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해 있는 단체 채팅방 중 하나는 ‘성산동 술방’이라는 그룹이다. 이 친구들을 모두 알게 된 건 2017년 성탄절 밤, 동네의 작은 나무집에서였다. 제일 처음 만난 사람은 나무집 주인이었다. 되도록 바깥바람을 쐬고, 자꾸만 몸을 움직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밤이 되어서야 겨우 돌아다니기 시작했던 그해 초, 동네에 나무로 외관을 꾸민 작은 가게가 생긴 것을 발견했다. 뭘 하는 곳인지 기웃거리다가 어느 날 ‘빵꽃잠’이라고 적어놓은 입간판과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쇼케이스를 보고 빵집인가, 했다. 며칠 뒤 그 앞을 지나가는데 스콘이 진열된 것을 보았고, 안에서 복닥거리던 사람들이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그런 살가움과 온기, 호기심과 식욕 같은 것이 너무 생경해서 나는 조금 망설였다. 그 모습을 보고 이미 헤어진 애인이 먹어볼래? 하고 물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여섯 시간 동안이나 편지를 써서 기껏 헤어지자고 했더니 여전히 나를 걱정하고 내 상태를 살피는 그가 고맙고 미웠다. 우리는 나무집 문을 열었다. 안에서 진한 버터 향이 쏟아졌다. 스콘 하나를 주문하자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이 더 들떠서 포장 과정을 숨죽여 지켜보았다. 그사이 나는 눈만 굴려 작고 노란 나무집을 구경했다. 한쪽 벽 아래 알록달록한 꽃이 종류별로 정리되어 있었고, 아기자기한 화분과 소품 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빵꽃잠이라니. 빵과 꽃을 파는 곳인가? 잠도 여기에서 주무시는 건가. 자고 가도 된다는 건가. 이런 생각들을 하며 과하게 포장된 스콘을 받아서 근처 카페로 향했다. 그리고 단가에 맞지 않아 다시는 볼 수 없었던 그날의 과대 포장은 뜻밖에도 나를 하루 종일 밖에 있을 수 있게 만들어줬다. 고작 스콘 하나를 이렇게 포장해주다니. 멍든 마음을 토닥여주는 기분이어서 눈물이 조금 났고, 그래서 얼마간 울었고, 그 힘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술집에서 빵꽃잠 사장님과 마주쳤다. 그즈음 나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는데, 술을 마시지 않아도 울었고 술을 마시면 더 울었다. 그날도 친구들과 바에 앉아 엉엉 울고 있는데 누군가 해맑게 다가와 오늘 만들었다며 예쁘게 포장한 머랭 쿠키를 건넸다. 이미 취한 터라 체면 같은 건 없었다. 고마운 건 진심이니까, 정말 고마우니까, 울면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조금 취해서요, 하면서. 그런 식으로 그녀와 술집에서 몇 번 마주쳤다. 나중에야 그녀는 그날을 회상하며 친구들이 저분 우는 것 같으니 나중에 드리라고 했는데 본인도 취해서 빨리 주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녀의 이름은 정진. 정진을 알게 되고 계절이 두 번 더 지나 가을이 되었을 때, 여느 날처럼 집 앞에서 술을 마시다가 그녀를 또 만났다. 그날 술집에서 정진의 일행이 빵꽃잠 브라우니를 선물해주었고, 우리는 함께 술집을 나와 나무집에서 조금 더 마시고 헤어졌다.
며칠 뒤 동네의 다른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정진의 일행이던 재진이 들어왔다. 우리는 동시에 어? 하고 알은체를 했다. 이렇게 빨리 다시 만날 줄은 몰랐기에 정말 반가웠다. 작은 술집이 많은 동네이기도 하고 매일 술을 마시기도 해서 재진과는 그 뒤로도 종종 마주쳤다. 나는 오래된 친구들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전하지 못한 근황을 재진에게 털어놓았고 대체적으로 슬픈 표정의 재진은 자꾸만 무언가를 주려 했다. 그런 것들의 대부분은 쓸모없었지만 위로가 되었다. 나는 장난으로 언니라고 부르는 재진에게 계속 그렇게 불러달라 했고, 그는 흔쾌히 그러겠노라 했다. 재진이 부르는 언니는 누나보다 다정하게 들린다.
