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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Aug 03. 2023

보스턴 - 묘지 사이를 거닐다

보스턴 여행

나는 부산에서 자라 서울에서 살다가 상해에서 그리고 또 서울에서 살았던 도시여자였다.

그렇다. 과거형이다.

어쩌다 인구 36만의 지방 소도시 원주에 살게 됐다. 

처음에는 원주가 너무 답답하고 도시가 그리웠다. 

하지만 이제는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흠칫 놀란다. 

일단 사람이 너무 많고, 사람이 많은 만큼 온갖 새로운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중소 도시에 사는 나는 대중교통을 웬만하면 이용하지 않는다.

차로 15분이면 갈 거리를 온 시내를 뺑뺑 돌며 가기 때문에 50분이 걸리고, 심지어 버스도 자주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15분 만에 갈 거리를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1시간이 걸린다.

중소도시에 사는 사람은 미국처럼 어른 한 명당 차 한 대를 가지고 있어야 생활이 가능하달까.


미국에 와서 제일 먼저 여행한 도시는 뉴욕이었다.

대학생 시절 봤던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도시. 

미국에 와서 뉴욕에 가는 길에 얼마나 두근거리던지.

그런데 현실은 대마초와 담배 냄새, 그리고 노숙자와 관광객 무리였다.

이후에는 도시를 여행할 때 그다지 기대가 없다.

피츠버그도, 라스베이거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아이들과 여행했기 때문에 피로감이 더 컸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도시여행이나, 디즈니월드보다 국립공원에서 하이킹을 하는 게 더 편하다.

그러니 이제 도시 여자는 안녕이다.


그러던 터라 보스턴 여행도 큰 기대가 없었다.

그래서 여름에 어디로 여행 가냐고 묻던 지인에게

"보스턴도 그냥 별로 볼 것 없는 도시 아니겠어요. 그래서 그냥 아카디아에서 돌아올 때 하루 자고 둘러보려고요." 했다.

지인은 보스턴은 정말 볼 게 많다고 하루로 부족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정말 그랬다.


그림책 <아기 오리들에게 길을 비켜주세요>의 보스턴 퍼블릭 공원도 좋았고,

보스턴 티파티를 구연했던 보스턴 비지팅 센터도 새로운 것을 알게 돼서 의미 있었지만(보스턴 티파티가 회의 건물도 있었는데, 나는 정말 홍차 파티를 한 곳인 줄 알았다. 아들이 설명을 해주고야 진짜 티파티를 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영국이 홍차에 세금을 지나치게 매겨 항의의 의미로 홍차 무역 선박을 습격해서 바다에 버린 홍차가 바닷물에 우러나면서 바다가 홍차처럼 검붉어졌다나. 그래서 '보스턴 티파티'라고 부른다고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골목마다 있었던 묘지다.


보스턴은 역사가 오랜 도시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오천 년의 역사는 아니지만 청교도가 이민 왔을 때부터 독립전쟁을 거쳐 지금까지의 역사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 역사만큼일까. 

보스턴 다운타운에는 묘지가 많았다.

한 블록에서 묘지를 지나가면 다음 블록에 또 묘지가 있는 식으로.

보스턴에는 어쩌면 죽은 사람이 산 사람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죽은 사람은 하버드 대학의 잔디도 MIT공대도, 식당도 공원도 필요 없으니까.


비석마다 해골이 새겨져 있었다.

날개 달린 해골, 그냥 해골, 천사 옷을 입은 해골.

비석에 새겨진 해골들을 구경하는데 고등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역사 캠프에 참석한 아이들 같았다.

열심히 설명하는 선생님 앞에는 학생 서너 명만 서 있었다. 

나머지 열댓 명은 회색 비석 사이를 뛰며 장난을 쳤다.

'이런 지루한 역사 캠프 따위!' 하는 듯 장난치는 모습이 영락없는 허세가 뚝뚝 묻어나는 십 대 아이들이었다.


해골이 새겨진 비석 사이로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해를 맞으며 장난치고 노는 아이들. 

그리고 우리 같은 관광객들.

이 묘지에 사람들이 돌아가 텅 빈 밤이 됐을 때의 정적을 상상하기 힘들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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