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만큼은

by 월요희비극

복이를 처음 만난 날을 나는 언제나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그즈음 우리 가족은 이사 일정이 꼬여서 얼마간 엄마의 미용실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래 봤자 학교를 다니는 나와 동생은 씻고 잠을 자는 정도가 다였고, 집이 아닌 곳에서 잠드는 게 아직은 재미있을 나이여서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다. 미용실 셔터를 내린 뒤 영업을 하던 공간에서 밥을 먹고 자리를 깔고 눕는 일에 나와 동생은 종종 들뜨기까지 했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엄마는 하루 종일 미용실에만 있어야 했다. 손님이 없는 틈틈이 창가에 앉아 햇볕을 쐬어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2층인 미용실에 손님이 언제 올라올지 모르니 밖으로 나가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영업을 마치면 안에서 바로 문을 잠그고 자리를 폈기 때문에 출퇴근길이 유일한 외출이었던 엄마는 아주 잠깐도 바깥에 나가지 못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자주 우울해하는 엄마를 위해 우리는 개를 입양했다. 잘생긴 말라뮤트였는데, 그전까지 우리는 작은 개와만 살아봐서 하루가 다르게 크는 그 애가 너무 신기했다. 그 애의 이름이 복이였다. 복을 많이 받으라는 의미였다. 복이가 오고 엄마는 미용실에 살기 이전보다도 훨씬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복이는 순식간에 커서 고작 몇 달 사이에 엄마만 해졌고, 똥도 쉬도 많이 쌌다. 그 크고 많은 똥오줌을 치우면서도 엄마 얼굴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복이는 우리와 오래 지내지 못했다. 2층으로 올라오던 손님 대부분이 커다란 복이를 보고 다시 내려갔기 때문이다. 엄마가 다급하게 쫓아가서 안 물어요, 안 무서워요,라고 이야기해도 소용없었다. 결국 엄마는 매일 복이를 보러 미용실에 놀러 오던 친구에게 복이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화원을 하는 분이었는데, 복이도 흙을 밟고 마음껏 뛰노는 게 더 행복하지 않겠냐며 본인이 잘 키우겠다고 설득하셨단다.

복이를 보내던 날, 자꾸만 뒤돌아보며 우는 복이의 엉덩이를 밀어 차에 태운 엄마는 복이와 눈이 마주칠까 봐 서둘러 달려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부터 엄마는 하루 종일 울었다. 울면서 커트를 하고, 울면서 롯드를 말고, 울면서 샴푸를 했다. 며칠 뒤 보다 못한 단골손님이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수건 안에서 꼬물대는 하얀 강아지였는데, 그 애가 하는 모든 행동이 귀여웠다. 눈을 뜨고 감는 것조차 귀여워서 한시도 그 애를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손님은 이웃집 말티즈가 새끼를 낳았는데 여섯 마리 중 제일 예쁜 애로 데려왔다며 이모, 그만 울어요,라고 했다. 엄마는 싫어,라고 했다. 엄마는 그 예쁜 애를 쳐다보지도 않고 나 이제 개 안 키워, 도로 데려가,라면서 계속 울었다. 엄마가 울어서 속상한 것과 별개로 그 애가 너무 예뻐서 나와 동생은 엄마 몰래 미용실 안쪽 방에 데려가 어떤 이름이 좋을지 상의했다. 하얀 강아지니까 구름이, 솜사탕, 흰둥이 등등의 이름이 나왔지만 어떤 이름도 딱 이거다! 하는 게 없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그 애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영업 준비를 마친 엄마의 앞치마 주머니 안에 그 강아지가 들어가 있었다. 눈을 비비며 엄마, 하고 부르니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던 엄마가 얘 이름은 복이야, 그냥 복이로 하자,라고 했다. 우리는 그래,라고 했다. 그때부터 원래의 복이는 ‘큰복이’가 되었고, 하얀 강아지가 ‘복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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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이는 정말 사랑스러운 강아지여서 나는 엄마가 마음을 돌린 일이 놀랍지도 않았다. 복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누구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지나치게 작고 연약한 복이가 혹시나 잘못될까 염려하면서 복이의 느린 성장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잠만 자던 복이는 가끔 눈을 뜨고 하품도 했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는 얘도 자기가 예쁜 줄 알고 있는 거야,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대견하게도 복이는 기대보다 빨리 걷고 물도 마실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그때까지 짖지 않아서 우리는 복이가 혹시 짖지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까지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조그만 애가 깡! 하고 짖었고, 지켜보던 우리는 손뼉을 치며 잘했다고, 그렇게 하는 거라고 응원했다. 