그해 성탄절, 정진은 시간이 되면 빵꽃잠에 놀러 오라고 했다. 가고 싶은 마음과 별개로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느지막이 도착했다. 그때 나무집에는 정진과 은지, 규원, 현정이 있었다. 모두 재진과도 친구라고 했다. 은지는 빵꽃잠에서 자주 만나 이미 인사를 하고 지내던 사이였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인데 술집에서도 몇 번 마주쳤고, 해맑게 웃으며 잔인한 농담을 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나는 자꾸만 은지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규원과 현정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내 동생을 똑 닮은 규원과,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재현해놓은 것 같은 현정에게 나는 첫눈에 반했다. 우리는 인도 여행 중인 재진에게 영상 전화를 걸었고 재진 없는 자리에서 재진의 친구 모임을 가졌다.
그 후 재진이 귀국한 날, 우리는 다시 나무집에 모여 선물 증정식을 가졌다. 물욕 넘치는 사람들이 모여서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는데, 재진이 늘어놓은 물건 중 탐나는 것들은 대부분 재진 본인 것으로 자랑용이었다. 찍은 사진을 공유하기 위해 단체 채팅방이 개설되었고, 그 뒤로도 그 방은 하루 종일 시끄러웠다. 영양가 없는 이야기가 쉬지 않고 오갔지만 그런 부산스러움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 넘게 이어진 채팅방에서 한 달 전쯤에는 누군가 정선에 있는 오래된 산장에 다녀오자고 제안했다. 대부분의 대화를 놓치는 탓에 한참 뒤에야 산장 이야기가 오간 것을 발견한 나는 뒤늦게 남은 자리에 합류했다. 확정된 사람은 규원, 현정, 재진, 나, 네 사람이었다. 열 시쯤에 성산동에서 출발하자고 했으나 열두 시가 지나서야 일어났고, 그럼에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막연히 산장에 가자는 계획이어서 세부 일정이랄 게 없었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대충 짐을 챙겨 나왔다. 해발 700미터에 위치한 산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저녁 일곱 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개가 요란하게 짖었고, 캄캄한 하늘에 별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그리고 정말 추웠다. 겨울에 취약하지만 이번 겨울은 견딜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잠시도 바깥에 서 있기 힘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근사한 집에 묵는다는 사실만으로 많이 들떴다. 우리는 서둘러 저녁을 차려먹고 방에서 술을 마시기로 했다.
산장은 외관도 훌륭했지만 방이 정말 근사했다. 방문을 열면 입구에 아궁이가 있고, 그 옆으로 넓게 장작이 쌓여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장작 타는 소리가 들렸고, 나무 냄새, 불 냄새, 흙벽 냄새가 은은하게 번졌다. 그 냄새를 잔뜩 맡고 싶어서 나는 자꾸만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아궁이 불로 데워놓은 아랫목에 앉아 맥주와 와인을 마셨다. 노트북에 스피커를 연결해서 영화도 틀어놓았다. 영화의 선정 기준은 가볍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가볍게 볼 수 있다는 것은 이야기하고 술 마시면서 보아도 내용을 크게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어서, 지나치게 슬프거나 진지한 내용이어도 안 됐다. 그렇다고 터무니없이 유치한 영화도 안 됐다. 그러나 깐깐한 선정 기준을 마련해놓고 우리는 “이거 어때? 괜찮은데?” 하고 순식간에 영화를 골라버렸다. 우리가 고른 영화는 <연애의 온도>였다. 김민희와 이민기의 진부한 연애와 이별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자주 탄식했다. 아, 저러면 안 되는데, 겪어야 알아, 얼마나 괴로워, 저러면서 성숙하는 거야, 하면서. 그사이 나는 취해서 영화를 보다 울었는데, 그게 어떤 장면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눈을 떴을 땐 나란히 누워 모두 잠들어 있었다. 몸을 일으켜 앉은 채로 언제 잠든 건지, 술자리는 언제 끝이 났는지 사태 파악을 하고 있는데 방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잠꼬대 같은 것이 아니라 분명 누군가의 ‘말소리’였다. 화면이 멈춰 있는 걸로 보아 노트북에서 나오는 소리도 아닌 것 같았다. 모니터에는 <연애의 온도> 대신 다른 영화가 떠 있었다. 그래서 김민희와 이민기는 어떻게 된 거지? 헤어졌겠지, 헤어졌을 거야.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끝까지 보지 못한 영화의 결말을 짐작하면서 보이지도 않는 공기가 하얀색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취기 때문인지 술을 마시는 동안 점점 진해지는 것 같았던 연기 냄새가 그사이 더 짙어진 기분이었다. 