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11 디지털 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시즌 1 디지털기술과 뮤지엄

디지털 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디지털 유형 문화(e-tangible)”를 통한 뮤지엄의 확장

 전통적으로 뮤지엄은 수집, 보존, 연구, 전시 등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정의되었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박물관의 핵심 개념에 ‘수집의 디지털 측면’을 추가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뮤지엄은 유무형의 문화유산뿐 아니라 디지털 문화유산까지도 다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이미지에 ‘디지털’이라는 접두어가 있는지도 잊어버릴 정도로 현대인들에게 디지털은 이미지를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디지털 이미지는 많고, 편재되어 있기 때문에 관람객의 기억과 뮤지엄 경험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디지털 이미지의 복제에 관한 다양한 관점

 카메라의 등장으로 우리는 원본을 똑같이 복제할 수 있게 되었죠. 이어서 컴퓨터의 등장으로 복제된 이미지를 편집하고 저장할 수 있게 되었고, 인터넷을 통해 빠르고 쉽게 복제된 디지털 이미지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디지털 이미지의 등장 이전부터,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진의 등장부터 사람들은 원본과 복제에 대한 다양한 학설을 제기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936)은 사진기술과 영상기술이 발달하면서 원작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aura)’는 훼손되며, 아우라의 붕괴는 오히려 예술을 발달시킨다고 보았습니다. 하워드 베서(Howard Besser, 1987)는 원작에 대한 복제가 쉬워지고 복제품의 활용이 활발해짐에 따라 복제품은 원본의 일시적인 대체물이 아니라 영구적인 대체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바바라 사베도프(Babara Savedoff, 1993)는 벤야민과는 달리 복제품이 원본의 고유한 가치를 훼손하지는 않지만, 관람객이 원본의 고유한 가치를 인식하는 걸 어렵게 한다고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올리바 프로스트(Oliva Frost, 2002)는 관람객이 뮤지엄에 소장된 원본보다 디지털 이미지에 더 익숙해질 경우, 디지털 이미지를 원본의 복제품이 아닌 고유의 가치를 가진 하나의 작품으로 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복제에 대한 여러 학자의 다양한 관점을 간단하게 살펴보았는데요, 그렇다면 우리는 복제품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원본과 복제품 사이의 복잡한 관계

 1️⃣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최후의 만찬> ©The Bridgeman Art Library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은 원작과 복제품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에요. <최후의 만찬>은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Santa Maria delle Grazie)의 식당 벽화로 1495년 제작에 착수하여, 1498년에 완성되었어요. 미완의 작품을 많이 남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몇 안 되는 완성작이면서 가장 손상이 심한 그림으로도 알려져 있어요. 레오나르도는 당시 젖은 벽에 안료를 칠하는 프레스코 기법을 사용하지 않고 마른 벽에 직접 템페라 물감과 유화 물감을 칠하는 기법을 사용했어요. 그 때문에 그림이 완성된 직후에도 작품의 상태가 좋지 못했다고 해요.

 원본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인지 <최후의 만찬>은 계속해서 복제되었어요. 레오나르도의 제자인 마르코 도지오노(Marco d'Oggiono)도 끊임없이 <최후의 만찬>을 모사했다고 해요. 이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최후의 만찬>을 복제했어요. 오늘날 우리가 어렵게 전화 예약을 해서 보는 밀라노의 <최후의 만찬>도 사실 다 빈치의 원작이라기보다 지암피에트리노(Giampietrino)가 다 빈치의 원작을 모사한 작품을 모델로 복원한 일종의 복제품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어요. 이 때문에, 미술사학자 레오 스타인버그(Leo Steinberg)는 <최후의 만찬> 덕분에 서양미술에서 모사와 판화가 발전했다고 봤어요.

 일반적으로 원작을 직접 보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복제품을 보는 건 상대적으로 쉽죠. 학자들은 접근성이 좋다는 복제품의 장점이 의외로 원작의 가치를 더 높인다고 봤어요. 일종의 백업처럼 복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원본이 보존된다고 보았기 때문이에요.

 <최후의 만찬>을 통해 복제품의 장점을 알아보았는데, 복제품에는 장점만 있을까요?


