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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뮤지엄 속 디지털, 현재와 과거를 잇다

시즌 1 디지털기술과 뮤지엄

뮤지엄 속 디지털, 현재와 과거를 잇다


 디지털은 뮤지엄의 모습을 크게 바꾸어 가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 덕분에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작품을 만나고 더욱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뿐만 아니에요. 디지털이 만드는 변화는 뮤지엄을 넘어 도시 전체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답니다. 다시 말해, 디지털은 뮤지엄의 미션을 사회 전반으로 확장하는 촉진제 역할을 해요. 오늘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미션을 달성하고 도시의 새로운 정체성을 끌어낸 일본의 한 뮤지엄을 소개해볼게요!

*미션(Mission)이란 뮤지엄의 존재 이유와 목적, 즉 기관의 사명을 의미해요. 미션은 전시, 교육, 연구 등 모든 행위의 기준으로 작용하죠. 뮤지엄이 나아가야 할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어요.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리뉴얼 프로젝트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전경 ©Hiroshima Peace Memorial Museum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를 계기로 만들어진 뮤지엄이에요. 기념관이 위치한 지역은 당시 히로시마의 정치적, 상업적 중심지였기 때문에 조종사의 표적으로 선정되었다고 해요. 폭탄 투하 10년 후인 1955년, 이 지역을 재개발이 아닌 평화기념시설로 조성하게 되었답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은 그렇게 ‘전 세계적 핵무기 추방 촉진’이라는 미션을 갖고 다양한 시도를 해오고 있답니다.

 기념관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여러 번 증축되었는데요, 1994년 두 번째 증축 때, 전시 디자이너들은 아시아-태평양 전쟁 동안 일본의 아시아 침공에 대한 역사적 관점 안에서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를 맥락화했어요. 일각에서는 히로시마와 일본을 ‘무고한 희생자들’로 묘사한 일본적 시각 이외의 다른 시각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 전시의 서술을 비판하였죠. 평화기념관의 미션은 어느 한 정부를 비난하거나 이익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며, 국적과 관계없이 인간에게 큰 고통을 야기하는 핵무기의 파괴력을 전달하는 데 있기 때문이에요.

 21세기 들어 노후화된 건물을 다시 보수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는데요, 이때 뮤지엄 관리자들은 전쟁의 경험과 진정한 공포를 소위 ‘비전쟁 세대’에게 전달할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시기 일본 인구의 3/4은 전쟁 관련 경험이 없었거든요. 그럼 평화기념관의 리뉴얼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자세히 알아볼까요?!


1945년 8월 6일, 그날로 돌아가는 방법

 원자폭탄의 파괴력을 강조하기 위해 전반적인 관람객 동선을 재설계하였으며, 전시관 도입부에서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하얀 파노라마’라는 공간을 선보였답니다. 이에 관람객의 동선은 3층 동관으로 입장 후, 도입부 전시공간을 지나 뮤지엄의 중심인 본관의 통로로 이어집니다. 전시 도입부에서는 폭발지점이라는 특수한 ‘장소성’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느낄 수 있게 하여 관람객들이 원자폭탄 투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유도하였죠. 또, 폭탄이 투하되던 날 일어난 구체적인 사건, 즉 도시경관의 총체적 파괴를 디지털로 구현하고자 했어요. 그럼 하나씩 살펴보도록 해요!


✏ 동선의 재설계

 본격적인 리뉴얼 프로젝트에 들어가기에 앞서, 관람객들의 관람 시간을 조사했어요. 조사 결과, 평균 관람 시간은 45분(동관 27분, 본관 19분)가량으로 희생자들의 사진이나 개인물품 등이 전시된 본관에서 충분한 관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죠. 이에 리뉴얼 프로젝트 기획위원회는 관람객이 공간이 지닌 ‘장소성’을 더욱 깊게 느끼고 전시품을 의미 있게 살펴볼 수 있도록 관람객 동선을 재설계하기로 결정했어요.