이러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되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아궁이에서 나오는 연기는 일산화탄소가 맞나? 여전히 몽롱한 상태로 나는 다시 누웠다. 그러자 끊겼던 말소리가 짧게 이어졌다. 영화는 여전히 일시 정지 상태였다. 문득 노트북 불빛이 닿지 않는 넓고 캄캄한 공간에 낯선 누군가가 있는 상상을 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불에서도 연기 냄새가 났다. 그 냄새를 맡으며, 어쩌면 우리 모두 벌써 죽은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다시 졸음이 몰려왔고 지금이라도 친구들을 깨워야 하나, 아닌가, 이미 죽은 건가, 죽어가는 건가, 걱정하면서 좀 더 누워 있었다. 한참 뒤에 다시 말소리가 들렸고 나는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연결 상태가 좋지 않아 영화에 버퍼링이 발생했음을 알아차렸다. 일시 정지가 아니라 재생 중인데 재생보다 정지에 가까운 상태로 재생 중이라는 것을. 친구들은 여전히 잘 자고 있었고 나는 목소리의 정체가 귀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과 별개로 일산화탄소 중독이 계속 걱정되었다.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서 일단 손으로 바닥을 짚어가며 핸드폰을 찾았다. 그리고 핸드폰 불빛으로 가방을 뒤져 칫솔을 찾았다. 한참을 찾아도 없어서 세수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화장실에 갔더니 화장실 앞에 내 칫솔 케이스가 있었다. 그 정신으로 이도 닦고 자다니. 스스로를 기특해하며 연기가 빠져나갈 수 있게 방문을 열어두었다.
다음 날 우리는 정오가 한참 지나서야 일어났다. 그때까지 방은 캄캄해서 커다란 동굴 같았다. 우리는 정선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에 가기로 했다. 카페에 가기 전 친구들은 전날 내가 취한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기억나지 않는 내 모습이 어이없고 황당해서 자꾸만 헛웃음이 나왔고 친구들은 이렇게 취한 모습은 처음 본다며 눈물을 흘려가며 웃었다. 내가 잠든 긴 시간 동안 영화도 한 편 더 보고, 마니또도 뽑았다고. 그런 이야기와 귀신이 무서워 혼자 떨던 시간이 어쩐지 다 거짓말 같았다. 카페에서는 가져온 책을 읽고 각자의 일을 했다. 나는 책을 보다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언니 좋아, 하고 말하는 규원의 다정한 목소리와 골몰하는 현정의 표정을 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픈 감각이 선명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오래오래 이 장면을 기억하고 싶었다.
다시 산장에 돌아왔을 때 아주머니는 아궁이에 불을 붙여주시면서 이걸로 입구를 꼭 막고 자야 해,라고 하셨다. 아주머니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판자 같은 것이 놓여 있었는데, 입구를 막지 않으면 아궁이의 연기가 방 안으로 흘러들어 간다고 했다. 그렇게 중요한 걸 이제 말씀해주시다니. 따져 묻고 싶었지만 아주머니는 이 집이 6.25 전에 지어졌다고 말을 이었고 나는 아, 정말요? 하며 고구마와 감자를 포일로 쌌다. 지난밤 먹다 남은 음식과 새로 장 본 것들을 뜯어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난 뒤에는 다소 피곤해 앉은 채로 떠들며 놀았다. 그때 재진이 방귀를 뀌었다. 이틀간 과하게 먹고 움직이지 않아 우리 모두 배에 가스가 차서 방귀를 마음껏 뀌자고 하긴 했지만 일단 재진이 뀌었으니 우리는 아, 너무해, 하고 말했다. 그러자 재진은 자기는 방귀 냄새도 안 나고 똥 냄새도 안 난다고 했다. 알고 싶지 않으니 제발 그만하라고 했는데도 재진은 멈추지 않고 자신의 똥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다가 요강 이야기가 나왔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너무 춥다며 몸에 이불을 돌돌 말고서, 요강이 필요하다고. 그런데 요강에 얌전히 일을 봤는데 다른 사람이 실수로 쏟으면 그건 누가 치워야 할까? 우리는 깔깔 웃다가 진지해졌다. 그건 너무 끔찍하잖아. 당연히 쏟은 사람이 치워야 하겠지만, 으으, 정말 끔찍해. 아니지, 애초에 싸지 않았으면 요강을 넘어트려도 상관없지 않나? 그렇지만 요강은 똥 싸라고 있는 거 아닌가? 우리는 뭐든 끔찍해, 하며 불을 껐다. 아침에 있을 재진의 토익 시험 때문이었다. 여행 날인지 모르고 신청했다가 취소할 수 없어 강원대에서 보기로 했는데, 그 바람에 우리는 팔자에도 없는 새벽 기상을 해야 했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 압박 때문에 나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고, 친구들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엎어져버린 요강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여섯 시가 되자마자 친구들을 깨웠다. 짐을 싸서 밖으로 나오니 아직 사방이 캄캄했다. 여전히 별이 많았고, 여전히 개가 짖었다.
