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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요희비극 Jan 27. 2020

#2

  복이가 아침저녁으로 심장약을 먹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사람들은 내게 종종 이런 말을 건넸다. "복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네가 많이 무너질까 봐 걱정돼."


  그때마다 다들 왜 그렇게 나를 걱정하는지 의아했다. 복이가 나를 제일 좋아해 주고, 나와 애착이 가장 크긴 했지만,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도 건강하게 그 날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충분히 사랑했으니까. 복이의 시간과 내 시간의 속도가 다르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 슬퍼도 잘 보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내가 집을 비웠을 때만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자주 기도했다. 그 날이 오면, 숨이 잦아드는 복이를 안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수고했다고, 많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복이가 내게 준비할 시간을 준다면, 복이가 좋아했던 사람들도 불러 복이 가는 길을 함께 배웅해주고 싶었다. 헤어진 애인이나 절교한 친구를 떠올리기도 했고,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겨버린 사람들 중에 복이를 알고, 복이를 아껴주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헤아려보기도 했다. 그게 내 소원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그렇게 걱정되지 않았다. 아주 걱정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복이는 새까맣던 눈이 탁해지기 시작했고, 귀가 어두워져 누가 왔는지도 모르고 잠만 자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에 조금씩 이별의 순간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이불 안에서 잠잠하면 놀라 이불을 걷었고 푸, 하고 숨을 내쉬는 모습을 보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하는 날이 반복되었다. 매일 긴장하면서도 내가 잘 버텨낼 거라 자신했던 이유는 내가 상상했던 이별의 순간에, 사고사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달려오는 택시를 보고 복아, 하고 소리 질렀을 때, 돌아보던 복이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부르지 않았더라면 저쪽으로 더 빨리 뛰어가서 차를 피할 수 있었으려나. 크게 다쳤더라도 살 수는 있었으려나. 사고사를 떠올려본 적도 있지만 나와 함께는 아니었다. 내가 아닌 사람과 산책을 나갔다가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거라고. 그러면 어떡하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해본 적은 있었다. 어째서 나는 나와 함께 있는 복이는 안전하다고만 생각했던 걸까. 무슨 자격으로 그토록 나 자신을 과신했던 걸까. 나는 내 생각보다 한참 허술했고, 복이는 내 생각보다도 나를 믿어서 우리는 지나치게 안심했다.  


  요즘의 나는 개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의 소식보다 개의 생을 마지막까지 지켜준 사람들의 소식을 자주 찾아본다. 주어진 시간을 다 살아내고, 평온하게 무지개다리를 건넌 개들의 소식을 보면 그 가족들도 슬플 텐데, 벌 받을 생각인걸 알면서도 그게 부러워서 한참을 들여다본다. 


  그 날 이후, 나는 빈 방에 누워 유골함을 안고 사고 장면을 몇 번이나 회상했다. 차에 치이기 직전 복이의 표정이나 부딪치는 소리, 비명소리 같은 것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복이가 없었다면 나는 더 망가졌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곳에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삶이 끔찍한 사람에게 생이란 오히려 너무 질긴 것이어서 죽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다. 겨드랑이 사이로 들어와 내 어깨에 턱을 괸 복이가 있어서 나는 그 시기를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복이의 삶이 너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복이를 안고 십 초 즈음 지나자 비명소리가 멈췄다. 십 초. 십 초 안에 숨이 멎으려면 얼마나 아파야 하는 걸까. 도대체 얼마나 아팠던 걸까. 그 생각만 하면 그게 언제든지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언젠가 고통이 희미해질까 봐 두렵다. 나는 영영 나아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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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선

그림: 한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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