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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요희비극 Feb 10. 2020

#4

  늦은 오후 일어나 물을 마시며 현관에 쌓인 택배 상자를 보았다. 쓰레기 버리는 날이네. 식도를 따라 물이 내려가는 것을 느끼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날도 쓰레기 버리는 날이었으니 복이가 떠난 지 벌써 일주일이나 지난 것이다. 시간이 너무 빨랐다. 복이 없는 하루하루가 쌓일 때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더 공고해지는 것 같아 무력해졌다.


  일주일 동안 동생은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침대 밖으로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간신히 버텨내고 있었지만 울지는 않았다. 내가 죄책감을 가질까 봐 제대로 울지도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동생의 걱정을 덜고 싶어 나 역시 동생 앞에서는 울지 않았으니까. 장례를 마친 뒤로 나는 동생이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집에 있는 게 괴로웠다. 책상에 앉으면 사고 자리가 바로 보였고, 집의 모든 곳이 복이의 흔적이었다. 반면 동생은 집 밖에 나가는 게 괴롭다고 했다. 조금도 움직일 힘이 없다고. 그래서 우리는 자꾸만 엇갈렸다. 어쩌면 동생도 내가 나가 있는 동안 어떤 식으로든 울었을지 모르고 그랬기를 간절히 바랐다. 나는 울지 않는 동생이 병들까 봐 무서웠다. 사람들은 모두 나를 더 걱정했다. 사고는 내가 냈는데, 사고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는 이유와 내가 유약하다는 이유로 동생보다 많은 걱정과 배려를 받았다.


  내가 밖으로 돌 때마다 동생은 언제 들어오는지, 어딜 가는지 캐물었다. 동생 역시 내가 본인보다 걱정되었던 것이다. 위로의 말을 듣고 기운 차리려 노력하는 중간중간에도 사무치게 보고 싶을 때가 있어 몸을 움직이는 데에는 많은 힘이 필요했지만 나는 매일 아무 데라도 걸었고 무리해서 일정을 소화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날도 일어나자마자 목적 없이 밖으로 나왔다. 사고 지점에서 출발해 한 달에 한 번씩 복이 약을 탔던 동물병원을 지나 계속 걸었다. 한 시간 즈음 울면서 걷고 나서야 카페에 들어갔다. 구석 자리에는 이미 사람이 있었다. 하는 수없이 통로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마포구에 있는 신경정신외과를 찾아보았다. 동생을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다니는 대학병원은 바로 진료 일정을 잡을 수 없고 다니기가 불편해 다른 병원으로 알아보았다. 그리고 동생에게 상담치료를 권유하는 말을 오랫동안 고쳐 적었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읽어보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엄마였다. 진동을 끄고 부재중 전화 표시가 뜰 때까지 기다렸다. 엄마의 염려가 거북했다. 나를 걱정하는 건 여러모로 부당한 일이었다.  


  사고 다음날 엄마는 가게를 닫고서라도 서울에 오겠다고 했다. 내가 받지 않으니 동생에게 한 말이었지만 동생의 핸드폰 밖으로 엄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다급하게 안 돼, 하고 말했다. 엄마가 와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동생이 완곡하게 엄마를 만류했다. 엄마는 걱정이 돼서 살 수가 없다며 그럼 잘 지내는 걸 보여주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동생은 밥상을 찍어 보냈다. 밥을 거를 서로가 걱정되어 의식적으로 서로의 끼니를 챙겼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평소보다 더 건강한 밥을 더 규칙적으로 먹고 있었다. 사진을 받은 엄마는 이제 안심이 된다며 고맙다고 했단다. 그런 말들이 싫었다. 도대체 어떻게 잘 지내라는 건지. 그럴 수가 있는 건지. 그 뒤로도 엄마는 이따금 내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복이보다 나를 걱정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대신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언니는 잘 있냐고 물었다고 한다. 동생은 나를 편애하는 복이한테 나만큼 사랑을 받지 못했어도 나보다 복이를 성실하게 사랑했다. '언니는 예뻐할 줄만 알지'가 동생이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고 그건 사실이었다. 언젠가 복이가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 해도 냄새로 산책을 할 수 있도록 고정된 산책 경로를 만들려고 애썼던 동생이었다.  


