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스물한두 살이었을 때 말이야. 나이 한 살이 굉장히 크게 느껴지고, 스물세 살이면 좋은 시절이 다 간 줄 알았던 때. 그즈음 어느 수업에서 우리 과 출신인 선생님께서 남가좌동의 풍경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신 적이 있어. 기억나? 우리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교양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든 수업을 같이 들었잖아. 그 수업은 아마도 소설 수업이었던 것 같아. 90년대에 학교를 다녔던 선생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절부터 2000년대였던 그때까지의 학교 앞 풍경에 대해 ‘고만고만한 가게들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고 이야기하셨지. 그건 학교를 고작 한두 해 다닌 나도 수긍할 만한 이야기였어. 학교 자체가 작았고, 학교 앞 상권도 작았으니까 규모가 큰 가게는 거의 없었잖아. 비슷비슷하게 작은 가게들이 허물 벗는 동물처럼 달라진 듯 아닌 듯 계속 사라지고 생겨서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 같았지. 우리는 그 앞에서 필연적으로 이전엔 뭐가 있었더라, 생각하게 되었어. 어떤 가게는 나만 기억했고, 어떤 가게는 너만 기억했고, 어떤 가게는 우리 둘 다 기억하거나 기억하지 못했잖아. 그중엔 이제는 사라졌겠지? 싶었는데 아직까지 버텼던 가게도 있었고, 그런 가게를 보면 너는 어쩐지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고 했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둘 다 기억하는 가게는 대부분 우리가 자주 갔던 곳들이었어. 홍시 주스와 샌드위치가 맛있었던 <뜰에서>, 바지락을 가득 넣어줬던 <방망이 칼국수>, 매번 순두부찌개를 주문했던 <왈순네>, 콩가루 아이스크림이 인기 있던 <Cafe Hug>. 그런데 가끔은 순식간에 사라졌던 공간을 함께 기억하기도 했지. 과묵한 사장님이 운영하셨던 카레집이 그랬어.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카레집 말이야. 너는 혹시 기억하고 있으려나? 뭘 파는 곳인지도 몰랐던 작고 낮은 가게. 이용 안내문에는 두 명까지만 받는다는 내용과, 대화하지 말 것, 음식을 절대 남기지 말 것, 음식을 먹으면서 핸드폰을 보지 말 것, 통화하지 말 것 등 하지 말아야 할 목록과 함께 밥과 카레가 모자라면 얼마든지 더 준다는 말이 적혀 있었지. 그 온도 차이가 무섭고 재미있어서 우리는 사장님이 안 보이는 각도에서도 손짓으로만 대화하고 표정으로만 웃었어. 카레는 정말 맛있었고, 대식가인 나도 중간부터 배가 터질 만큼 양이 많았는데 너무 무서워서 꾸역꾸역 먹었잖아. 맛이 어떠냐는 사장님의 물음에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맛있어요, 너무 맛있어요,라고 했는데. 그제야 사장님이 씩 웃으셨지. 우리는 그곳에서 나오자마자 음소거가 해제된 스피커처럼 카레집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나눴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가게에 다시 갔는데, 이제는 혼자 오는 손님만 받는다며 입구에서부터 출입을 거절하셨지. 우리는 사장님과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우리를 몰라요? 얼마 전에 여기에서 밥 먹었는데. 규칙도 잘 지켰어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런 말을 하기에는 사장님이 너무 무서웠어. 굽실거리는 빽빽한 수염과 긴 머리, 커다란 풍채, 두툼한 눈두덩으로 아무 표정도 짓지 않으셨지. 그 뒤 카레집은 한동안 아예 장사를 하지 않았어. 혼자 밥을 먹지 못하는 나 때문에 우리는 어차피 가지도 못하는 가게였는데. 그 가게가 망할까 봐, 벌써 망했을까 봐 마음 졸이면서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어쩌나, 어쩌나, 걱정했잖아. 그러다 날이 일찍 어두워진 어느 겨울날에 버스 정거장에서 사장님을 보았지. 어떤 여자분 곁에서 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계셨는데, 그 모습을 보며 잘 지내시는구나, 저런 표정도 갖고 계시는구나, 하고 우리는 멀리서 안심했어. 사장님은 아마 모르실 거야. 그 모습을 보고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얼마나 위로받았는지.
