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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요희비극 May 15. 2023

#18

  중학생 때에는 동생이 사라지길 자주 기도했다. 형제가 없는 친구들이 독차지하는 것들을 부러워하면서 쟤만 없다면, 하고 지독한 상상을 하곤 했다. 얼굴을 할퀴고 머리채를 잡으면서 저주를 퍼부었는데. 언제부터 우리는 다시 다정한 사이가 되었지? 팔짱을 끼고 동네를 산책하게 되었지? 여전히 어린애처럼 유치하게 다투는 날도 있었지만, 어른이 된 우리는 제법 어른스럽게 서로를 챙겼다. 


  그런데 복이를 보내고 몇 달 뒤 우리는 크게 싸웠다. 그제야 알았다. 우리의 끈끈한 우애에는 복이의 지분이 상당했다는 것을. 지기 싫어 악을 쓰던 어느 날 구석에 꼬리를 말고 있는 복이와 눈이 마주쳤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소리를 낮추고 복이를 안았다. 미안해 아가, 미안해, 무서웠지… 그 말은 서로에게도 전달됐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래서 우리의 싸움은 좀처럼 커지지 않았다.


  이제 복이가 없다. 복이가 없어서 우리는 싸웠고 싸움을 멈출 수 없었다. 서로의 눈치를 보느라 전하지 못한 마음은 징그러운 오해가 되었다. 최초의 이유는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을 때, 서운함은 미움이 되어 막무가내로 싸움을 부추겼다. 어느 날 설거지를 하던 나는 문득 침대에 누워있는 동생에게 달려가 화를 냈다. 너는 왜 그렇게 누워만 있니? 나만 치우니?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니? 


  동생은 몸을 일으켜 나를 노려봤다. 내가 언제? 나는 쓰레기봉투가 차기도 전에 내다 버렸어. 언니가 죄책감을 느낄까 봐. 그런 것도 모르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기 혼자 다 하는 줄 알지. 너만 잘났지?    

 

  그건 반칙이었다. 사고 이야기 앞에서 내가 장전한 모든 말은 힘을 잃었다. 비겁한 년. 할 말이 없어진 나는 반박 대신 조롱을 시작했다. 게을러 터져가지고. 누워만 있으니 살이 찌지. 동생도 지지 않았다. 지랄. 백수년이 누구보고 게으르대?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혹여라도 동생이 그렇게 생각할까 봐 고통스러우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이 이렇게 어려웠었나. 뒤질래, 씨발년아? 나는 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 말만 하면서 바보처럼 울었다. 동생이 비웃었다. 할 줄 아는 욕이 그것뿐이냐? 동생의 도발에도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고 화가 가라앉지도 않았으므로 나는 소리를 지르면서 아무거나 던지고 부쉈다. 지켜보던 동생이 방문을 발로 찼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아슬아슬한 주행이 이어졌다. 이웃에 들릴 게 분명했지만, 그 정도로는 아무것도 멈출 수 없었다. 사과할 줄 몰랐던 중학생처럼. 복이를 만나기 전처럼. 집 곳곳이 어질러지고 망가졌다. 몸 곳곳이 까지고 멍들었다. 마음이 속수무책으로 허물어졌다.


  그날, 동생은 나를 견딜 수 없다며 본가에 내려갔다. 혼자 남겨진 내게 엄마가 울면서 전화를 걸어왔다. 왜 그렇게 모진 말을 해… 엄마에게 미안했지만 겨우 짜낸 대답은 내가 나가라고 한 게 아니라는 말뿐이었다.    

 

  며칠 뒤 나는 제주도에 가기로 했다. 친구 재진의 제주도 지인이 서울 여행을 하는 동안 그녀의 개들을 봐주기 위해서였다. 집이 버겁던 차에 반가운 제안이었다. 제주도에 갈 준비를 하면서 대청소를 했다. 셋이 살던 집. 복작복작했던 집. 깨진 유리와 나무, 찢어진 옷 등을 볼 때마다 눈물이 쏟아졌다. 작정하고 치워도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린 것들이 너무 많았다. 청소를 마치고 나니 집은 더 휑해 보였다. 엄마를 통해 동생이 혼자 살 집을 알아보러 다닌다는 소식을 들었다. 복이가 없으니까 쉽게 흩어지고 쉽게 떠날 수 있었다. 제주도에 가면서 나 역시 동생에게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다.


