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위를 먹는 밤

by 월요희비극

오래전부터 자는 일은 내게 커다란 숙제였다. 정확하게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불면은 열두 살 때였는데, 새벽 네 시가 넘도록 잠들지 못해 거실로 나갔었다. 그즈음 우리 집은 조그만 빌라에서 아파트로 막 이사했다. 시에서 제일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아파트에 산다는 것 자체만으로 나는 자주 행복했다. 특히 모두가 잠든 밤에 거실에서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는 일은 혼자만의 근사한 취미였다. 할머니와 동생은 잠귀가 어둡고 머리만 대면 잤으므로 엄마만 자면 됐다. 엄마는 우리가 자는지 확인하고 불을 끈 뒤 방으로 들어가곤 했는데 그때 깊게 잠든 척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나는 불 꺼진 방에서 온 신경을 청각에 집중하다가 안방에서 흘러나오는 텔레비전 소리가 멎으면 일어나 살금살금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베란다 입구로 향했다. 베란다는 원래 거실 한쪽부터 안방 뒤편까지 이어졌는데 거실과 안방을 가르는 벽이 베란다 중간까지 튀어나와 두 개의 베란다 사이에 짧은 통로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사할 때 거실 쪽 베란다를 트고 안방 쪽 베란다 입구에 문을 새로 달면서 통로처럼 보이던 벽 끝이 웅크리고 앉으면 몸을 숨겨줄 만큼의 좁은 공간으로 바뀌었다. 창과 가깝고 베란다였던 곳이라 바닥이 늘 차가웠지만 거기에 앉아 있으면 이상한 아늑함이 느껴졌다. 자다 깨서 귀와 꼬리를 축 늘어뜨린 채 따라 나온 해피를 안고 그곳에 앉아 시외로 빠지는 한적한 도로의 야경을 내다보고 있으면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시곗바늘 소리, 할머니가 코 고는 소리 같은 것이 조화롭고 규칙적으로 들렸다. 그러면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고, 그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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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던 그날도 나는 야경을 보고 다시 이불 속에 들어와 있던 참이었다. 이제 자야지, 마음먹고 자세를 여러 번 고쳐 누운 뒤 잠을 청했는데 한참이 지나도 잠들지 못했다. 애써 눈을 감느라 미간에 잔뜩 힘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 시계를 보니 네 시가 넘어 있었다. 갑갑한 마음에 다시 거실로 향했는데 베란다 입구에 엄마가 앉아 있었다. 우리는 서로 놀라 소리를 질렀고 그럼에도 아무도 깨지 않아서 조금 웃었다. 엄마는 속삭이며 왜 안 자? 하고 물었다. 엄마는? 하니까 잠이 안 온다고. 나는 나도, 하면서 그러고 보니 자지 않고 다시 나오는 일에 대해서 엄마가 혼낸 적도 없고 하지 말라고 한 적도 없는데 나는 왜 맨날 몰래 나온 걸까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얼른 자라고 말한 뒤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은 날이 밝고서야 잠들 수 있었다.

그 뒤로도 잦은 불면에 시달렸다. 잠들지 못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업고 재우다가 눕히면 다시 깨서 울고, 업고 있어도 엄마가 앉으면 울었다고. 다른 사람한테는 업히지도 않아서 엄마는 밤새 울면서 나를 업고 장롱에 기대 서 있었다고. “그때부터 너는 유난스러웠어” 하며 엄마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기숙사 생활을 하느라 집을 떠났다. 전교생 기숙 학교라 50인 1실의 커다란 숙소에서 잠을 자야 했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자정이면 취침 점호와 함께 불을 껐고, 아침 여섯 시면 기상방송과 함께 운동장으로 나가 애국가를 부르고 구보를 해야 했다. 모든 게 낯설었던 환경에서 다른 건 누구보다 빨리 적응했지만 잠자는 일만큼은 졸업할 때까지 적응하지 못했다. 오십여 명이 잠든 숨소리와 잠꼬대하는 소리, 잠투정하는 소리를 들으며 좁은 철제 침대에 누워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눈을 뜨거나 감는 것밖에 없었다. 자기 위해 눈을 감고 있다가 두서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눈을 떠서 달빛에 드러난 천장 무늬를 보았다. 그런 밤에는 손발이 묶인 채 깊은 수조에 갇힌 기분이었다. 엄마는 숙면에 좋다는 것은 다 구해다 줬다. 엄마가 준 아로마 오일을 베갯잇과 이불에 뿌리기도 하고, 약재 주머니를 베개 안에 넣어두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다만 불면의 시간에도 내성이 생겨 눈을 감고 좀 더 오래 버티거나, 천장의 무늬를 더욱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출처가 불분명한 여러 명의 곤한 숨소리는 여전히 견디기 힘든 종류의 외로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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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잠이 오지 않으면 하고 싶은 걸 하면 됐기에 크게 괴로운 점은 없었다. 늦게 자면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었지만 일어나는 게 자는 것보단 여러모로 수월했고 시간표만 잘 짜면 오전 수업은 얼마든지 뺄 수 있었다.