학교 앞은 그런 곳이었어. 무언가가 사라지고 생기는 일이 반복되어도 곳곳에 기억들이 남아 있는 곳. 어떤 골목을 지나거나 어떤 음식을 먹으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곳. 그곳에서 보냈던 시간과, 그 시간을 지냈던 구체적인 장소와, 함께했던 사람이 밀려오는 곳. 하지만 그건 어딘가가 조금씩 흐릿한 기억이기도 해. 방금 전까지 마주했던 얼굴을 떠올리는 일은 얼핏 쉬운 일 같지만 막상 해보면 명확하지 않은 것처럼. 그림을 그려보면 알아. 내가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당장 내가 그리고 있는 장면이 훨씬 선명하게 보여서 오히려 기억하고 있던 모습이 흐릿해져버리더라고. 기억 속의 모습과 구체적인 눈앞의 것을 동시에 떠올리지 못해. 여기에 뭐가 있었고, 어떤 인상이었는지 커다란 특징들은 기억나는데 자잘한 장면들은 생각나지 않아. 그게 아무리 내가 좋아했던 디테일이라고 해도 말이야. 마치 네 기다란 눈과, 코에 난 갈색 점은 기억나지만 네 특유의 표정과 그런 얼굴을 할 때 생기는 주름이나 근육의 배치 같은 것들은 전체적인 네 모습과 조화롭게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벽 쪽으로 나란했던 테이블과 거기에 붙여놓은 포스트잇 같은 것, 거기에 우리의 이름을 적고 유치한 메모를 했던 것은 생각나지만, 그게 정확히 어떤 내용이었는지, 그 메모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벽지의 특이한 문양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어. 아마 영원히 알 수 없겠지.
그래도 이렇게나마 기억을 간직할 수 있는 건 그 안에 오래 있었고, 눈앞의 변화가 기억을 삼켜버릴 만큼 한꺼번에 일어나지는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 그런데 최근의 학교를 본 적 있니? 언젠가 언덕 위에 있는 본관 테라스에 앉아 저 멀리까지 보이는 작은 지붕들을 구경했잖아. 이렇게 집이 많구나, 하고. 이렇게 집이 많은데도 우리가 지낼 수 있는 곳은 없다면서 씨발! 씨발! 하고 웃었지. 춥지 않게 씻을 수 있고,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고, 나란히 책을 읽다가 그대로 누워 서로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했는데 말이야. 가난한 우리는 추운 날에도 손이 곱고 어깨가 움츠러든 채로 좁은 골목을 돌아다니는 게 전부였어. 이 집도 좋고, 저 집도 좋고, 저기 저 집도 좋다면서. 그 집들 중 어느 한 집도 근사한 집은 없었어. 겨우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정도의 집을 보면서 그런 말들을 했고, 그러다 못 견디게 추우면 골목의 작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곤 했지. 때로는 밥집이고, 때로는 술집이고, 때로는 카페였던 많은 가게들. 그런데 그런 골목들이 모두 사라졌더라고. 작고 낮은 상가들도 모두 사라져버렸어. 작은 이 차선 도로는 넓게 확장됐고, 멀리까지 보였던 색색의 지붕들은 모두 아파트로 바뀌었어. 시야가 탁 막혀버린 거야. 번쩍번쩍한 새 빌딩이 들어선 학교 앞 풍경에서 나는 도무지 우리가 걸었던 많은 골목을 떠올릴 수 없었어. 오래된 돌담과, 이끼와, 아스팔트를 비집고 자랐던 민들레 같은 것들을 말이야. 또렷하지 않은 잔상만 남아 있다 해도 내일이면 다시 만나서 볼을 쓰다듬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사이가 아닌 거야. 영영 떠나서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잊어버리면 그냥 그대로 끝나버리게 되는 기분이었어.
