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틋해질 어느 날을 살고 있다

by 월요희비극

할머니가 우리와 함께 살기 시작한 건 내가 열 살 때부터였다. 그전까지 할머니는 막내 외삼촌과 단둘이 지냈다. 그 집을 생각하면 바닥이 평평하지 않은 노란 방과 오르기도 어려웠던 다락방이 떠오른다. 여러 세대가 하나의 대문 안에 살았던 집인데 묵직한 철제 대문을 열면 제일 먼저 공용 화장실이 있었고, 수돗가를 빙 둘러싼 여러 개의 문이 있었다. 그 문—용도는 ‘현관문’이지만 문의 생김새나 재질, 주변 환경을 보면 ‘방문’이 더 어울렸던 것 같다—을 열고 들어서면 바깥과 다름없는 부엌이 있고, 그 안에 부엌보다 단이 높은 방이 있어서 방 입구에 앉아 신발을 벗곤 했다. 그 작은 방에는 더 작은 다락방이 딸려 있었다. 거기까지가 할머니 집의 전부였다. 다락방 계단은 어린 나의 발에도 너무 좁아서 언제나 옆으로 오르고 내렸는데,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만큼 어둡고 낮은 공간이라 평소에는 거의 창고로 사용한다고 했다. 나는 그 방이 좋아 할머니 집에 가면 다락방 문부터 열었고, 엄마는 위험하고 먼지 날린다며 다시 문을 닫았다. 그래도 내가 오랫동안 조용히 있어줘야 할 때는 엄마도 어쩔 수 없이 다락방 출입을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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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이 짧고, 작고, 오줌을 잘 참는 아이였으므로 다락방에 어울렸다. 할머니가 떼어준 밀가루 반죽 하나면 얼마든지 다락방에서 지낼 수 있었다. 밀가루 반죽으로는 구체적인 무언가를 빚는 대신 구 모양으로 굴렸다가 그걸 눌러서 넓게 폈다가 다시 말아서 길게 만드는 것을 반복했다. 그건 그 자체로 골몰하게 해서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실망할 일이 없었다. 어떤 모습을 떠올리고 그것과 비슷한 모양을 만드는 일에는 늘 실망감이 뒤따랐다. 손재주가 없는 나는 간절하게 원해도 비슷한 모양을 만들 수 없었고 조금도 닮지 않은 실패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애초에 보고 싶던 모양까지 잊어버리게 됐다. 그래서 나는 굴리고 누르고 늘이는 과정만 반복하다가 반죽의 표면이 굳어 각질처럼 갈라지기 시작하면 부서지는 가루와 덩어리를 한쪽에 밀어놓고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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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누워 있으면 여태 들리지 않던 어른들의 말소리가 작고 정확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모르는 말이지만 알 것 같은 대화가 오갔다. 그즈음 어른들은 나와 동생을 짠하게 쳐다보았고 나는 그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동생과도 떨어지게 되는 걸까. 여기 남을 수 있나? 그럼 이 다락방에서 매일 잘 수 있나? 엄마랑 헤어지기 싫은데. 어른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이런 생각을 하다가 잠들었다. 내가 잠든 사이 엄마가 날 두고 떠날까 봐 긴장해서인지 꿈에서는 늘 엄마를 잃어버렸다. 그런 일을 나는 벌써 몇 번 겪어보았고, 엄마가 사라지면 엄마가 많이 보고 싶은 것과 별개로 엄마 얼굴을 오래 기억하지 못했다. 떠오르지 않는 존재를 그리워하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이었다. 그래도 할머니네 다락방에서 잠들었다는 건, 오늘 밤에는 엄마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건데. 한참 뒤 나를 부르는 엄마 목소리에 다 굳어버린 밀가루 반죽을 들고 내려오며 생각했다. 할머니는 거친 손으로 내 얼굴을 몇 번 쓰다듬고는 “아휴, 얼마나 조물거린 거여. 새카매진 것 좀 봐” 하며 돌이 된 반죽을 받아 갔다. 나는 반쯤 감은 눈으로 엄마와 함께 화장실에 갔다. 쪼그려 앉은 채로 “엄마, 밖에 있지?” 물으면 엄마가 응, 했고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계속계속 “엄마, 밖에 있지?” 물으며 참았던 오줌을 누었다. 오줌의 더운 김이 좁은 화장실에 번졌고, 엄마는 그렇게 오줌을 참으면 안 된다고 나무랐다. 그해 엄마는 죽을 만큼 맞고도 죽지 않은 공으로 드디어 이혼 합의서와 양육권을 가질 수 있었다.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했고 나는 일주일 정도 할머니 집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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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집에 얼마간의 짐을 가지고 온 날에는 삼촌 손을 잡고 시장에 갔다. 삼촌은 나와 동생을 오래된 문방구에 데려가 여기에서 제일 폼 나는 걸 고르라고 했다. 아직 치우지 못한 대형 튜브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알록달록한 보트를 하나 골랐고 겨우내 그 보트에서 잠들다가 빵꾸가 나서 정작 여름에는 못 썼다. 사라진 것들을 미화하는 기억의 오류일까. 사라져야 할 때를 놓치고 살아남은 탓으로 마음이 일그러지는 걸까. 오래전 죽은 삼촌 얼굴은 기억나지 않고 그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일용직을 전전하던 알코올 중독자 삼촌과 기이한 구조의 낡은 집은 언제 떠올려도 애틋한 기분이다. 그냥 그렇게 되어버렸다. 고장 난 몸으로도 성실하게 일하는 엄마를 자꾸만 미워하고, 한겨울에도 부족함 없이 온수가 나오는 새집에 좀처럼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것처럼. 이 모든 것이 애틋해질 어느 날이 나는 자주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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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진선

그림 : 한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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