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채는 나의 오랜 적이었다. 얼마나 야채를 싫어했냐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 김밥에서도 언제나 당근과 우엉, 시금치를 빼고 먹었고 파나 양파가 들어갈 확률이 높은 볶음밥류는 밖에서 사 먹을 수 없었다. 토마토는 토 맛이어서 토마토인 줄 알았고 급식을 먹던 시절에는 카레라이스나 짜장밥 나오는 날이 제일 싫었다. 야채가 너무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당근, 호박, 감자, 양파 중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날에는 반찬도 김치와 단무지뿐이어서 야채를 걷어내고 소스만 밥에 조금씩 얹어 먹다가 포기하곤 했다. 피자 위에 올라간 야채를 일일이 골라낼 수 없어 치즈를 다 걷어낸 후 도우만 먹었고, 라면 건더기 스프는 뜯지도 않고 버렸다. 어쩌다 야채를 먹으면 구역질을 해서 나중에는 딱히 맛에 영향을 끼치지 않아도 야채가 들어갔다는 생각만으로도 구역질이 났다. 그래도 엄마는 어떻게 해서든 내게 야채를 먹이고 싶어 했다. 그러다 보니 식사 시간은 언제나 전쟁이었다. 건강하게 차린 엄마의 밥상에서 내가 먹을 만한 반찬은 없었다. 그럼에도 내 할당량의 밥은 먹어야 했으므로 김에 얇게 밥을 깔고 먹다 남은 과자를 그 위에 올렸다가 음식 가지고 장난친다고 파리채에 맞아 죽을 뻔한 뒤로는 무언가 먹기만 하면 배가 아팠다. 비위가 약해 야채 외에도 못 먹는 음식이 많았던 나는 점점 먹지 않는 애가 되었고, 언제나 키가 작았다.
그럼에도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엄마가 유일하게 교육에 열성이었던 유치원 시절 편식하는 아이들을 개선하는 프로그램에 나를 등록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직접 호박전을 부치기도 하고 게임을 하기도 했다. 커다란 말판에서 참가 어린이들이 직접 말이 되어 움직이는 게임이었는데 신나게 움직이다가 얼굴에 오이를 붙여보고, 당근을 맛보고 하는 등의 미션이 중간중간 섞여 있었다. 직접 만든 음식을 먹고, 게임을 하면서 야채와 친해지고 자연스럽게 야채를 먹도록 만든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날도 곧 죽을 애처럼 눈이 빠지도록 구역질을 했더니 담당자가 열외시켜주었다. 프로그램 내내 흥, 저렇게 하면 내가 먹을 줄 알고? 하는 마음으로 임하다가 열외 당하고 나서야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그 뒤로도 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동생이 있다는 점이었다. 뭐든지 잘 먹는 동생은 좋아하지 않는 음식도 잘 먹었다. 한번은 함께 다니던 유치원 점심시간에 감자볶음이 나왔는데 동생 옆에 앉아 밥을 먹는 척하다가 동생이 고개를 돌려 다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때 동생의 식판에 감자볶음을 옮겨놓았다. 다시 식판으로 고개를 돌린 동생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 감자가 다시 생겼네? 이건 맛없는데” 하고 말했다. 나는 들킬까 봐 일부러 동생 쪽을 보지 않았는데 동생은 다시 그것들을 다 먹고 싱글벙글 웃으며 식기를 반납했다.
요즘의 엄마는 미용실에 오는 손님 중 식사로 아이와 씨름하는 사람들에게 그냥 두면 저절로 해결 된다는 말을 하곤 한다. 엄마의 가장 큰 후회는 내게 억지로 밥을 먹인 것과 동생에게 끝도 없이 먹인 것이라고. 그때 쟤를 그냥 굶겼어야 했는데 저러다 굶어 죽을까 봐 억지로 먹였더니 이가 다 망가졌다며 아무 때나 낯선 손님에게 내 앞니를 보여주라고 한다. 저녁에 애가 말도 안 하고 뭔가를 입에 물고 있길래 에퉤 해봐, 하고 손을 갖다댔더니 아침에 한 술 떠 넣었던 밥이 삭아서 물이 되어 나왔다고. 그때 이가 다 병든 것 같다고. 그런 나를 키우다가 잘 먹는 동생을 보니 너무 예뻐서 계속계속 먹였더니 통통해졌다고. 평생 통통하다고.
그래도 엄마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내 키가 평균을 넘을 만큼 컸고 이제는 정말 잘 먹기 때문이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번호가 키순이었는데 그때 너무 작은 키가 스트레스여서 엄마에게 보약을 해달라고 떼를 썼고, 키에 대한 강한 열망 때문이었는지 역겨운 보약을 어떻게든 참고 먹었다. 보약을 먹으면서 입맛이 좋아져 많이 먹는 애가 되었고, 뭐든 먹으니 키가 확 컸다. 중학생 때에만 20센티미터가 자라서 입학할 때 올려다보던 친구들을 내려다보며 졸업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잘 먹는 것과 별개로 야채는 여전히 내게 높은 장벽이었다. 그래도 아주 어릴 때보다는 조금 나아져서 피자에서 야채 토핑을 모두 골라내더라도 도우만 먹지는 않는 수준에 이르렀고, 나물이나 양상추 정도는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샌드위치 가게에서 “야채는 다 빼주세요” 하고 주문할 때나 김밥집에서 “당근, 우엉은 빼주세요”라고 주문할 때 당혹스러운 표정을 마주해야만 했다. 그래도 오랜 편식 경력으로 요령이 생겨서 어려운 식사 자리에서는 알레르기가 있다고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나는 콩 알레르기를 앓다가 굴 알레르기를 앓기도 했고, 고추 알레르기나 팥 알레르기를 앓기도 했다. 그런 게 존재하기나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대학 MT에서는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라면을 끓였는데, 열 봉지가 넘는 라면을 끓이면서 건더기 스프는 하나만 넣었다. 건더기가 많아 보이도록 마지막에 넣는 게 포인트였다. 그러면 드물지만 간간이 보이기 때문에 아무도 건더기 스프를 거의 버렸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안 먹는 요령만 늘고 편식에 조금도 차도가 없자 엄마도 나를 포기했다. 잡채를 만들 땐 내 전용으로 당면만 비벼서 덜어놓은 뒤 야채를 부어 가족용을 만들었고, 콩밥을 지어도 한쪽에는 콩이 전혀 섞이지 않게 했다. 그런 내가 야채를 먹기 시작한 건 스물세 살 때 마늘에 입문하면서부터였다.