그래서인지 복이는 지나치게 짖는 개가 되었지만 그게 복이를 예뻐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복이를 보는 게 너무 행복해서 나는 학교 기숙사로 돌아가야 할 때마다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는데, 일 주일이나 이 주일 만에 돌아와도 어린 복이가 나를 알아봐주고 반가워해주는 게 고마웠다. 심지어 복이는 그런 나를 편애하기까지 했다. 그건 우리 가족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었고 내게는 퍽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엄마랑 미용실 소파에 앉아 복이와 놀고 있는데 복이 눈이 조금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그걸 보자마자 엄마, 복이 눈이 조금 돌아간 것 같아,라고 했지만 엄마는 예쁘기만 하고만, 하고 넘겼다. 내가 그런 말을 해서 복이가 째려보는 거라고. 하지만 다음 날 예방 접종을 하러 병원에 가니 복이는 정말 사시가 맞았다. 너무 작고 약해서 그런 거니까 영양을 보충해주면 좋아질 거라고. 결국 복이는 예방 접종과 함께 영양제를 더 맞았다. 영양제를 맞으니 정말로 눈이 돌아왔지만, 아직도 흥분할 때면 살짝살짝 돌아가곤 한다. 그날 예방 접종을 하면서 수의사는 복이에게 심장 기형이 있고, 그래서 수명이 다른 개들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알고 보니 복이는 평균 두세 마리의 새끼를 낳는 말티즈의 여섯 번째 새끼였다. 단골손님은 비슷비슷하게 생긴 새끼들 사이에서 젖도 얻어먹지 못해 눈에 띄게 작은 복이를 보고 제일 귀엽다고 판단한 것이다. 수명이 반밖에 안 된다는 말은 충격적이고 참담했지만 그만큼 더 사랑해주면 되지 싶었다. 그때의 나는 개의 수명이나 개의 일생 등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았기 때문에, 내게 큰 병이 생기거나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복이가 나보다 일찍 세상을 떠날 거란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체감할 수는 없었다. 언젠가 먼 미래에 그런 날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건 지구 종말처럼 아득한 이야기였다. 눈앞의 복이는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었고, 잘 먹고, 잘 놀았다.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우리 가족 모두 복이를 더 사랑하자고 약속했다. 후회 없게 사랑해주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개로 만들어주자고. 푸들의 피가 섞였는지 악성 곱슬이고, 다리와 목이 유난히 긴 복이를. 예민하고 뻔뻔한 복이를. 복이랑 살면서 복이의 특징과 모습을 떠오르게 만드는 단어가 점점 많아질 때마다 어쩌다 이렇게 예쁜 강아지가 우리 집에 왔지?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의 복이를 볼 때면, 우리는 정말 후회 없이 복이를 사랑했나 싶다. 복이도 그렇게 생각해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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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이는 2015년 7월부터 심장약을 먹기 시작했다. 동생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복이를 서울로 데려온 뒤의 일이었다. 어느 날 복이가 헛구역질을 했다. 나는 이불을 사수하기 위해 서둘러 복이 입에 손을 대고 있었다. 그런데 복이는 눈이 빠질 것처럼 꺽꺽대면서도 눈물만 흥건할 뿐 토하지는 않았다. 그날 복이가 신경 쓰여서 저녁 약속을 모두 취소하고 일찍 들어갔는데, 나한테 등을 기대고 자던 복이가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게 너무 귀여워서 내려다봤더니 복이는 잠을 자지 않고 어딘가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숨소리가 코 고는 것처럼 들렸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복이는 하루 종일은 아니지만 매일 간헐적으로 쇳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목청 좋게 짖어대고 간식도 잘 먹고, 똥도 커다랗게 싸고, 똥 쌌다고 자랑도 해서 나는 왜 저러지, 걱정만 하다가 일주일이 지나서야 복이를 데리고 근처 동물병원에 갔다. 페럿 전문 병원이라 페럿 환자가 몰려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겨우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증상을 이야기하고 당연히 소화기거나 호흡기이겠거니 했는데, 청진기를 대자마자 의사 선생님이 심장 안 좋은 거 알고 계셨죠? 하고 물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제야 심장이 좋지 않다는 오래전 수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그가 했던 모든 말이 떠올랐다. 그때 복이는 아홉 살을 통과하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복이의 심장은 제대로 펌프질을 하지 못해서 그 안에서 자꾸 피가 돈다고 했다. 심장 검사는 꾸준히 했는지, 어떤 관리를 해줬는지, 질문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나는 가끔 심장에 좋다는 영양제를 사 먹였다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대답이 아니라 변명일 뿐이라는 것을 그때의 나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걱정은 했지만 복이의 건강만큼 병원비에 대한 걱정도 컸다. 