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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애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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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요희비극 Mar 09. 2020

#7

  복이를 보내고 2kg 정도가 쪘다. 주변에서 끼니때마다 식사를 했는지 물었기 때문이다. 입맛이 없다고 하면 찾아오거나 집으로 음식을 보내서 나는 매번 잘 차려진 밥상을 인증하곤 했다. 인증을 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겐 눈앞에서 한 번 더 밥 먹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럴 때면 배가 불러도 먹음직스럽게 푹푹 먹느라 과식을 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평소보다 잘 먹고 많이 먹게 되어서 포동포동 살이 올랐다. 어쨌든 잘 먹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주변의 걱정은 많이 덜 수 있었고 걱정스러운 연락도 차츰 잠잠해졌다. 그럼에도 식사는 계속 잘 챙기게 되었다. 동생 때문이었다. 나 역시 동생의 끼니는 걱정되었고, 입맛이 없다는데도 무언가를 먹이고 싶었다. 그래서 자꾸만 밥은 먹었는지, 무얼 먹었는지, 언제 먹었는지, 진짜로 먹었는지 등등을 물었다. 아무것도 안 먹고 싶고, 안 하고 싶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귀찮게 굴었다. 그건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우리는 밥을 먹을 때마다 무얼 먹었는지 공유하기로 했다.


  주로 동생이 먼저 사진을 보냈다. 사진과 함께 왜 아직 밥을 먹지 않느냐며 채근하는 메시지도 함께 보냈다. 다시 출근을 시작한 동생은 비교적 규칙적으로 생활하기 시작했지만 무직인 나는 여전히 밤낮이 바뀐 채로 지내고 있어서 끼니때를 맞추기가 어려워 메시지를 받으면 허둥지둥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수도 안 한 채로 반찬을 꺼내고 밥을 녹이면서 옷을 입고 밥상을 차렸다. 내친김에 식탁보까지 깔고 접시에 반찬을 덜어 그럴싸하게 사진을 찍어 보내고 나면 다시 식탁보를 접어 넣고 밥과 반찬을 한 곳에 모아 비벼 먹었다. 그럴 때면 뭐가 빠진 것 같아서 등이 굽은 자세로 앉아 그게 뭔지 우물우물 생각하곤 했다. 뭘 빠뜨렸지? 뭘 해야 하지? 그러고는 강아지구나, 하고 깨달았다. 강아지가 없었다. 복이가, 없었다. 먹는 일이 너무 편해진 것이다. 


  입맛이 까다로운 복이는 대체적으로 잘 먹지 않았지만 사람음식에는 유독 식탐이 강해서 먹어보지 않은 음식이거나 좋아하지 않는 식재료여도 일단 입에 넣어야 했다. 그 경우 대부분 다시 뱉었는데, 뱉고 나서도 새로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했다. 그래서 우리는 집에서 음식을 먹을 때마다 복이에게 시달렸다. 안 그래도 목청이 좋은 복이는 원하는 걸 얻어낼 때까지 짖었기 때문에 밥을 먹는 내내 귀를 혹사당해야 했다. 복이는 일단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부터 집중하다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거나 먹을 것이 보이면 어느새 따라 나와 발을 굴렀다. 발을 구르다가 짖고, 앞발로 내 다리를 긁거나 앓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동생은 언제나 단호하게 주지 않았고, 나는 눈치를 봐가며 줄 때도 있고 안 줄 때도 있었다. 음식 자체보다는 우리가 먹는 것을 탐내서 사료를 잘 먹지 않는 복이를 위해 우리는 매일 밤 복이 밥그릇을 앞에 두고 먹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사료를 손에 덜어 입에 가져가 아이 맛있어, 하면 복이는 관심을 줄 때도 있고, 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 겨우 관심을 얻으면 한 알씩 애걸복걸해서 먹이곤 했는데 그렇게 배를 채우고도 우리가 뭘 먹으려고 하면 다시 발을 구르고 짖기 시작했다. 그래서 매 식사시간은 시끄럽고 피곤했다. 그래도 먹고 있는 음식을 친구들에게 자랑할 때마다 내 다리를 밟고 두발로 선 복이를 함께 찍는 것이 내게는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그러니까, 복이가 없다는 건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고 그건 퍽 서러운 일이었다. 


  요즘에는 편해진 일상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나갈 때 복이의 밥과 물과 배변패드를 점검하지 않고, 이불과 쿠션을 복이가 눕기 좋게 정돈해두지 않는다. 불을 켜 두지 않고, 가스 검침이나 정수기 점검을 받을 때 방문부터 닫지 않는다.


  하지만 복이의 부재로 가능해진 일은 너무 많아서 예기치 못한 순간에 마주하게 된다. 복이는 우리가 외출 준비를 하면 나가든 말든 간식 먹을 생각에 들떠서 자다가도 거실에 나와 있다가 일단 간식을 받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침대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때 서둘러 나왔는데, 무언가를 집에 두고 나오면 복이를 다시 달랠 생각에 돌아가는 일이 망설여졌다. 나올 때마다 간식을 줘야 하는데 일정량 이상 먹으면 탈이 나기 때문에 아주 잠깐이어도 주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냥 가던 길을 갔는데, 그 습관이 아직 남아 있었다. 여전히 뭔가를 빠뜨리고 나오면 자책을 하며 약속 장소로 향하다가 불현듯 복이가 없다는 것을 상기할 때가 있다. 그렇게 다시 빈 집으로 돌아가면 더 적막한 느낌이 든다. 


  얼마 전에는 우리 집에 일괄소등 스위치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동생과 함께 집을 나서는데 동생이 집에 이런 게 있었다며 신발장 벽에 붙어 있는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집 안의 모든 전등이 동시에 꺼졌다. 복이를 위해 불 하나씩은 늘 켜 두고 다녔던 터라 그동안은 쓸 일이 없었다. 그러네, 하며 동생을 따라 흐흐 웃었다. 일괄소등 말고도 할 수 있게 되는 일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그 날 우리는 여행 계획을 세웠다. 이제는 둘 다 집을 비워도 괜찮으니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때때로 숨이 막힐 정도로 불편하다. 이런 날이 언젠가 오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복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했던 일들이 그리워질 날이. 복이는 고집이 센 강아지여서 모두가 잠든 새벽에도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발을 구르고 으르렁거렸다. 복아 제발, 하며 무거운 몸을 일으켰던 새벽에도 언젠가 그 피곤함이 간절해질 거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건 피로한 행복이어서 편해진 일상을 수시로 쓸쓸하게 만든다. 털이라도 조금 잘라올걸.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복이 때문에 피곤해지고 싶고, 복이를 안으며 그 피곤을 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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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선

그림: 한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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