재설계된 동관 3층 전시공간 ©Hiroshima Peace Memorial Museum

 수정된 동선에서는 1층이 아닌 3층에서 전시 관람이 시작됩니다! 3층에 위치한 전시 도입부는 관람객들이 본관 전시장으로 넘어가기 전, 심리적 준비를 돕는 역할을 했어요. 이곳에서의 관람 시간은 5분 정도로 제한하였으며, 원자폭탄은 인류에 대한 잔혹한 무기라는 점을 사진과 입체모형(디오라마), 영화 등을 통해 보여주었어요. 다양한 시각적 이미지를 활용하며 그 안에서 관람객에 스스로 판단할 여지를 남긴 것이죠.

© Julie Higashi, with permission of the Hiroshima Peace Memorial Museum

 또, 리뉴얼 프로젝트에서는 폭격 전 시민들의 삶의 방식부터 폭탄 투하 순간의 변화와 그 여파까지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연대기적 접근을 시도했어요. 전시장에 들어선 관람객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 평화로운 히로시마 시가지와 시민들의 일상입니다. 관람객들은 25m 길이의 통로를 지나며 전시된 일상적 사진을 통해 지금 기념관이 있는 이곳이 한때 히로시마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역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시끌벅적한 거리의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1945년 8월 6일에 멈춰있는 시계 이미지가 새겨진 벽 끝 검은 입구를 지날 때까지 이어져요. 그러나 이 검은 입구 너머엔 침묵만이 자리하고 있어요.


✏ 화이트 파노라마

 도시 전체가 파괴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몇 초. 그 순간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하얀 파노라마(White Panorama)라는 디지털 장치가 동관에 설치되었어요. 프로젝션 맵핑과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하며 원자폭탄 투하 전후 히로시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치인데요, 관람객에게 뮤지엄의 미션을 전하는 동시에 ‘파괴된 것은 건물뿐 아니라 인간의 삶’임을 느낄 수 있게 했어요.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하얀 파노라마에서는 히로시마의 모습을 폭격기의 관점에서 담았죠.

 사실 이 방법에 대해서는 당시 많은 논란이 있었어요. 관련 시위까지 있을 정도였죠. 논지는 ‘누구의 관점에서 어떠한 시각적 이미지를 보여줄 것인가?’였어요. ‘1945년 8월 6일 일어난 이 사건에 대한 조감도적인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기에 미군의 관점에서 보여주자!’라는 의견과 ‘지상에 위치한 사람만 볼 수 있던 많은 것이 있기에 이를 더욱 탐구해야 하므로 표적이 된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여주자!’라는 의견이 있었죠. 결국, 폭탄 투하 전후 도시의 거시적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관람객의 더 큰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의견이 모여 위 사진과 같은 파노라마가 제작되었어요. 지름 5m의 하얀 파노라마를 통해 관람객은 도시의 풍경을 360도로 볼 수 있어요. 동시에, 34m 길이로 둘러싼 벽에서는 6개의 프로젝터가 90초짜리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재생하며 어떻게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의 일상을 파괴하였는지 그 과정을 함께 보여주고 있죠.

화이트 파노라마(원자폭탄 투하 전-투하 직전-투하 후) 사진을 클릭하면 영상을 볼 수 있어요 © Julie Higashi, with permission of the Hiro

 한편, 전시공간 디자인을 담당했던 Toshitake Tanaka는 프로젝션 맵핑의 사용이 단순히 유행이어서가 아니라 순식간에 파괴된 도시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라 밝혔어요. 눈에 띄는 최신 기술이어서가 아니라 정보전달을 위한 최적의 표현 방법이었기에 활용했다는 것이죠! 이렇게 디지털 기술은 말할 수 없는 경험을 재현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역할 했어요. 서로 다른 미디어 자원을 결합한 새로운 정보를 창조해낼 수 있기 때문이에요. Staley라는 학자는 그동안 문헌을 중심으로 연구해온 역사가들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과거를 시뮬레이션하고 시각화한다면 우리는 다차원적으로, 그리고 이전에 없던 방식으로 새롭게 사건을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해요. 히로시마의 과거사를 새롭게 재창조해낸 이미지가 실제적이고 일상적인 장소로서 도시 자체에 대한 우리의 감각적 인식을 높이며 도덕적 상상력을 촉진한 것처럼요!