그래서 복이가 컥컥거리면 복이를 안고서 목에 뭐가 걸렸나, 하다가 다시 잠잠해지면 자꾸만 안심하려고 애썼다. 복이는 쇳소리를 내면서도 산책을 졸랐고 우리끼리 뭐라도 먹으려 하면 귀가 아플 정도로 짖었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래서 안 좋은 걸 아셨으면 더 관리를 해주셨어야죠,라는 말에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엑스레이 결과 폐부종까지는 아니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본인이 심장은 잘 볼 줄 모른다며 심장을 잘 보시는 분이 이 주에 한 번 오신다고 그때 정밀 검사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러고는 눈이 시뻘게진 나를 보고 정기 검진 때까지는 너무 걱정하지 말고 평소처럼 지내라고 하셨다. 그럼 괜찮은 거냐고 물었더니 괜찮지 않다고. 다만 응급 상황은 아니라고 하셨다. 만약 정밀 검사 전에 혓바닥이나 잇몸이 보라색으로 변하면 새벽이든 휴일이든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잔뜩 겁을 먹은 복이를 안고 집에 돌아와서는 통장 잔액부터 확인했다. 스무 살 때부터 갖고 싶었던 스쿠터가 마침 집 앞 매장에 좋은 매물로 들어와 있었고, 금액까지 확인한 상황이었다. 드디어 마음에 드는 스쿠터를 갖게 되는 줄 알고 기대에 부푼 날들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복이의 가슴에 귀를 갖다 댔다. 심장이 아픈 건 어떤 기분일까. 귀찮은지 복이는 뒷다리로 내 얼굴을 계속 밀어냈다. 복이의 가슴에서는 고오오, 하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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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정밀 검사 예약 날이 되어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에는 비교적 최근에 미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초음파 검사를 하기엔 털이 많이 자랐다며 배를 아주 바짝 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기분이 이상해졌다. 복이는 예민하고 까탈스럽지만 겁이 많고 태세 전환이 빨라서 아는 사람이 없으면 한없이 순한 개가 되기 때문에 나는 내 팔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복이를 간호사 선생님께 맡기고 진료실 밖으로 나와 있었다. 역시나 내가 없으니 엑스레이도 잘 찍고, 눈 검사도 수월하게 받았다고 했다. 검사 결과, 복이의 좌심방과 좌심실은 비교적 건강한 편이었다. 문제는 오른쪽인데, 판막도 약한 데다가 폐 고혈압이 있어서 우심방에서 우심실로, 우심실에서 폐로 흘러가야 할 피가 자꾸만 역류했다. 게다가 담낭에 찌꺼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조기 발견이었다. 그래서 수술까지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다만 약은 평생 먹어야 한다고. 그러면 오랫동안 함께 살 수 있다고 하셨다. 그제야 무거운 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30일 치 약과 검사비를 결제하고 나니 통장 잔액은 거의 0원에 수렴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가 내가 점찍어둔 스쿠터를 결제하고 있었다. 어쩌면 내 것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스쿠터를 타고 그가 멀어지는 모습을 멀리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복이는 바깥이라는 사실에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그날 이후 복이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심장약을 먹고 있다. 약을 먹기 시작하자마자 쇳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게 사라졌다. 심장이 안 좋은 아이들은 심장약을 먹으면 살이 쪄서 더 예뻐진다는 의사 선생님의 예언과 달리, 복이는 워낙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라 그런지 좀처럼 살이 찌지 않았다. 그래도 전보다 확실히 밥을 많이 먹었고, 그래서 전보다 훨씬 많은 똥을 쌌다. 멀리서 기분 좋게 폴짝폴짝 뛰어오면 무조건 똥이었다. 똥 냄새는 자다가도 깰 정도로 강렬했지만 일단 복이가 자랑을 하면 과장되게 놀라며 칭찬을 해줘야 한다. 게다가 복이가 먹는 약에는 아주 소량의 비아그라가 들어 있는데,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약을 먹기 시작한 뒤로 우리는 밤낮없이 복이 전용 인형을 복이가 원하는 자세로 세팅해줘야 했다. 그건 무척 피곤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복이는 원하는 걸 쟁취할 때까지 꾸준하게 발을 구르고, 짖고, 앓고, 툭툭 치거나 긁으면서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다가도 일어나 복이가 원하는 것들을 들어줘야 했다. 그래도 이렇게 건강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여전히 한 달 치 약값은 너무 큰 부담이어서, 비싼 간식에 약을 섞어줘도 잘 먹지 않는 복이를 보면 이게 얼마나 비싼 건 줄 알아? 