 2️⃣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

노랗게 변한 <우유 따르는 여인> 신드롬 ©Romaine – Wikimedia Commons

 최근 뮤지엄을 직접 방문하기 전에 포털사이트를 통해 작품을 미리 보는 경우가 많아졌는데요, 여러분은 화면을 통해 본 작품과 실제 뮤지엄에서 본 작품이 달라서 당황했던 경험 있으신가요? 복제된 디지털 이미지와 원본이 달라서 관람객들이 뮤지엄에 항의까지 한 경우가 네덜란드에서 있었는데요, 바로 ‘The Yellow Milkmaid Syndrome(노랗게 변한 <우유 따르는 여인> 신드롬)’으로 불린 사건입니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이 소장한 <우유 따르는 여인(The Milkmaid)>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의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 하나로, 전 세계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을 보기 위해서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을 방문하고 있어요. 이 작품과 관련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 일어났는데요, 온라인상에 널리 퍼진, 누렇게 색이 왜곡된 저화질 디지털 이미지를 접한 사람들이 뮤지엄에 소장된 원작을 가짜라고 생각하고 뮤지엄에 항의를 한 거예요.

 사실 <우유 따르는 여인>뿐 아니라 다양한 작품의 왜곡된 디지털 이미지가 여기저기 산재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해요. 전문가들은 왜곡된 이미지를 품질이 떨어지는 복제품이라고 인식하지만, 일반 대중은 그 복제품이 진짜라고 믿을 수 있어요. 이렇게 복제된 디지털 이미지는 작품에 대한 첫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됩니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따르면, 온라인상에 떠도는 베르메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의 왜곡된 디지털 이미지는 10,000개가 넘는다고 해요. 이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은 관람객들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고해상도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어요.


3️⃣ 파올로 베로네세의 <카나의 혼례>

산 조르지오 마조레 성당에 설치된 <카나의 혼례>의 복제품 ©Factum Arte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작은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인데요, 그렇다면 가장 큰 그림은 무엇일까요? 바로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가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성당인 산 조르지오 마조레 성당(San Giorgio Maggiore)의 식당을 장식하기 위해 그린 <카나의 혼례(The Wedding at Cana)>라는 작품이에요. 이 작품은 1797년 나폴레옹이 베네치아공화국을 정벌하고 전리품의 하나로 프랑스로 가져갔는데요, 그림이 너무 커서 반으로 잘라서 옮겼다고 해요.

 오랜 시간이 지난 2006년, 폰타치오네 조지오 치니(Fondazione Giorgio cini) 미술관은 고품질 복제품 제작 전문 회사인 Factum Arte에 원작이 있던 식당에 전시할 복제품 제작을 의뢰합니다. 비접촉식 컬러 스캐닝 시스템을 통해 제작된 복제품은 조명이나 공간의 영향을 받아 루브르가 소장한 원본보다 더 원본 같아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디지털로 복제된 <카나의 혼례>의 경우, 그야말로 ‘완벽한’ 사본(The ‘perfect’ copy)이 된 거죠. 이를 통해 마르티나 드루가이치크(Martina Dlugaiczyk)는 원본과 관련된 기억이 재현되는 순간, 원작의 아우라가 복제품으로 이동한다고 보았어요. 기계적인 재생산이라도 원작과 복제품의 생산과정에 큰 차이가 없으면, 원작의 예술적 아우라를 복제품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죠.


 4️⃣ 인공지능 화가의 <넥스트 렘브란트>

<넥스트 렘브란트> ©ING, Microsoft

 복제품은 원작을 똑같이 본떠 만든 것을 말하는데요, 2016년 완전히 “새로운 복제품”이 등장했어요.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와 렘브란트 미술관, 델프트 공과대학 등 여러 기관이 모여 인공지능과 연계된 모든 첨단 기술을 동원해 제작한 <넥스트 렘브란트(The Next Rembrandt)>입니다.

 <넥스트 렘브란트>의 제작을 위해 연구진은 렘브란트의 346개 작품에서 빅데이터를 추출했어요. 인공지능은 이 데이터를 학습해서 새로운 작품을 창조했습니다. 30에서 40대 사이의, 흰색 카라와 모자를 쓰고 검은 옷을 입은, 백인 남자의 초상은 유화의 질감까지 똑같이 재현했어요. 한눈에 보더라도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렘브란트의 작품 같은 이 “복제품”은 1669년 사망한 렘브란트의 미공개 작품도 아니고, 솜씨 좋은 전문가의 위작도 아닌 인공지능 화가의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이에요. 다시 말해, 원본이 없는 복제품인 거죠.