우리는 서둘러 시동을 걸고 차창에 낀 성에가 걷히길 기다렸다. 아직 잠이 덜 깬 데다 추워서 얼마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 분쯤 지났나. 앞 유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산장을 빠져나왔다. 나는 가만히 창밖을 보다가 별 진짜 많다, 하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규원이 우리가 보고 있는 저 별은 어쩌면 아주 오래전에 죽은 별일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맞아, 하고 맞장구를 치면서도, 그런데 너무 선명한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곧 별과 별 사이로 푸른빛이 돌더니 날이 밝았다. 해가 뜨기도 전에 날이 밝아지는구나. 멀리 해의 정수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잠시 졸음 쉼터에 내려 해돋이를 보았다. 해 뜨는 건 애국가 방송에서나 보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토익 때문에 의도치 않게 마주한 풍경을 얼마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진부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진부한 감정이 일어서 해가 다 뜨고 나서는 조금 웃겼다.
돌아오는 길에는 잠깐 바닷바람도 쐬고, 휴게소에 들러 밥도 먹었다. 휴게소를 기점으로 나는 조수석에서 뒷자리의 현정과 자리를 바꿨다. 뒷자리에 앉아 배낭을 안고 패딩을 덮고서 그제야 조금 졸았다. 그러다가 잠이 든 것도, 깬 것도 아닌 상태로 있잖아, 내 몸에서 노인 냄새가 나, 하고 말했다. 그 말에 모두 나도, 나도,라고 했다. 온몸에서, 모든 물건에서 노인 냄새가 난다고. 집도 오래되면 노인 냄새가 나는 건가. 노인 냄새는 몸에서 나는 게 아니라 시간의 냄새인 건가. 졸음을 쫓기 위해 신맛이 나는 껌을 씹으며 빨리 집에 가서 모든 것을 빨고 샤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울에 도착해서는 제일 먼저 현정이 내렸다. 현정의 집은 창동. 다음은 규원이었다. 규원은 DMC에서 내렸다. 규원은 버스를 타고 일산까지 가야 했다. 마지막은 성산동에 사는 나였다. 성산동 골목에 차가 들어섰을 때 나는 나무 대신 유리문으로 바뀐 예전의 빵꽃잠 자리를 보면서 여기를 지나갈 때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재진은 나도,라고 했다. 재진은 나를 내려주고, 남가좌동으로 떠났다. 그러고 보니 성산동 술방의 대부분은 성산동 사람이 아니구나. 집에 도착해서는 바로 샤워를 했다. 몸을 써서 논 것도 아닌데 지독하게 피곤했고 오랜만에 졸린 기분으로 누웠다. 그렇다고 바로 잠이 오는 것도 아니어서 익숙한 냄새가 나는 이불을 덮고 산장에서의 이박 삼일을 떠올렸다. 문득문득 오래된 산장 냄새가 나는 것 같았지만 정말 나는 건지, 그런 기분이 드는 건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따뜻한 전기장판과 안락한 침대에서 조금 전까지의 시간들이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순간 웅웅-거리던 냉장고 소리가 멈췄다. 갑작스러운 정적 때문에 오히려 누가 찾아온 것만 같았다. 나는 이불 속에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귀신을 상상하던 새벽을 떠올렸다. 어쩌면 정말 누군가가 영화가 끊기도록 장난친 것은 아닌지. 거기 정말 우리 말고 다른 누가 있던 것은 아닌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면서 이제는 사라진 나무집을 생각했다. 빵꽃잠을 나무집이라고 불렀던 사람들과 언제까지 다정할 수 있을까. 소멸한 별처럼 사라진 자리를 알아차리지 못할까 봐 나는 언제나처럼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글: 이진선
그림: 한인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