내가 마늘 먹는 모습을 처음 보여줬을 때 엄마는 좋아하기보다는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마늘이라니. 그것도 생마늘이라니. 마늘을 먹게 된 일은 생각보다 간단했는데 애인이 내게 쌈을 싸주면서 몰래 마늘을 한 쪽씩 넣었던 것이다. 처음 마늘이 들었단 것을 눈치챘을 땐 바로 쌈을 뱉고 쌍욕을 한 뒤 분해서 울었다. 그는 정말 맛있는데 이 맛을 몰라 속상하다며 움츠러들었고, 나는 너나 많이 처먹으라며 다시 한 번 이러면 헤어지는 거라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그는 불규칙적으로 쌈에 마늘을 넣어 건넸다. 마늘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어서 나는 일단 받아먹었고 마늘이 씹히면 미친 새끼야, 하며 애인에게 숟가락을 집어던졌다. 그런 일이 몇 번 있고 난 뒤, 다시 쌈을 받은 어느 날 나는 눈을 흘기며 마늘이 들어 있는 건 아닌지 물었고 그는 “진짜 아니야, 그럼 내가 먹을까?”라고 했다. 늘 그런 식이었지만 나는 이번에도 입을 벌려 쌈을 받아먹었고 또 마늘을 씹어버렸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날은 생각보다 괜찮았고 사실은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맛있기까지 했다.
속은 게 분해서 뭐야 안 넣었다며, 하고 괜히 인상을 썼지만 욕은 하지 않았다. 애인은 미안하다고 했다. 마늘이 나오기만 해봐라, 하고 씹던 중이라 마늘을 감지하자마자 멈칫한 것을 그도 보았는데. 평소와 다른 반응이라는 것을 분명 눈치챘을 텐데. 만약 그가 씩 웃고 맛있지?라고 했다면 나는 자존심이 상해 이번에도 쌍욕을 하고 몰래 마늘을 먹었겠지만 내가 괜찮다는 것을 눈치채고도 그가 모른 척해주어서 그 뒤로도 꾸준히 싫은 티를 내며 마늘을 먹을 수 있었다.
마늘을 좋아하게 되면서 나는 마늘을 먹은 뒤 애인에게 하, 하, 하고 입 냄새 풍기는 취미를 갖게 되었다. 그러면 그는 으악, 하면서도 다정하게 내 어깨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야채를 먹게 되어서 기특하다고 말해주었다. 그게 좋아서 나는 더 자주 하, 하, 하며 그를 괴롭혔다. 그런 방식으로 나는 양파와 토마토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고추냉이와 겨자, 초밥, 멍게, 전복, 햇대추와 파, 버섯과 가지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여름날, 외식을 하고 돌아와 샤워 후 침대에 누운 채로 그에게 하, 하고 입김을 불었던 적이 있다. 보송보송한 이불이 맨몸에 닿는 느낌과 그의 피부가 내 피부에 닿는 느낌이 좋았다. 아직도 마늘 냄새가 나? 하고 묻자 그가 당연하지, 하고 말했다. 마늘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데. 양치해도 잘 지워지지 않아. 어쩌면 내일 아침까지 날지도 몰라. 나는 뒤에서 안아주는 기분이 좋아 다짜고짜 그를 등지고 누웠고, 그는 자연스럽게 나를 안았다. 나는 그 상태로 고개만 살짝 돌려 말했다. 있잖아, 나중에 우리가 헤어진다면 나는 마늘을 먹을 때마다 네 생각이 날 것 같아. 그러자 그는 그럼 엄청 자주겠다며 좋네, 하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나는 우리가 헤어질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 하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마늘 먹는 일이 새삼스럽지도 않아서 외식을 할 때면 몇 번이고 마늘을 리필하곤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고기를 구울 때 마늘을 불판에 모두 쏟아버리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난 구운 마늘은 안 먹는데,라고 하면 다들 생마늘은 먹으면서 구운 마늘 못 먹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생마늘로 입문해서 마늘은 먹는데 구운 마늘은 감자 맛이 나서 못 먹는다고 말한다. 감자는 아직 어렵다고. 마늘을 너무 자주 먹게 되어서, 그 사람으로 인해 먹을 수 있게 된 음식이 너무 많아서, 그런 음식을 먹을 때마다 그가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마늘을 먹지 않아도 마음 한구석이 부서지는 날에는, 마늘을 잔뜩 먹고 입 냄새를 풍겨도 입을 맞춰주었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런 사랑을 받아보았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영영 외로울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글: 이진선
그림: 한인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