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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애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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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요희비극 Jan 20. 2020

#1

  그날은 조금 피곤한 하루였다. 세 시간짜리 강의를 듣고 노트북이 든 무거운 가방을 멘  채, 일부러 먼 길을 돌아 돌아 문서작업을 하러 갔다. 날도 추운데 버스를 탈걸 그랬나, 후회할 즈음에는 이미 좁은 골목에 들어선 참이었고 택시를 타기에도 애매한 위치였다. 연희동의 높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서며 그냥 집에 갈까, 하고 몇 번이나 망설였다. 하지만 고쳐야 할 원고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집에 가면 피곤에 절어 눕거나 불편한 자세로 졸게 뻔했다. 손님이 없어 조용하다는 지인의 가게에 가까스로 도착했을 때에는 오늘 할당량을 모두 마칠 작정이었다. 하지만 노트북을 켜자마자 잠이 쏟아졌고, 손님도 쏟아졌다. 시끄러운 가운데 엎드려 한 시간을 자고 나니 이럴 바엔 차라리 집에서 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제야 택시를 불러 집으로 향했다.               


  집은 여느 때와 같이 조용했다. 귀가 부쩍 어두워진 복이는 예전과 달리 문을 여닫고 옷을 갈아입을 때까지 좀처럼 깨지 않았다. 나는 침대로 가면서 복아, 하고 불렀다. 흔들어 깨우자 누운 채로 기지개를 켜는 복이를 안고 거짓말처럼 행복해졌다. 그런 복이에게, 누나 너무 피곤하다 복아, 하며 얼굴을 비비고 뽀뽀를 했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복이와 몸을 맞댄 채로 핸드폰을 켰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스노우'라는 애플리케이션에서 나온 닮은꼴 찾기 기능이 유행하고 있었다. 문득 복이의 닮은꼴도 궁금하여 사진을 대입해보니 처음 보는 외국 배우가 나왔고, 내친김에 짜파게티 사진까지 대입해 보았더니 이번에도 같은 사람이 나왔다. 비인간 존재의 데이터가 하나로 수렴되나 보다고 생각하면서도 복아, 너랑 짜파게티랑 닮은꼴인가 봐, 하며 혼자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스토리에 게시했다. 곧 스토리*를 본 몇몇 사람들이 DM을 보내왔다. 언제나처럼 복이 이야기에 우쭐해져 메시지를 좀 더 주고받다가 시간을 보니 열한 시 반이었다. 아무래도 이렇게 게을러서는 안 되겠다 싶어 몸을 일으켰다. 청소를 해야지. 대청소를 하고 다시 작업을 해야지.          


  마침 쓰레기를 내놓는 날이어서 나는 없던 부지런함을 떨어 쓰레기통부터 정리했다. 그런데 쓰레기봉투를 들고나가려다가 복이와 눈이 마주쳤다. 조용히 나갔으면 그대로 다시 누웠을 텐데. 나는 산책 가방을 메고 복이를 불렀다. 자다 나왔어도 바깥바람을 쐬니 복이는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그래도 계획된 산책이 아니어서 공원까지 갈 수는 없었다. 서둘러 남은 청소를 마치고 일을 해야 했다. 대신 집 앞 막다른 골목에 데려가 마음껏 냄새를 맡게 해 주었다. 복이가 좋아하는 골목이니까. 이 골목에서 나는 사 년째 살고 있고, 늦은 밤이면 이런 식으로 복이를 데려 나오곤 했다. 이번에도 그럴 셈이었다. 십 분만 있다가 들어갈 요량으로 시간을 체크했다. 복이는 골목 안쪽에서 냄새를 맡고 있었다. 간격이 벌어진 복이를 불렀을 때 나를 향해 달려오는 복이를 보는 것이 내겐 커다란 행복이었다. 그럴 때마다 동생은 좁은 골목이어도 늘 신경을 써야 한다고 신신당부했지만 나는 쓸데없이 자신만만했다. 복이는 늘 나만 따라다녔으니까.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복아, 하고 부르면 쌩쌩 달려왔으니까. 애초에 겁이 많아서 혼자서는 좀처럼 움직이지도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제 그만 들어가자, 하고 리드 줄을 묶는데 흥분한 복이가 다른 골목으로 뛰쳐나갔다. 십사 년간 복이와 살면서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복이를 놓쳤다. 순간 택시가 달려왔다. 복아! 하고 소리를 지르자 복이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퍽. 택시가 복이를 쳤다. 멀어지는 택시를 보며 택시가 지나간 자리 위의 복이를 상상했다. 우려와 달리 복이는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대신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있었다. 끼약, 끼약, 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람들이 어머, 택시가 개를 치고 갔어, 하고 지나갔다. 나는 그대로 복이를 안았다. 서둘러 병원에 가야 했다. 그런데 고개를 젖히며 내던 비명소리가 멎으면서 순식간에 복이의 목이 툭 꺾였다. 급한 대로 연락처에 저장된 동물병원에 전화했지만 진료시간이 지나서 받지 않았다. 주변의 24시 동물병원을 검색해 봐도 파워링크만 뜰뿐 어디가 제일 가까운 병원인지 찾을 수 없었다. 아무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무작정 ‘24시 동물병원’을 입력해서 택시를 불렀다. 택시는 금방 왔다. 택시를 타자마자 품 안에서 자꾸만 고꾸라지는 복이의 머리를 잡고 아저씨 빨리 가주세요, 하고 말했다. 기사님이 불안한 표정으로 아기가 아직 숨을 쉬냐고 물었다. 나는 따뜻해요,라고 했다. 따뜻해요, 그러니까 빨리 가주세요. 빨리요. 제발요.    

