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우리 둘 다 회사에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이른 아침 분주한 출근길과 일에 파묻혀 정신없이 흘려보내는 하루를. 피곤에 절어 돌아오는 퇴근길과, 수다를 떨며 맥주 마시는 저녁을. 그리고 그 곁에서 안주를 나눠달라고 쉴 새 없이 짖어대는 복이를.
그러나 복이의 사고 후 우리는 따로 살게 되었다. 나의 입사와 동생의 이직 때문이었지만, 사실 함께 돌봐야 할 대상이 사라졌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그렇게 동생은 새 집을 구해 나가고 나는 살던 집에 남았다. 갑자기 비어버린 집이 너무 차갑게 느껴졌던 나는 한 달에 걸쳐 구조를 바꾸었다. 블라인드를 떼고 천으로 된 커튼을 달았다. 기다란 2인용 책상을 버리고 접이식 책상을 샀다. 아담한 소파와 전자피아노도 샀다. 촛불을 자주 켜고 등을 모두 주황색으로 바꾸었다. 나중에 바뀐 집을 본 동생은 “그동안 혼자 살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대?”하고 놀려댔다.
한편 예정대로 입사한 회사에는 빠르게 적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나치게 의욕적이었다. 매일 자발적으로 야근을 하고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주말까지 할애해서 공부했다. 신입치고 늦은 나이어서 폐를 끼치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였다. 아무리 구조를 바꾸고 따뜻해 보이도록 꾸며도 전처럼 집에 마음을 붙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퇴근길에는 늘 소주 한 병을 사 엄마가 보내준 반찬을 안주 삼아 마셨다. 그러면 술기운을 빌려 잠들 수 있었다. 이따금 감정이 수렁으로 빠질 것 같은 날에는 새벽부터 출근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회사는 야망 있고 성실하다고 생각했다. 점점 많은 일에 투입되면서 어색했던 동료들과도 소소한 일상을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중 가장 자주 올랐던 화제는 각자의 개 이야기였다. 동료들의 개 자랑을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나도 복이를 자랑하게 됐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굳이 사고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묻는 것에만 충실히 대답했다. 왜 복이에요? 복 받으라고요. 제일 좋아하는 간식은 뭐예요? 고구마랑 당근이랑… 하는 식으로. 사람들은 당연히 복이가 살아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가 자주 하는 착각이기도 해서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1년이 흘러갔다. 2년 차부터는 대부분 업무를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업무강도도 빠르게 높아졌다. 동료들이 줄줄이 퇴사했지만 2년짜리 국가지원사업에 신청한 나는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안 그래도 늦던 퇴근은 더 늦어졌고, 아예 퇴근하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지친 몸으로 돌아오면 신발장 입구에 그대로 쓰러졌다. 현관 자동센서 등이 꺼진 뒤에도 한참 동안 바닥에 엎드린 채로 웅웅- 울리는 냉장고 소리를 들었다. 몸 곳곳에 염증이 생겼고 아무리 숨을 토해내도 가슴속이 갑갑했다. 종일 죽는 상상을 하면서 다른 이야기에는 무감각해졌다. 심지어 가까운 이의 부고 소식에도 슬픔을 느끼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주말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복이 옷을 하나 챙겨달라고 했다. 복이가 나하고만 잤기 때문에 동생은 복이 대신 안고 잘 강아지 인형을 샀었는데, 그 인형에 복이 옷을 입혀주고 싶다고.
그날 밤, 퇴근하자마자 복이 옷을 모아둔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서 복이 냄새가 쏟아졌다. 언젠가 동생이 복이 옷은 아무리 빨아도 꼬랑내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그 곁에서 왜? 꼬랑내가 안 나면 너무 서운할 것 같은데, 하고 말하자 동생이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복이 옷을 모두 빨아 말렸는데도 서랍만 열면 꼬랑내가 난다고. 보통 꼬랑내가 아니라고. 그러니 복이 옷장을 열면 언제든 맡을 수 있다고. 그런 밤이 있었다. 냄새나, 하고 복이를 놀리며 깔깔 웃던 밤. 영원이라는 말에 의심 없이 행복하던 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서랍을 닫았다. 냄새가 다 날아가 버릴까 무서워서였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급기야 나는 소리 내어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무리 억울하고 막막해도, 열나는 몸으로 혼자 일해도 울 수 없는 날들이었는데. 얼마 후 찾아온 동생이 내 등을 쓸어주었다. 그리고 덩달아 울었다. 챙겨둔 복이 옷을 건네자 동생은 한참 동안 얼굴을 파묻고 말했다.
“이것 봐 내가 복이 냄새 절대 안 사라진다고 했잖아.”
피식 웃음이 났다.
그 뒤로도 회사 생활은 점점 힘들어지기만 했다. 의견 차이로 사수와 틀어졌고, 인력이 계속 줄어듦에 따라 담당업무는 계속 늘어났다. 매일 한계를 시험하면서 다 내려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 날이면 집에 돌아오자마자 복이 서랍을 열었다. 켜켜이 쌓인 복이 옷에서 복이 냄새가 피어올랐다. 그중 하나를 꺼내 코를 박고 깊게 숨을 쉬면, 들이마신 숨이 몸 구석구석을 돌면서 고생했다고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잘하고 있다고. 조금만 더 견디면 된다고. 그 힘으로 나는 첫 직장에서 무사히 2년을 채울 수 있었다. 힘든 날엔 울기도 하면서, 울면서도 할 말은 하면서. 반려된 사직서를 다시 제출할 때에는 절로 춤이 나왔다. 그때 나는 어느 때보다 강해진 기분이었다. 이렇게 어려운 일도 해냈으니까. 이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것도 엄청 잘 해낼 수 있다고.
마지막 날, 회사를 나설 땐 알 수 없이 눈물이 났다.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무슨 까닭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울 수 있어서, 가슴속에 쌓기만 했던 것들을 토해낼 수 있어서 남은 시간까지 잘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안다.
요즘에도 나는 가끔씩 복이 서랍을 열어본다. 사무치는 마음으로 열어볼 때도 있고, 설레는 마음으로 열어볼 때도 있다. 그러나 매번 오래 맡지는 못한다. 아껴 맡아야 하니까. 언제나 부족한 상태로 복이 옷을 개어 넣는다. 꼬랑내만으로 부족할 때에는 복이가 쓰던 샴푸로 화장실 청소를 한다. 복이가 씻은 날부터 며칠만 맡을 수 있던―동생이 예쁜 냄새라고 부르던―익숙한 향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욕실 가득 샴푸향이 나면 곧 꼬랑내가 피어오를 것 같으니까.
복이의 꼬랑내를 향수로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사방에 뿌려 마음껏 맡을 수 있을 텐데. 보고 싶을 때마다 함께 있는 기분일 텐데. 서랍을 닫을 때마다 생각한다. 강아지 꼬랑내 향수를 개발하면 분명히 대박 날 거라고. 향수에는 각자의 강아지 이름을 붙여주면 좋겠다고.
글: 이진선
그림: 한인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