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동물권, 자연권
시어머니의 지인이 동물복지 인증 농장을 운영하신다.
지인의 사업에도 도움이 되고, 손녀들의 건강도 챙길 겸
어머님은 계란을 구독하기 시작하셨다.
덕분에 우리는 그곳에서 매주 계란 열 알을 얻어먹고 있다.
마트에서 계란을 고를 때
동물복지 계란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겉모습은 똑같은데 가격은 보통 계란보다
10%쯤 더 비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동물복지 인증 농장은
전체 농가 약 10만 곳 중 0.5%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80여 가지 항목을 통과해야 하는 까다로운 기준도 부담이겠지만
무엇보다 가격의 벽이 높다.
돈이 되지 않으면 선택받기 어렵다.
권리.
인간의 권리는 물론 중요하다.
이제는 동물의 권리, 자연의 권리를 함께 이야기해야 할 때다.
우리는 식탁 위에 놓인 고기를
너무 쉽게 ‘식품’으로만 부른다.
그것이 한 생의 삶이었음을
잠시라도 떠올려본 적이 있었을까.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에 사는
열 살 소녀 제네시스 버틀러는
‘고기 없는 월요일(Meatless Monday)’을 이야기한다.
완전한 채식이 아니어도 좋다.
하루쯤, 선택을 바꿔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동물복지 인증 마크가 붙은 제품을 고르는 일,
식물성 대체식품을 한 번쯤 시도해보는 일.
이런 작은 선택들이
동물의 권리, 즉 동물권을 지지하는 행동이 된다.
동물권만큼 중요한 것이 자연의 권리다.
자연은 더 이상 보호의 대상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권리를 가진 주체로 바라봐야 한다.
강은 흐를 권리가 있고,
숲은 유지될 권리가 있으며,
바다는 오염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미 몇몇 나라에서는
강이나 숲에 법적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지구의 모든 생명은 서로 얽혀 있다.
한쪽의 위기는 결국 모두의 위기다.
기후변화는 이 사실을 더욱 절박하게 드러낸다.
자연이 무너지는 순간,
인간의 권리도 함께 흔들린다.
인간의 권리만 중심에 두고 달려온 결과가
지금의 기후위기일지도 모른다.
인권, 동물권, 자연권은
서로를 밀어내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를 지탱하는 구조다.
‘인간은 누구와 함께 살아갈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면
어떤 권리도 오래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오늘,
식자재를 고르는 작은 습관부터
천천히 바꿔보자.
***망원동 ‘카페빈틈M’에서
<Climatus College : 기후변화 시대를 사는 신인류의 자세 / 동물권에 대한 생각>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