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나날

by 월요희비극

아홉 살 가을에는 연일 유괴 사건이 보도됐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유괴 사건 외에도 자잘한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났다. 알림장에는 ‘낯선 사람 따라가지 않기’가 매일 적혔고, 학교에서는 관련 가정통신문을 배포했다.

그 가을에 나는 거의 혼자 지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아무도 없었다.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식탁에는 토스트를 사 먹으라는 짧은 메모와 이천 원이 놓여 있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직감했지만 나는 평소처럼 학교에도 가고 피아노 학원에도 갔다.



(C) 2019. HanInae. All rights reserved.


학원에서는 바흐의 미뉴에트만 스무 번쯤 쳤다. 동요나 가곡만 배우다가 처음 미뉴에트를 배운 날, 뭔가 ‘있어 보인다’는 인상을 받아서 집에 오자마자 어설픈 연주를 자랑했더니 엄마가 과장되게 좋아하며 잔머리가 일어난 머리를 다시 단정하게 묶어주었다. 그 기억 때문에 미뉴에트를 치면 어쩐지 사랑받는 기분이었다. 다른 곡도 쳐야 했지만 연습 카드에 대충 표시만 하고 돌아왔다. 학원 차를 타지 않고 빙빙 돌아 걸어왔는데도 집에는 아직 불이 꺼져 있었다. 해가 져서 어둡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캄캄한 집에 혼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가로등 불빛이 닿는 현관 앞에 쪼그려 앉아 누군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엄마나 아빠나 동생이 돌아오면 같이 들어가야지, 혼자서도 의젓하게 보낸 하루를 자랑해야지, 생각하면서. 힘을 주어 눈을 작게 찡그리면 이웃집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들이 십자가 모양으로 번졌다. 낮에는 여름인 초가을인데도 밤바람에 손이 곱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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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날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아랫집 아주머니가 다급하게 올라오더니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냐며 따라오라고 했다. 집에 혼자 있는 줄 알았다고, 위험하게 왜 거기에 그렇게 앉아 있냐고. 아주머니는 밥에 반찬을 얹어주며 다정하게 다그쳤다. 엄마가 아파서 동생을 데리고 할머니네 갔으니 당분간은 아줌마네 와서 밥을 먹으라고. 아빠도 바빠서 내일 온다니까 오늘은 아줌마네서 자고 가라고. 그래서 그날은 아랫집에서 잤다. 매일 들락거렸던 아랫집인데 내내 의식적으로 긴장하고 있었다. 긴장을 풀면 잘 잡고 있던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 아랫집 언니들은 뉴스를 보며 공개수사로 전환된 유괴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를 두고 너랑 동갑이네, 빨리 찾아야 할 텐데, 하며 아주머니가 깎아주는 과일을 나눠 먹었다. 세상이 이렇게 무서운데 집에도 안 들어가고 있었다며 아주머니는 잠시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풀었다. 과일을 먹고 우리는 다 같이 누웠다. 아주머니와 언니들 사이에서 잠자는 숨소리만 들렸을 때에야 나는 조용히 울 수 있었다.

다음 날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아랫집에서 책가방을 메고 나왔기 때문에 아무도 내가 학교에 가지 않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학교 대신 집으로 돌아와 소파 등받이에 발을 올리고 거꾸로 누운 자세로 고개를 젖혀 뉴스를 봤다. 뉴스의 대부분이 전날 보았던 유괴 사건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제는 너무 많이 보아서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을 외워버렸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화려한 옷차림, 특이한 이름까지. 그 아이에 대한 정보를 계속 보고 듣다 보니 어느 순간 알고 지낸 사이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전 국민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는 부러움이 일기도 했다. 며칠 뒤 범인이 검거되었고, 아이는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그 후 추모 영상이나 후속 기사들을 접하면서 나는 자주 울었는데, 아는 사이처럼 느껴졌던 아이가 죽어서이기도 했고, 그 자체로 참담한 일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사라진다면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일부러 유괴 당하고 싶다는 생각에 어두운 골목을 느릿느릿 걸어보기도 했지만 그 끝은 언제나 아무도 없는 집이었다. 엄마는 아직 많이 아파서, 동생과 집에 돌아오려면 시간이 더 걸린다고 했다. 아빠는 자주 늦었다. 나는 다시 학교도 학원도 열심히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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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서는 연습해야 할 곡을 치는 대신 옆방에서 연주하는 곡을 따라 치곤 했다. 하농이나 체르니 같은 건 너무 재미없어서 그날도 옆방에서 들리는 곡의 멜로디를 따라 쳤는데 갑자기 연주가 뚝 끊기더니 옆방 애가 내 연습실을 쓱 보고 갔다. 멋쩍어져서 괜히 안 하던 연습을 열심히 하고 나왔다. 그런데 며칠 뒤 그 애가 사라졌다. 담임 선생님은 그 애가 전날 피아노 학원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며 혹시 그 친구에 대해 아는 사람은 2학년 10반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리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추모 영상에서 슬퍼하던 피해 어린이의 친구들이 생각났고 나도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게 걱정이든 분노든 슬픔이든. 피아노 학원 아이가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과 별개로 이 사건에 대한 지분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전날 그 애를 본 적도 없고, 그 애와는 얼굴만 아는 사이였지만 2학년 10반으로 향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에는 벌써 교실 밖으로 줄이 길었다. 한참을 기다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그 애와 같은 학원에 다니는데 며칠 전에 학원에서 봤다고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그래? 고맙다,라며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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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그 애는 옆 동네의 목욕탕 앞에서 발견되었다. 목욕탕 계단에서 울고 있는 그 애를 목욕탕 주인이 발견했다고. 여기서 왜 우냐고 묻자 사람들이 씻으러 들어가면 돈을 훔쳐 오라고 언니들이 시켰단다. 무사히 돌아온 그 애는 곧바로 전학을 갔고 학원도 그만두었다. 날씨가 급격하게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반팔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후에 학원 차를 타고 가다가 낯선 동네에서 커다란 드럼통에 무언가를 태우는 그 애를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내가 본 그 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도 전학 수속을 밟았다. 모두가 하교한 늦은 오후에 엄마와 함께 교무실에 가서 담임 선생님을 따로 만났다. 아직 몸 곳곳에 멍 자국이 남아 있는 엄마가 내 전학 문제로 잠시 돌아왔고, 예고 없이 왔기 때문에 나는 내가 외가댁 근처로 전학 가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그래서 반 아이들한테 인사할 시간도 없었다. 작별 인사를 나눌 친구도 없었지만 아쉬웠고, 누군가 나의 행방에 대해서 물어보기는 할까, 궁금했다.

아직도 바람이 차가워지거나 혼자 밤길을 걸을 때면 그때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친구들에게 물으면 대부분이 유괴 사건을 기억하지 못했다. “어떻게 몰라? 그렇게 유명했는데. 하루 종일 보도했는데” 하고 말하면, 친구들은 피해 어린이의 길고 특이한 이름까지 정확하게 외우고 있는 나를 더 신기해했다. 그때 우리는 겨우 아홉 살이었다고. 그런 말을 들으면 분명하고 구체적인 기억들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아이를 죽인 유괴범이 만삭 임신부였다는 사실과, 하루에 빵 하나씩만 주면서 돈을 훔쳐 오라고 시켰던 ‘언니들’이 고작 열한 살이었다는 사실처럼. 학교에 가지 않고 종일 뉴스만 보았던 날이, 거꾸로 누워 TV를 보느라 목도 허리도 눈도 다 아팠던 어떤 날이. 말도 안 될 것 같은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던 많은 날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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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진선

그림 : 한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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