나는 어쩌면 이 모든 것을 짐작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재개발이 확정되면서 익숙한 가게들이 문을 닫고,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말이야. 우리가 함께 살기를 바랐던 집들과, 고만고만한 가게들이 생겼다 사라졌던 익숙한 건물들이 비어갔잖아. 폐허가 됐잖아. 그때부터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이미 벌어졌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던 거야. 네가 울 때 온전히 슬프지 않았던 나와, 너의 불행이 내 짐이 될까 봐 두려웠던 나를 마주했을 때처럼. 그런 징조를 눈치챘을 때 밤낮없이 울어도 해소되지 않았던 답답한 마음으로, 나는 출입이 제한된 골목과 빈 건물이 잔해가 되는 과정을 묵묵히 바라보았어. 그리고 오랫동안 학교 근처에 가지 않았어. 이따금 그곳을 지나야만 했던 날에는 먼지 날리는 공사 현장을 참담한 기분으로 올려보았지. 공사장의 높은 가림막에는 희망찬 문구와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사방에서 커다란 마찰음이 끊이지 않았어.
요즘은 우리 동네가 그래. 전에 살던 수색동에 재개발이 시작돼서 사 년 전에 지금의 동네로 이사 왔는데, 이사 온 뒤로 앞 건물, 옆 건물, 옆 옆 건물 모두 다른 건물이 되어버렸어. 서울에 살면서 오래된 건물을 밀어버리고 새 건물을 올리는 모습은 거의 매일 보았는데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더라. 밤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무너진 잔해 더미 위에 올라가 있는 포클레인을 볼 때면 내 품에서 울던 너를 가만히 쓰다듬었던 마음이 떠올라. 진심으로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너로 인해 나까지 망가질까 봐 겁이 났던 기괴한 마음 말이야. 오늘만큼은 네가 내 품 안에서 조금 덜 아프기를, 네가 나로 인해 이 시련을 이겨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도, 결국 내가 너를 가장 아프게 하는 존재라는 걸 인정해야만 했고 그래서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어.
나는 이제 겨울에도 따뜻하고, 많은 짐을 정리할 수 있고, 강아지와 함께 지내도 괜찮은 집에 살고 있어. 햇볕이 잘 들어오고, 요리를 편하게 할 수 있고, 온수가 잘 나오는 집. 그런데도 마음이 자주 허전해.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자꾸만 몸집을 키워서 그런 건지, 지나친 향수 때문인 건지 잘 모르겠어. 새 건물의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반듯하고 깨끗한 건물을 지날 때면 마음이 서늘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봐. 우연히 좁은 골목에 들어서게 되면 네가 생각나. 너를 망치려고 자해하는 나를 안았던 네 품과, 네 안에서 부들부들 떠는 나를 놓아주지 않고 가만히 울음을 먹던 소리 같은 것들이.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무너진 것들을 돌려놓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아. 설령 네가 괜찮다고 해도 말이야.
좁은 골목에서 작고 낮은 집들과, 밖으로 꺼내놓은 화분과 의자들, 게으른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소망했던 것들은 벌써 예전에 이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다만 너와 내가 더 이상 우리가 아닐 뿐. 그리고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나는 앞으로도 사라지는 건물을 볼 때면 까슬까슬했던 너의 뒤통수가 생각날 것 같아.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많은 순간들을 지켜봐야 할 때마다 그럴 것 같아. 그러면 마음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겠지. 그래도 네가 준 다정함과 용기와 사랑의 모습들은 잊지 않을 거야. 또렷했던 잔상이 점점 희미해지더라도 소중했던 시간들을 기억할게. 오래된 것들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은 어쩌면 그런 곳을 누볐던 날의 따뜻한 기억 때문일지도 몰라. 그런 것과 어울리는 너 때문일지도.
있잖아, 이 말을 꼭 전해주고 싶었어. 정말 고마워. 진심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