           

  스물네 시간 운영하는 병원을 찾느라 택시를 타고도 이십 분이나 걸렸는데, 막상 도착하니 병원 문이 잠겨 있었다. 벨을 눌렀다. 계속 눌렀다. 얼마 후 간호사가 내려와 진료는 열두 시까지라고 했다. 시계를 보니 열두 시 삼분이었다. 복이는 혀를 약간 빼문 채,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그럼 어떡해요? 하고 물으니 간호사가 그 병원에서 제일 가까운 병원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손을 떠는 나 대신 택시를 호출해주었지만 잡히지 않았다. 나는 그냥 울었다.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 사이 간호사가 어딘가 전화를 걸더니,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하고 말했다. 그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퇴근하려던 의사가 도로 외투를 벗고 있었다. 나는 의사가 시키는 대로 복이를 눕혔다. 의사는 청진기를 대보고는 조심스럽게 사망선고를 내렸다. 그리고는 앞으로 복이에게 일어날 변화와 사후처리에 관한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해 설명한 뒤, 어떤 방법을 선택할 것인지 물었다. 어이없게도 나는 “살 수는 없는 건가요?” 하고 물었다. 기다려보면, 하고. 의사와 간호사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보니 의사의 말대로 곧 복이의 눈과 코와 입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올 것 같았고 복이의 몸이 ‘부패’할 것 같았다. 어떤 결정이라도 내려야 했다.               

  사망선고를 받아들이자 의사는 간단하게 염 처리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 끝에 눈을 감겨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감겨 달라하고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출장 갔다가 돌아오던 동생은 우리가 있는 곳까지 이십 분 정도 더 걸린다고 했다. 운전을 도와줄 J도 비슷하게 걸린다고 했다. 그 사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결이었던 엄마는 어쩔 수 없지, 평생 살 수는 없는 거잖아, 마음 아파도 잘 보내줘야지, 하고 말했다. 추석 때 마지막으로 복이를 본 엄마는 복이가 너무 늙어서 마음이 좋지 않다며 연휴 내내 복이를 보내주게 되면 잘 보내주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애가 한참 건강한데 무슨 소리냐며 화를 냈는데. 그게 아니라 사고가 났어, 나랑 나갔다가 내가 놓쳤어, 하고 다시 말하자 엄마 목소리에 묻어 있던 잠이 모두 달아났다.               

  급한 연락을 마친 뒤에는 간호사가 알려준 장례업체에 전화를 걸어 심야 장례가 가능한지 물었고 염 처리를 마친 복이를 다시 안았다. 담요에 쌓인 복이는 편안하게 잠든 모습이었다. 얼마 후 동생과 J가 도착했다. 장례업체에서는 준비를 해놓을 테니 복이 사진을 전송해달라고 했다. 나와 동생은 J의 차 뒷좌석에 앉아 숨 쉬지 않는 복이를 안고 복이 사진을 골랐다. 정리를 했는데도 복이 폴더에는 만장에 가까운 사진이 담겨있었다. 제일 최근 파일은 방금 전 집 앞 골목에서 복아, 하고 부르자 달려오는 복이 영상이었다. 계속 울고 있었는데도 새롭게 울음이 터졌다. 그 사이 복이는 차갑게 식었다. 일산이라고 해서 가까울 줄 알았던 장례식장은 가도 가도 나오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에는 우리가 가고 있는 길 하나만 달랑 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더 가고 나서야 사방이 캄캄한 가운데 이질적으로 환한 건물이 나타났다. J가 떠다 주는 물을 마시며 우리는 직원을 따라 상담 테이블에 앉았다. 옆으로 납골당과 진열된 장례용품이 보였다. 장례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비용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안내받은 뒤 우리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대부분 기본 옵션으로 진행한다고, 기본 옵션도 충분히 좋은 제품이라고 직원이 설명했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돈이 없었다. 둘이서 한 달 생활비로 모으는 돈이 고작 이십만 원이었다. 그것도 못 낼 때가 있어서, 얼마 전부터 우리는 영어단어 시험을 보기 시작했다. 틀린 개수만큼 돈을 모아서 나중에, 아주아주 나중에, 복이가 크게 아프면 병원비로 쓰거나, 그보다도 더 나중에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되면 장례비로 쓰자고. 시험은 두 번 치렀고 빼먹은 날의 벌금까지 합쳐 우리가 모은 돈은 이천 육백 원이었다. 순간 눈치를 보는 내게 동생이 먼저 좋은 걸로 해주자고 말을 꺼냈다. 아기 마지막이니까 무조건 좋은 걸로 해주자고. 그렇게 모든 옵션을 바꿨다. 오동나무 관에, 베개와 이불로 대체된다는 수의도 추가하고, 영구보관이 가능한 호두나무 유골함을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결정해야 할 사안은 유골함을 가져갈지, 납골당에 안치할지, 수목장을 할지, 스톤으로 만들지 였다. 막연하게 상상했을 때에는 스톤으로 하는 방법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안고 있는 복이를 돌로 만든다고 하니 그럴 수는 없었다. 복이를 어떻게 돌로 만들어, 하며 우리는 그냥 데려갈게요, 하고 말했다.               