“새로운 복제품”은 예술이 될 수 있을까?

 AI 딥러닝 알고리즘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인공지능은 더 자연스럽게 예술가의 특정한 화풍을 띈 “새로운 복제품”을 제작할 수 있게 될 텐데, 우리는 이 작품을 예술로 볼 수 있을까요?

<에드먼드 드 벨라미의 초상> ©obvious

2018년 10월 크리스티 뉴욕은 프랑스의 오비어스(Obvious)에서 개발한 AI가 그린 에드먼드 드 벨라미(Edmond de Belamy)의 초상을 경매에 부쳤어요. 이 초상화를 제작하기 위해 AI는 14~20세기에 제작된 초상화 1만 5,000점의 정보를 학습했어요. 작가의 이름은 ��� � ��� � �� [��� � (�))] + �� [���(� − �(�(�)))] 인데요, 이는 창조성이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의미해요. 단순히 사람의 명령으로 기계가 작품을 제작한 게 아니라, AI가 스스로 작품을 만들었다는 거죠. 이 작품은 익명의 소장가에게 43만 2,500달러(한화 5억 1,000만 원)에 낙찰되었어요.

 독일의 튀빙겐 대학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DeepArt.io는 클릭 몇 번만으로 유명한 예술가의 스타일로 그림을 만들어 공유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해요. 사진을 올리고 원하는 템플릿을 클릭하면 원하는 화풍의 “새로운 복제품”이 만들어지는 거죠. 이렇게 만들어진 복제품은 출력물의 형태나 파일의 형태로 주문할 수 있어요.

 “새로운 복제품”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어요.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이렇게 제작된 작품이 뮤지엄에 걸릴 수 있을지 아직은 단언할 수 없지만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기술이 예술과 대중 사이의 관계를 큰 변화를 불러왔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앞으로 뮤지엄은 어떻게 해야 해?️‍

 사실 뮤지엄에서는 이전부터 복제품을 활용하고 있어요. 소장 유물의 상태가 좋지 않거나 이동이 상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 동시에 여러 뮤지엄에서 유물을 전시해야 할 경우에는 원작은 수장고에 보관하고 복제품을 제작해 전시하기도 해요. 최근에는 교육 프로그램, 체험형 전시의 일환으로 유물의 복제품을 제작해 관람객이 직접 복제된 유물을 만져볼 수 있게 하기도 해요. 또, 최근 사고싶어도 살 수 없는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반가사유상 미니어처처럼 뮤지엄은 복제품을 제작해 판매하기도 합니다.

 21세기 현재, 예술 작품의 디지털 복제 더 나아가 디지털 재현의 시대가 도래했어요. 우리는 좋든 싫든 원작과 디지털로 만들어진 “복제품”의 관계를 재평가해야 해요. 디지털 및 3D 기술을 통한 복제는 사진이나 인쇄를 통한 복제보다 접근성이 좋아 뮤지엄에 더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여요. 최근, 디지털아트 혹은 미디어아트의 제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NFT(Non-Fungible Tokens, 대체 불가능한 토큰)를 발행한 디지털아트는 높은 가격으로 거래가 되고 있어요. 심지어 간송미술재단은 지난 7월 국보 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NFT로 발행해 판매하기도 했어요. 이렇게 디지털 대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날, 뮤지엄은 디지털로 만들어진 “완벽한 복제품”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요?






REFERENCES

・이현남(2020). 인공지능을 활용한 창작 프로젝트 <넥스트 렘브란트>연구, 유럽문화예술학논집, 11(1), 19-41.

・Werner Schweibenz(2018). 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Digital Reproduction. Museum International, 70(1-2), 8-21.

・DeepArt.io 홈페이지 https://deepart.io/

・Factum Arte 홈페이지 https://www.factum-arte.com/

・Yellow Milkmaid Syndrome 텀블러 https://yellowmilkmaidsyndrome.tumblr.com/





Copyright©MONDAYMUSEUM. ALL Rights Reserved







작가의 이전글 #10 뮤지엄 속 디지털, 현재와 과거를 잇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