자는 게 다시 과제가 된 것은 스물넷부터였다. 그해 겨울 나는 친구 한 명을 잃었다. 세상에서 제일 당연한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유도 모른 채 영영 사라진 그 애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 애를 만난 건 스물넷의 여름이었다. 전날 팥빙수가 먹고 싶은데 혼자 먹기 부끄럽다며 왕십리까지 와달라고 해서 나를 보러 온 선배 커플을 두고 남가좌동에서 왕십리까지 갔었다. 그런 게 다 괜찮았던 애였다. 다른 관계쯤이야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팥빙수를 먹고 밤새 춤추고 놀다가 다음 날 점심까지 먹고 헤어진 뒤 아픈 애인을 보러 갔었다. 몸살에 걸려 끙끙 앓고 있는 애인을 두고 친구랑 놀고 온 것이 미안해서 종일 옆에 있으려 했는데 그 애한테 다시 연락이 왔다. 전날 함께 봤던 예능 프로그램에서 만들어 먹은 음식이 먹고 싶다고. 애인에게 다시 왕십리에 가도 되는지 물었더니 서운한 표정으로 아까까지 같이 있었잖아,라고 했는데도 나는 어제는 팥빙수고 오늘은 닭볶음탕이래, 하며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내가 원하는 건 거의 들어주는 사람이었으므로 다녀오라고 했다. 그렇게 다시 왕십리에 가서 밥을 먹고 과일을 먹고 놀다가 잠든 것이 마지막이었다. 다음 날 애인이 걱정되어 일찍 나오면서 나 갈게,라고 인사했더니 응 잘 가,라며 손을 흔들었던 것이. 그 뒤 그 애는 나의 어떤 연락이나 방문에도 대답이 없었다. 나중에야 다른 친구들을 통해 그 애가 나로부터만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내내 피하기만 하던 그 애는 내가 대학 마지막 기말고사를 마친 겨울날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어떤 이유인지는 말해줄 수 없고 앞으로 연락하지 말 것, 누구에게도 자신의 소식을 물어보지 말고 지금 이 문자에도 답장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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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이 가고 스물다섯 3월에는 그토록 고대하던 대학원에 입학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학교에 가기는 했지만 도저히 수업을 들을 수 없어서 벤치에 앉아 울기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 애가 사라진 이유가 짐작조차 되지 않아 계절이 바뀌어도 나는 어떻게 슬픔을 견뎌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까지 우는 이유가 고작 친구 한 명 때문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의 슬픔을 설명할 수 없어 사람들을 피해 다녔고 집에서는 종일 벽만 보고 있었다. 그러면 간절하게 자고 싶어졌다. 깨어 있는 게 너무 괴로우니까 아무 꿈도 꾸지 않고 오랫동안 자고 싶었다. 하지만 잠은 쉽게 들 수 없었고 가까스로 잠들어도 그 애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 엄마는 다시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매일 전화를 걸어 상추를 많이 먹으면 좋대,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해봐, 하면서 나를 달랬다. 그날도 엄마는 전화를 걸어와 키위를 먹으면 좋대, 하고 말했다. 키위를 먹으면 잠이 잘 온다고. 요즘 키위가 제철이라고. 그러니까 나가서 키위를 사 먹으라고. 돈이 없으면 엄마가 보내줄 테니 키위를 먹어보라고. 나는 대충 알았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키위를 사려면 대로까지 다녀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즈음 서울로 취직한 동생과 함께 살게 되면서 좀 더 넓고 싼 집을 찾아 수색으로 이사를 했는데 재개발이 예정된 오래된 동네라 편의점 하나 없었다. 좋은 건 대로 건너 상암동의 야경을 맘껏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전화를 끊고 MBC 사옥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맥없이 슬퍼졌고, 다시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충동적으로 일어나 옷을 입었다. 슈퍼가 문을 닫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서둘러 슈퍼에 도착하자마자 사장님께 키위가 있는지 물었고, 마침 손님이 몰려 분주했던 사장님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 여섯 개들이의 싱싱한 키위가 놓여 있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나는 키위가 든 검은 봉지를 앞뒤로 흔들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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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집에 돌아와 봉지를 열어보니 키위가 아닌 번개탄이 들어 있었다. 분주했던 계산대와 내 옆에서 번개탄을 계산하던 남자가 떠올랐다. 나는 망연자실해서 번개탄을 꺼내놓고 엉엉 울었다. 야근을 마치고 들른 애인이 놀라서 무슨 일인지 물었다. 그는 내가 우는 모습을 매일 보면서도 매번 참담한 표정을 짓곤 했다. 그 표정은 때로는 버겁고 때로는 위로가 되었다. 나는 눈물을 훔치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 사람은 얼마나 어이없을 거야. 고기 구워 먹으려고 했을 텐데 키위가 들어 있으니 말이야. 그래도 그 사람은 키위를 먹을 수나 있지, 나는 이 번개탄을 얻다 써? 그러자 애인은 네가 사람 목숨 하나 살린 걸 수도 있어,라고 말했다. 그 사람, 마음을 고쳐먹고 키위를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키위는 내가 내일 사다준다고.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고.

다음 날 저녁 나는 키위를 먹었고, 그럼에도 잠이 잘 오지는 않았다. 여전히 맥락 없이 울고 하루 종일 울기도 하지만, 어쨌든 다시 사람들 때문에 육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죽지 않고 쓸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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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선

그림: 한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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