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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바다 Sep 10. 2019

밤길

어두운 밤 길이다. 찬바람이 휙 하며 길바닥을 치고 달아난다. 어깨를 더 웅크리고 외투 속 주먹을 꼭 쥔다. 먼 데 달이 보인다.
 
마트에서 재고조사가 있어서 늦게 마쳤다. '열두 시’하고 휴대폰에서 기계음이 들린다. 조용한 밤이라 소리가 너무 커서 흠칫 놀란다. 퍽퍽 퍽 퍽 있는 힘껏 바삐 걷다 보니 발걸음 소리도 크다. 이것 또한 불안해서 두근거린다. 분리수거장을 지나가는데 쓰레기 마대 뒤에서 누가 튀어나올 것 같아 심장이 쪼여 든다.


 더욱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이 골목만 빠져나가면 4차선 도로가 나오니깐 덜 무서울 거다. 늦은 시간이라 사람은 없겠지만, 자동차들이 다니니깐 좀 낫겠지. 얼굴은 시린데 등에서 땀이 난다.


 지나쳐 온 작은 골목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와서 목덜미를 움켜쥘 것 같아 목이 섬뜩하다. 오늘따라 왜 이리 무서운 상상이 자꾸 드는지.  발소리를 줄이지 못한다.
 
드디어 큰 대로변으로 나왔다. 차들이 쌔액 쌔액 지나간다. 한밤이라 속도를 마구 내어 달려가지만  그래도 마음이 조금 놓인다.


저만치 앞에 컴컴한 벽 쪽에 하얀 물체가 보인다. 움직인다, 강아지인가, 후유, 강아지라도 보이니 조금 덜 무섭다. 그런데 점점 가까워지니 화들짝 놀라서 마구 달아난다. 그것도 내가 가는 방향으로 앞서서 달리고 있다.


 내 발걸음 소리가 커서 강아지가 잔뜩 겁을 먹은 걸까. 저 나름대로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다. 마치 흰 토끼가 사냥꾼들에게 쫓겨서 산으로 도망가는 형상이다. 귀는 달리는 속도에 조금이라도 불편함이 없게 최대한 뒤로 바짝 붙이고 털은 갈기처럼 휘날린다.


앞서서 달려가다가 나에게서 조금 멀어지니 뒤돌아보면서 속도를 늦추었다. 숨이 너무 가빴던 걸까. 다가가니 또 정신없이 달려간다. 뒷모습이 무서움에 절어있다.
 
나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너를 해치지 않는다고, 어두운 벽 쪽에 아까처럼 쪼그려 있으면 그냥 지나갈 거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강아지는 그런 여유도 주지 않고 냅다 달리고 있다. 조그만 것이 저렇게 달리다간 심장이 터질까 걱정이다. 나는 나대로 무서워서 빨리 걸었을 뿐인데, 저렇게 겁을 먹다니. 한심한 놈 같으니라고.


 중학교 때 주말의 명화를 보는데  쫓기면서도 남녀는 마지막으로 키스를 했다. 그 당시는 빨리 도망가지 뭐하는 짓인가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틀렸다. 그들은 죽는 순간까지 행복을 원하는데 내 식대로라면  죽는 순간까지 불안과 두려움에 떨다가 죽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 밤길을 호젓하게  걸었으면 좀 좋을까. 나이가 들면 무섬증도 없어진다던데.


 지나온 골목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내가 상상한 불안이 있을 뿐이었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걱정하고 노심초사하는 꼴이 강아지보다 더했다.  


 무릎관절이 삐걱거리고 숨이 헉헉 차는데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걷고 있다. 아파트 입구가 훤하게 보인다. 이제 불안을 운명에 맡기고 편히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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