세대를 넘어, 국가를 넘어

 원자폭탄 버섯구름, 히로시마 공중조망 등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속 다양한 시각적 이미지들은 더 이상 폭격피해자와 같은 당사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사건을 직접 경험한 전쟁 세대가 줄어들면서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은 역사적 사실을 새로운 맥락으로 만들어 낼 필요를 마주하게 되었어요. 1960년 이후 태어난 ‘비 전쟁 세대’는 전쟁에 대한 직접적 지식이 없는 세대예요. 이들은 주로 교과서와 영화, 만화 등 미디어를 통해 전쟁을 접하고 배웠죠. 이러한 비전쟁 세대의 공감을 끌어내고 더 넓은 의미에서의 평화를 말하기 위해선 조금 더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관점이 필요해요. 그렇게 히로시마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계속해서 진화하는 관점에 따라 만들어지고 있어요.

‘히로시마 회복의 여정’ 슬라이드쇼 © Julie Higashi, with permission of the Hiroshima Peace Memorial Museum

 그렇다면 뮤지엄은 어떠한 사실을 어떠한 맥락에서 어떻게 보여주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많은 뮤지엄들이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죠. 그러나 지금의 정답이 내일은 오답일 수도 있어요. 현재의 시각에서는 적절해 보였음에도 이후의 시선에서는 불필요하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뮤지엄은 지속해서 변화를 추구하고 새로운 시각을 갖고자 노력해야 해요.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이 두 번째 리뉴얼 당시 비판받았던 일본 중심의 전시 서술에서 탈피하여 전 세계인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관점의 리뉴얼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처럼요.

 디지털로 재창조되고 재파괴된 도시경관은 현재를 살아온 각 개인의 관점에서 과거의 사건을 새롭게 재구성하고 재인식할 기회를 선사했어요. 그렇게 비 전쟁 세대 개인에게 장소감을 강화시켜 경험하지 못한 사건에 대한 역사적 공감을 불러일으켰죠. 이렇듯 적절한 디지털 기술의 활용은 관람객의 시야를 넓히고 그 지역의 생활, 주민, 정체성 등 도시의 장소성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며 ‘전 세계적 핵무기 추방 촉진’이라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의 미션 달성에 기여했어요.


오늘의 눈으로 바라보기

 이렇게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의 리뉴얼 프로젝트, 특히 동관 전시 도입부의 뚜렷한 설계 변화를 통해 디지털 기술이 뮤지엄의 미션 달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았어요. 적절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전쟁의 아픔이 깃든 ‘히로시마’라는 도시에 대한 관념을 새롭게 재창조하고 관람객의 역사적 공감을 끌어내었죠. 특히 역사를 현재로부터 바라보며 새로운 도시 경관을 만들어 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리뉴얼된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동관이 말하고 있는 것은 결국 과거도 한때는 현재였다는 점이에요. 기념관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배포하는 학습지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있답니다. “히로시마에 대해 아는 것은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천안함기념관, 세월호추모관 등 과거 사건을 기리는 공간에 대한 제안이 나올 때마다 이를 어떠한 맥락에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그 방법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는데요,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이 현재로부터 어떻게 역사에 접근하였는지 그 과정과 고민 속에서 우리가 참고할 부분이 많을 것 같아요.





REFERENCES

・Higashi, J. (2018). The Destruction and Creation of a Cityscape in the Digital Age: Hiroshima Peace Memorial Museum. Museum International, 70(1-2), 104-113.

・Staley, D. J. (2013). Computers, Visualization, and History: How New Technology Will Transform Our Understanding of the Past. 2nd edition. Abington: Routledge.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홈페이지 https://hpmmuseum.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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