곁을 주지 않았습니다. 아기가 젖을 물려고 하면 일어나고, 또 물려고 하면 일어나는 식이었죠. 아기 사자는 그때마다 바닥으로 나동그라지거나 내동댕이쳐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미가 밀쳐도 금세 다시 어미에게 다가가 배에 얼굴을 묻었죠.      


어미가 다섯 번째로 그를 거절하자 그는 콧잔등에 잔뜩 주름을 잡고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렸습니다. 떠나가라 울어댔죠. 배가 고프다는 아우성과 자신을 거부하는 이유를 따져 묻는 억울함이 적절히 섞인 울음이었습니다. 아기 사자의 소리에 맞춰 배가 들쭉거렸습니다. 아기의 몸이라고 하기엔 꽤 늘씬했죠. 동글동글하고 빵빵한 배를 자랑하는 다른 형제들과 확연히 비교되는 모양새였습니다.     


아기 사자가 울음을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던 중, 그의 형제 한 마리가 근처로 다가왔습니다. 멀리서부터 달려온 형제는 그를 세게 누르며 덮쳤습니다. 그러곤 이곳저곳을 깨물었죠. 형제에게 깔린 아기 사자는 네 발을 허우적댔습니다. 형제의 어깨를 할퀴며 반격도 해 보았지만, 별 효과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반격에 신이 났는지, 형제는 아기 사자를 더 격하게 물어댔죠. 그들은 뒤엉켜 한참을 씨름했습니다. 한쪽이 월등하게 우월했지만, 주변의 어떠한 사자도 그 사실엔 관심이 없는 듯했습니다.     


결국 아기 사자는 스스로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유일한 방어책인 소리 공격을 하면서요. 그는 형제의 얼굴을 잡고서는, 귀에 대고 있는 힘껏 포효했습니다. 주변의 새들도 놀라 후두둑 달아날 정도로 크게 삐익! 울었죠. 형제들은 물론, 주변 사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정도로 큰 소리였습니다. 달려들었던 형제 사자는 주춤주춤 물러섰습니다.      


형제의 두툼한 몸뚱이에서 겨우 빠져나온 아기 사자는 느린 발걸음으로 쉴 곳을 찾았습니다. 힘이 빠졌는지 조금씩 비틀거렸죠. 그러다 근처에서 쉬고 있던 수사자의 갈기를 밟고 말았습니다. 실수였을 겁니다. 바로 앞에 있던 돌멩이조차 제대로 보지 못해 휘청였거든요. 하지만 수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는 이빨을 잔뜩 드러내더니 협박조로 으르렁거렸습니다. 앞발로 아기 사자를 툭 건드리기도 했죠. 아기 사자의 몸보다도 큰 발로요.      


아기 사자는 그대로 고꾸라졌습니다. 힘없이 굴러가는 조그마한 몸을 보면서도 수사자는 짜증 섞인 숨을 내뱉었습니다. 아기 사자는 바닥에 납작하게 붙은 채 마지막 힘을 모아 앙칼진 소리를 내었죠. 억울함이 가득한 소리였지만, 그곳의 그 누구도 작은 아기 사자의 목소리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내 카메라를 제외하고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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