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애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요희비극 Feb 03. 2020

#3

  당연한 말이지만 복이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갔다. 그래서 나도 움직여야 했다. 미리 돈을 받은 일을 해야 했고, 약속한 자리에 나가야 했다. 그 사이 누군가는 태어났고 누군가는 취직을 했고 누군가는 결혼을 했다.


  사고가 있은 지 삼일 만에 L의 결혼식이 있었다. L은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지만 다녀오기로 했다. 복이가 어릴 때부터 많이 아껴줬던 친구였다. 슬픈 것과 별개로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었다. 결혼식장에 도착하니 L과 친구들이 걱정과 안도를 담아 반겨주었고 나는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웃어 보였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만난 —어쩌면 다시는 볼 일이 없을 수도 있는— 지인 몇몇은 소식을 몰라 얼굴이 왜 그러냐고 묻기도 했다.


  피로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S는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진선아, 나는 요즘 너의 하루가 어떨지 상상이 안 돼.” S에게는 그날 아침이 밝자마자 소식을 알렸는데, 그 바람에 그날은 S까지 넋 놓고 있다가 회사에 늦었다고 했다. 복이를 만날 때마다 소중하게 안아주었던 S는 한 시인의 말을 빌려, 지금 내가 통과하는 슬픔이 ‘맑은 슬픔’ 같다고 말해주었다. S가 말하는 맑은 슬픔의 의미를 언뜻 알 것 같았지만, 나로서는 완전히 수긍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고맙다고 인사했다. S는 염려를 담아 잘 버텨야 해, 알았지? 하고 말했다. 알았다고, 잘 버텨보겠다고 손을 꼭 잡은 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수업을 하기 위해 홍대로 향했다. 수능이 보름도 남지 않은 과외학생에게 내 사정을 봐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미 수업료도 받은 상태였다. 불편한 차림으로 세 시간이나 수업을 하고 집에 오니 동생이 아직도 누워있었다. 불도 켜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나도 움직일 힘이 없어 그 옆에 누웠다. 우리는 말없이 핸드폰을 하다가 졸다가 이따금 서로의 게으름을 탓하며 실실 웃었다. 실은 서로가 괜찮은지 눈치를 보면서 좀 씻어, 네가 먼저 씻어, 하고 다시 말이 없었다.


  집에 온 지 일곱 시간이 지나서야 내가 먼저 씻었다. 복이가 떠나고 나는 못 견딜 것 같으면 샤워를 한다. 늘어지고 늘어져도 눈물을 참지 못할 것 같으면 오래오래 샤워를 한다. 집에서 동생 몰래 우는 유일한 방법이다. 모르는 게 아니라 모르는 척일 수도 있겠지만. 겨우 씻었어도 막상 긴 샤워를 마치고 나니 개운해진 나는 “이제 안 씻은 사람은 너뿐이야!”하며 여전히 누워있는 동생을 깐족깐족 놀렸다. 그러니 얼른 씻으라고. 동생이 느릿느릿 꿈틀대며 몸을 뒤집었다. “이복이 보고 싶다. 매일 안 씻는 애 있으면 나만 안 씻는 거 아닌데.”라면서. 순간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나는 동생의 눈치를 살피며 흐흐 그러게, 하고 웃었고 동생은 그런 내 눈치를 살폈다.
  

  마침내 동생이 씻으러 들어갔다. 나는 맥주를 사러 나왔다. 불과 오일 전, 한시적으로 금주를 선언했었는데. 금주선언의 이유는 알 수 없는 우울감이 다시 몸집을 키웠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손을 씻는 데에도 한참이 걸려서 의식적으로 술을 멀리 했다. 예전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될까 봐 약을 꾸준히 먹기로 했는데, 술을 마시면 약을 먹지 못하고, 늦게 잠들고, 늦게 일어나게 되니까. 늦게 시작하는 하루에는 좀처럼 면역이 생기지 않으니까. 일찍 시작하는 하루를 좋아한다 해서 규칙적인 삶을 살았던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이 시기를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우울을 핑계로 나는 몇 주간 복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더 많이 웃어주고 더 많이 놀아줘야 했는데. 집에 오면 자다 깬 복이를 안고 우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겨우 기운을 내서 충동적으로 나간 게 마지막이라니. 복이의 기억들이 우울과 공포로 얼룩졌을까 무섭다. 그런 생각을 하니 편의점에서 다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생이 흘끔흘끔 쳐다보았는데도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눈물 참기를 포기했다. 어차피 동생도 없으니까. 제멋대로 흐르는 눈물을 내버려 둔 채로 바구니를 들었다. 맥주와 소주를 담고 내가 좋아하는 김밥과 동생이 좋아하는 샌드위치까지 사서 계산대에 올렸다. 한 달 전 R이 알려준 담배도 샀다. 가슴이 답답하면 펴보라면서 태우는 방법부터 종류와 맛까지 상세하게 알려준 R 덕분에 한참을 울다 들어가도 둘러댈 핑계가 있었다. 커다란 봉지를 들고서 천천히 담배 두 대를 태우고 나니 눈물이 멈췄다. 이제 얼마간 웃어 보일 힘이 생겨서 심호흡을 크게 하고 들어갔다. 그리고 고작 2층까지 올라가는 사이 까맣게 잊어버린 사실. 계단을 총총 오르면서 현관문을 열기까지 나는 잠시 들떴다. 문을 열며 나도 모르게 복아, 하고 말해버린 것이다. 동생이 들었을까 봐 아차 싶었다. 잠시 주변을 살피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냉장고에 사 온 것들을 넣어두었다.
  

  작고 소중한 복슬강아지. 사회성이 떨어져서 잘 지내고 있을지 너무 걱정된다. 복아. 복이야.


 

(C) 2020. HanInae. All rights reserved.






글: 이진선

그림: 한인애

매거진의 이전글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