하고 성질을 내지만 편식이 심하고 예민하고 제멋대로인 복이를 보고 있으면 어쩜 이렇게 날 닮았지, 하고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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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지구 종말처럼 느껴졌던 일들을 자주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된다.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복이는 주로 이불 속에 완전히 들어가 자곤 하는데, 함께 이불을 덮고 있다가도 불현듯 가슴을 졸이며 이불을 들춰 숨을 잘 쉬고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그러면 복이는 귀찮다는 듯 다리를 쭉 뻗어 나를 밀어내고 다시 편한 자세를 취한다. 이런 식으로 안도를 하고 나면, 복이와의 이별이 지구 종말이 아니라 곧 다가올 계절처럼 여겨진다. 어쩌면 내일 당장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는 이제 체감하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모두 복이와 애착이 가장 큰 나를 두고 그때가 되면 네가 무너질까 봐 걱정된다고 한다. 이제 복이는 열세 살을 지나고 있다. 눈이 많이 탁해졌고, 원래도 소화 기관이 약해 자주 토했지만 훨씬 자주 토한다. 최근에는 미용을 맡기려고 하니 노견인 데다 심장병이 있으니까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는다 해도 숍에서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동의서에 사인을 해야만 가능하다고 했다. 털을 미는 일에 무슨 그런 무서운 사인까지 해야 하는지 싶어 우리는 미용을 포기했다. 대신 바리깡을 사서 직접 미용을 했는데, 너무 망해버려서 복이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리스 할아버지’, ‘산성비 맞은 사자’ 등 신박한 표현들을 내놓으며 자지러졌다. 우리가 봐도 웃겨서 복아 미안해, 얼마나 예쁜데, 하고 말하면서도 좀처럼 복이의 새로운 모습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망한 미용 때문에 복이는 언제나 심술궂은 표정처럼 보이는데, 그런 얼굴로 꼬리를 흔들고, 등을 기대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면 그것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이제는 함께 살던 동물을 떠나보냈다는 이야기를 그저 슬픈 소식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내게 그 일이 닥쳤을 때를 생각하면, 슬픔의 크기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복이가 없는 삶은 역시 잘 그려지지 않는다.

언젠가 어두운 방에서 혼자 엉엉 우는 내게 복이가 다가왔었다. 복이가 날 위로해줄 거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운 적은 없으니까, 혹시 텔레비전에서 봤던 것처럼 내 슬픔에 공감하는 건가 싶었다. 한편으로는 집이 너무 캄캄하고 내가 악을 쓰고 울어서 복이가 겁을 먹은 건 아닌지 걱정했다. 복이는 모든 예상을 깨고 붕가붕가용 인형을 코로 툭 쳤다. 다리가 길어 고추에 제대로 닿지 않는 인형을 바로 세워달라는 것이었다. 급했는지 발을 구르고 으르릉거리기까지 하면서. 어이가 없어서 나는 잠시 울음을 멈췄다. 그리고 우습게도 울다가 복이의 붕가붕가용 인형을 세워 잡아줬다. 내가 울든지 말든지 복이는 열심히 붕가붕가에만 집중했고, 절정을 맛본 뒤에는 저쪽에 가서 널브러져 잠들었다. 그 바람에 일어나 불을 켜고 복이의 밥을 챙기고 약을 챙겼다. 그래도 저만 아는 복이 덕분에 그날 나는 밥도 먹고 복이와 밤 산책도 했다. 여전히 내 감정은 상관없이 자기가 최우선인 복이를 보고 있으면 저렇게 예쁜 애가 어떻게 우리 집에 왔지 싶다. 복이가 없는 슬픔을 나는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복이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슬픔을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 깊은 밤 자다 깨면 누굴 안아야 할까. 집으로 돌아왔을 때 무겁게 가라앉았을 적막함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막연히 떠올리기만 해도 목구멍이 매워지는 날이 잦아진다. 건강하게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도 다가올 어느 날을 자꾸만 상상하게 되고, 상상은 점점 구체화된다. 그럴 때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복이가 눈을 감는 순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복이를 따뜻하게 안고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리고 저만큼 떠나간 복이가 잠깐 뒤를 돌아보면서 그래, 너 정도면 같이 살 만한 사람이었어,라고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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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선

그림: 한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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