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읽기 능력을 타고나지 않았습니다. 읽기에 관한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단순한 첫 번째 사실은, 문해력이 자연적인 것이 아닌 문화적이라는 것입니다.
- 매리언 울프, <다시, 책으로> 중 발췌
인간은 읽기 능력을 타고나지 않았다는 말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책이었습니다. ‘인간의 유전자에는 읽기 능력이 없다’라는 사실도요. 읽기의 근본이 되는 문자가 결국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한 말도 아니건만.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읽기’를 자연스레 습득하는 기술로 여겨 왔던 모양입니다. 인간이라면 응당 지녀야 하는 능력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인지 신경학자이자 ‘읽는 뇌’의 세계적 권위자가 들려주는 ‘읽기’는 반드시 학습이 필요한 무언가였습니다. 단어 한 글자를 이해하기 위한 뇌 속의 움직임은 참으로 복잡다단했죠. 글자를 식별하는 시각 피질부터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는 인지와 의미화의 과정, 그리고 더 깊은 의미를 이해하려는 유추, 추론, 공감의 절차까지. 단어와 문장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의 뇌 속에서는 순간적으로 수백, 수천만 가지의 활동들이 연쇄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전부 반복적이고 단계적인 학습을 통해서 완성한 기술들이죠. 이 사실을 조금 바꾸어 말하자면, 의도적인 학습이 없이는 읽기의 능력을 획득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읽기는 우리의 태생적인 본능과 달라서, 마치 외국어처럼 계속해서 연마해 나가야 하는 기술이니까요.
그러니 읽기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 읽어야만 합니다. 마치 외국어를 배우는 것처럼요. 꾸준히 읽지 않으면 결국 ‘읽기’의 기술을 잃게 될 테니까요.
문제는 요새 우리가 읽기의 기술을 잃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매우 진부하게도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들 때문이죠. 빠르고 신속하게 정보를 제공하는 기기들 덕분에, 우리는 점차 단순하고 직관적인 것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빠르고 단순한 것들은 저자가 말하는 ‘인지적 인내심’이나 ‘몰입’의 과정을 가뿐하게 생략해 버리게 만듭니다. 더불어 읽기의 기술이 무뎌진 건 말할 것도 없고요. (매일같이 뉴스에 오르내리는 문해력 상실에 대한 이슈들이 그 방증이죠.) 그래서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우리 같이, 다시 책으로 돌아가자고. 급변하는 이 시대 한복판에서 힘들게 학습했던 읽기의 능력을 잃지 말자고.
<다시, 책으로>는 알라딘 종로점에서 만난 책이었습니다. 서점에서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고자 미리 온라인으로 어떤 책들이 들어와 있는지를 검색하던 중 마주치게 된 책이었지요.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저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이 책을 사 오기로 결심했습니다. 최근 들어 책방 여행을 다니면서, ‘책’의 가치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들을 자꾸 하게 되었거든요. 아마 많이들 그럴 테지만, 저도 커가면서 ‘책’이라는 걸 손에서 놓아 버린 사람 중 하나입니다. 어릴 때는 욕을 먹어가면서까지도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책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책이 있던 자리에 스마트폰을 비롯한 기기들을 들이며 점차 책을 귀찮아하게 됐죠. 점차 책을 읽는 행위를 일종의 ‘노동’으로 치부하면서요. 하지만 최근 시작한 책방 여행은 어린 시절의 저를 자꾸만 돌아보게 했고, 그러면서 ‘책이란 내게 대체 무엇인가’라는 고민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시점에서 만난 <다시, 책으로>라는 제목은 제게 큰 울림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죠.
<다시, 책으로>는 인지과학자이자 아동발달학자 ‘매리언 울프’가 들려주는 ‘읽는 뇌’에 관한 설명서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읽고 있으며, 그리고 제대로 된 깊이 읽기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읽는 사람과 잘 읽고 싶은 사람, 읽는 걸 준비하는 사람(아이들)을 모두 아우르는 책이죠.
읽는 걸 잃고 있지만, 조금씩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다시, 책으로>는 읽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읽어보기 좋은 책입니다. 저자의 설명과 남모를 고백을 통해, 읽기를 소홀히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되고, 읽기의 세세한 과정을 함께 짚어 가며 아무래도 책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샘솟게 되거든요. ‘다시, 책으로’ 돌아갈 마음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