  곧 전화가 끊겼고, 부재중 전화 표시가 떴다. 나는 동생에게 보낼 메시지를 다시 처음부터 읽어본 뒤 전송했다. 그런데 엄마에게서 바로 메시지가 왔다. 할머니 돌아가실 것 같아. 그러고 보니 할머니도 아프다고 했는데. 아프다고 한지 꽤 됐는데. 입에 달고 살던 '아이고 나 죽네'가 아니라 그런 말도 못 할 정도로 많이 아프다고 한지도 정말 정말 오래됐는데. 집에 내려갈까? 하고 바로 물었다. 엄마는 다시 연락한다는 답장과 함께 더 이상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리고 한 시간 뒤에야 한고비 넘기셨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진심으로 마음이 놓여 다행이라고 말했다. 저녁에는 동생에게 연락을 했다. 아직 밥을 먹지 않았으면 같이 먹자고. 동생과 마주 앉아 건강한 식사를 찍어 엄마에게 보냈다. 사고 이후 처음으로 보낸 메시지였다. 엄마는 고맙다며 하트까지 찍어 보냈다. 밥을 먹고 나서는 동생과 함께 엄마가 할머니를 보러 가는 시간에 맞춰 영상 전화를 걸었다. 의식이 흐릿한 할머니 옆에서 엄마가 울고 있었다. 화질이 좋지 않아 눈물에 얼굴이 짓무른 것처럼 보였다. 그런 얼굴을 하고서 우리를 보고 싶어 했던 할머니에게 화면을 보여주느라 한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할머니의 의식은 아주 가느다란 한가닥만 겨우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이제 그만 끊으라고 했다. 엉망인 표정과 잠긴 목소리로. 차마 끊을 수 없어 계속 들여다보고 있는데 끊긴 줄로 아는 엄마는 점점 더 크게 울었다. 핸드폰을 엎어 두었는지 캄캄한 화면에 울음소리만 커져서 하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할머니 때문에 못살겠다더니 왜 저렇게 울어, 하고 동생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그렇게 싫다더니 뭘 저렇게 울까. 저렇게 서럽게 울까. 엄마의 엄마라서 그런가. 엉엉 우는 엄마를 보니 나도 좀 전까지 미웠던 엄마가 어떻게 될까 봐 무서워졌다. 그래서 동생 몰래 메시지 창을 켜 엄마가 잘못되면 나는 지금 엄마보다 천배는 슬플 거라는 낯 간지러운 말도 남겼다. 동생은 다시 한숨을 크게 쉬더니 한잔 할까, 하고 말했다. 나가는 게 싫다고 했으니까, 나는 사 올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동생은 우리 둘이 마시면 너무 우울할 것 같다고,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마실 수 없나? 하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가던 동네 술집에 가기로 했다.  


  술을 마시면 너무 울까 봐, 그러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질까 봐 조심했는데 할머니까지 아프다니 역시 그냥 견디기에는 힘든 날이라고 생각했다. 동네 술집에 가니 다정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얼굴을 보자마자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들을 보며 이상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언젠가 복이를 데리고 와 겉으로는 복이의 모난 성격을 탓하며 속으로는 자랑스러운 마음에 우쭐했는데.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개와 고양이의 온기도 느끼던 동생이 드디어 울기 시작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우리는 과음했고, 취한 동생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더니 그대로 집에 갔다. 나는 좀 더 있다 일어섰다.


  집에 오니 동생이 불규칙적으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그 옆에 누워 다시 사고 장면을 복기했다. 할머니도 복이를 참 예뻐했는데. 복이를 서울로 데려오기 전까지 칠 년 동안 둘은 좋은 친구였는데. 오랜만에 복이를 데리고 가자 눈이 탁해진 복이를 안고서 너도 늙고, 나도 늙는다며 왜 늙냐고 했는데. 넌 개여, 하면서 잘도 먹을걸 줘서 애 버릇을 다 망쳐놓은 할머니는 복이 소식을 알지 못한다. 만나면 내 이름이 뭐냐고 묻기부터 하게 되었으니까, 전한다 해도 제대로 전달될지 모르겠다. 할머니가 먼 길을 떠나게 되면 할아버지와 삼촌들보다 복이가 제일 먼저 반겨줄까. 다른 개들과 친하지 못한 복이를 할머니가 지켜줄까. 이런 순진한 생각이나 하고 있어도 되는 걸까.


  날이 밝자 동생이 어기적 일어나 물을 마셨다. 동생을 따라 거실로 나가 병원 예약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었다. 우려와 달리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알았다고 해서 바로 진료예약을 해둔 참이었다. 물을 다 마신 동생은 컵을 개수대에 내려놓으면서 그런데 언니 그거 알아? 하고 말했다. 언니가 나를 제일 걱정한다? 사람들 모두 다 언니를 걱정하는데, 언니만 나를 걱정해. 엄마도, 친구들도 다 언니 괜찮냐고 물어봐. 나도 나지만 언니 진짜 어떻게 될까 봐 걱정된대. 말도 못 걸겠대. 그런데 그런 언니가 세상에서 나를 제일 걱정해. 나는 이번에도 얼마간 눈치를 봤다. 동생은 다시 침대로 돌아가며 그냥 그렇다고, 하고 말했다. 아 나가기 싫어, 하고.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또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차갑게 가라앉는 밤공기 때문이었을까. 나 몰래 복이 생각을 하며 울었을 엄마에게 오랫동안 장문의 메시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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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선

그림: 한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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