  추모실에는 장례식장에 가면서 전송했던 복이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직원이 내 품에서 복이를 받아 관에 눕혔다. 병원에서부터 안고 있던 복이를 내려놓자 물리적인 무게감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차례로 복이를 만지고 얼굴을 부비며 인사를 나눴다. 복이 냄새를 잊어버릴까 봐 자꾸만 굳어버린 복이한테 얼굴을 박고 숨을 깊게 쉬었다. 한참을 그렇게 해도 도저히 맘이 서질 않았다. 사체라거나 무섭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데려가 다시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고 싶었다. 관 속의 복이는 꼭 잠든 것 같았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침대에서 체온을 나누던 모습 그대로였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는 길이었으니 나는 잠옷 차림이었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복이 산책 가방을 멘 채로, 복이를 화장했다. 그 사이 구토가 나와 화장실에 가면서 다리가 풀려 몇 번이나 주저앉았다. 먹은 게 없어 게워낼 것도 없는데 구토가 멈추지 않았다. 입을 헹구고 나오니 별이 유난히 많고 추웠다. 추위도 많이 타는 앤데. 겁도 많은 앤데.       

        

  화장을 마친 복이는 한 줌이었다. 동생이 언니, 우리 애기 정말 한 줌이다, 하고 울었다. 언니 잘못이 아니야, 하고 울었다. 동생이 데리고 나갔더라면 나는 두고두고 동생을 원망했을 것이다. 애초에 그런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동생이 언니 잘못이 아니라고 하면서 출장 가기 전에 한번 안아주고 갈걸, 하고 꺼이꺼이 울었다. 유골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뻥 뚫린 새벽 도로를 달리면서, 수업을 마치고 바로 집에 갔더라면 제대로 산책을 했겠지, 생각했다. 졸지 않고 할 일을 다 했더라면 그 시간에 집에 있지 않았겠지. 그럼 그 시간에 쓰레기 버리러 나가지도 않았을 테고. 아니 쓰레기나 얼른 버리고 올걸. 일 분도 걸리지 않았을 텐데, 하고. 아직은 가까운 시간이어서 어쩌면 되돌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되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네 시가 다 되어갔다. 종종 복이를 보러 놀러 오던 Y가 소식을 듣고 집에 와 있었다. J가 챙겨준 두통약을 먹고 남은 음료를 넣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더니 복이가 먹던 간식들이 남아있었다. 동생이 반만 남은 치즈를 보며 다 줄걸, 하고 말했다. 나는 약에 섞어주던 시저를 보면서 저녁 약도 못 먹였네, 하고 생각했다. 고구마도 쪄놓고, 약과 함께 먹일 식재료도 소분해 두었는데. 그저께 한 달 치 약도 받아왔는데. 동생과 Y가 잘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아침 출근을 해야 하는 J를 배웅했다.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전기장판에 언 몸이 노곤하게 풀렸고 복이의 부재가 실감되었다. 허리춤에서 자다가 기지개를 켜야 하는데. 이불을 걷으면 푸, 하고 숨을 내쉬어야 하는데. 동생이 들을까 봐 울음을 먹으며 핸드폰을 켰다. 그새 날짜가 바뀌어 10월 30일이 되었다. 그럼 복이의 기일은 29일일까 30일일까. 배경화면의 복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잠이 오지 않아 복이를 아껴줬던 몇몇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중간에 끊긴 대화를 보기 위해 인스타그램을 켰다. 아직 스물네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내 프로필을 누르면 ‘4시간 전’이라는 문장과 함께 복이 사진이 떴다. 그 사이 스토리를 본 다른 지인들의 DM도 쌓여있었다. 얼른 쓰레기만 버리고 올 생각이었으므로 다녀와서 답장을 하려 했던 간단한 메시지들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곧 날이 밝기 시작했다. 날이 급격하게 차가워진  아침이어서 이제 진짜 겨울이 시작됐나 보다고 안부 메시지 몇 통이 왔다. 빈 공간이 너무 많아 몸을 잔뜩 웅크렸다. 긴 밤이 지나고 날이 완전히 밝았다. 시간이 분명하게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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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선

그림: 한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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