  전달받은 주소로 찾아가니 과연 자유로운 개 두 마리가 경계도 없이 나를 맞이했다. 쫄랑이와 시월이었다. 쫄랑쫄랑 쫓아다니는 쫄랑이가 어느 시월에 길에서 친구를 데려왔다고 한다. 어려운 일은 없었다. 하루 두 번 산책과 밥과 물을 챙기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문을 열어두고 자면 새벽에 자기들끼리 산책하고 볼일도 보고 온다고. 그런 말을 전하면서 집주인 지윤은 리드줄이 어디 있는지도 알려주었다. 여태껏 아무 일도 없긴 했지만 그래도 정 불안하면 사용하라고. 그녀의 투박한 다정함에 복이 소식을 들었구나 싶었다. 나는 고맙다고 했다. 


  제주도에서의 일과는 단순했다. 개 산책과 그냥 산책의 연속이었다. 첫날, 아침이 채 밝기도 전부터 개들은 대문을 열라며 나를 호되게 깨웠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지만 어림없었다. 힘 좋은 앞발로 땅굴을 파듯 긁고, 짖고, 머리카락을 물어뜯었다. 그렇다 해도 문을 열어두고 잘 수는 없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작은 길에서도 차가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는지, 그런 차가 얼마나 많은지 수없이 목격했기에―이걸 왜 지금까지 몰랐는지 지윤이 없는 동안 그런 일이 쫄랑이나 시월이에게 생기면 나는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지윤을 보지 못할 것이다. 내 죄로 쫄랑이와 시월이는 매일 아침 리드줄에 묶여 나를 끌고 동네를 크게 돌았다. 그러다 보면 아침의 축축하고 맑은 공기에 잠이 깼다. 선명하게 시작된 하루. 가볍게 땀을 흘리고 돌아오면 오후 산책 전까지 씻고 책을 읽거나 일기를 썼다. 


  어느 아침엔 머리를 감으면서 제주도에 사는 숑 언니를 떠올렸다. 연락해 보니 언니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날 바로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제주도에 오게 된 계기를 이야기하자 놀랍게도 언니와 지윤은 서로 아는 사이라고 했다. 언니는 비행기 표를 새로 끊어줄 테니 하루만 더 제주도에 있으면서 그녀의 레고도 봐줄 수 있는지 물었다. 레고는 아주 잠깐이지만 안면 있는 개로, 커다란 푸들이었다. 나는 흔쾌히 알았다고 했다. 그리하여 나의 제주도 일정은 더 길어졌다. 그때까지도 나는 동생과 아무 연락을 하지 않았다. 동생이 좋아하는 음식을 볼 때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마다, 장난기 많은 고양이나 담장 너머 얼굴을 내놓고 있는 개를 볼 때마다 동생이 생각났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도 훨씬 옹졸하다는 것을. 사과할 수밖에 없도록 등 떠밀어주는 존재 없이는 내 상처만 보는 사람임을. 내가 싸움을 걸어놓고, 싸우면서 마음에 응어리진 것들이 풀어지지 않았다. 알면서도 그랬다. 


  며칠 후 지윤의 집을 떠나 숑 언니네로 향하면서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상황이 얼마나 더 나빠질까. 우리는 예전처럼 다정해질 수 있을까. 아니, 원수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동생이 받은 상처를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아니다.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움직였다. 나무네, 차네, 사람이네, 하면서. 내려야 할 역의 안내방송을 듣고 허둥지둥 버스에서 내렸다.


  쫄랑이와 시월이가 자유롭게 지내는 개들이라면 레고는 철저하게 관리되는 개였다. 마치 동생이 복이를 대했던 것처럼. 우리는 레고가 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내가 레고의 평소 산책길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함께 레고의 산책길을 돌았다. 마침내 레고와 단둘이 남았을 때, 우려했던 바와 달리 레고는 차분했다. 그리고… 내게 기댔다. 턱에 힘을 빼고 어깨에 몸의 무게를 맡기듯 기댔다. 그건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촉이었다. 레고는 복이보다 몸집이 크고 무거웠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레고를 힘주어 안아보았다. 


  다음날은 늦잠을 잤다. 밤새 울었는지 눈이 무거웠다. 창으로 빛이 쏟아졌다. 그제야 나는 제주에서 내내 혼자였으면서 숨죽여 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낮게 소리 내 울자 레고가 얼굴을 핥았고, 그 힘으로 나는 얼마간 더 서럽게 울 수 있었다. 그동안 레고는 계속 곁에서 몸을 맞대주었다.


  그날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물건의 위치를 묻는 메시지였다. 이 메시지를 얼마나 보내기 싫었을지, 보내지 않기 위해 얼마나 찾아보았을지 생각하니 웃음이 나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 동생에게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연이어 메시지를 보냈다. 서울에 올라가는 중이라고. 얼굴을 보고 사과를 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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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선

그림: 한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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