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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Aug 14. 2023

햄버거만으로도 괜찮은 하루

그랜드 태턴

이렇게 ‘여긴 미국이다.’하는 식당이 있다니.

식당 이름은 심지어 ‘양키 두들즈 카페’.


아이들 여름 방학의 마지막은 여행으로 마무리하게 됐다.

거의 3달.

아이들과 내내 붙어 지내다 보니 여행 전주에는 살짝 정신줄을 놓을 만큼 지쳤다.

여행 경비로 지출이 커서 써머캠프도 보내지 않았다.

나중에 큰 아이는 “가족이 아닌 사람 좀 만나고 싶어.”라고 말할 정도였다.


지난 겨울 크리스마스 연휴로 서부여행을 다녀온 직후 우리 가족은 여름 여행을 계획했다.

처음에는 10일 동안 그랜드 테턴, 옐로스톤, 글래시어 국립공원 세 곳을 갈 예정이었다.

그리고 9월 중순쯤 남편은 휴가를 내고 아이들은 학교를 쉬고 유타주의 자이언캐니언과 아치스캐니언을 가야지 생각했다. 겨울에 12일동안 여행했는데 사흘쯤 지나자 날짜 감각이 사라졌고 여행 8일이 지나면서부터는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어서 여행은 열흘이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옐로스톤이나 자이언캐니언이나 솔크레이트 시티에서 가는 것이 제일 편하고 비행편도 저렴했다. 비행기 타는 것을 좋아하는가?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기내에 가지고 갈 수 있는 짐과 가지고 갈 수 없는 짐을 분리해서 짐을 싸야 하고 미국은 심지어 기내 수화물이 아니면 가방 하나당 30불 혹은 40불을 청구하며 공항에는 2시간 일찍 도착해야 하고, 좁은 기내에서 몇 시간을 버텨야 한다. 비행기에서 내려서는 짐을 찾아야 하고 렌터카를 빌리고. 이런 일들이 번거롭기 짝이 없다. "그럼 18일동안 싹 다가는거야! 비행기 값도 절약되고 좋지않겠어?" 이렇게 이번 여름 방학의 끝을 18일 간의 긴 여행으로 채우게 됐다. 네 가족 비행기와 호텔은 7000달러가 조금 넘는 정도. 미국에 오니 돈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이렇게 겨울부터 예약해 뒀던 솔크레이트 시티행 비행기를 탔다. 12일 저녁 5시 비행기였다.  

펜실베니아와 유타주는 시차가 2시간있다. 우리는 밤 9시 반에 비행기에서 내렸다. 공항에서 10분 거리 호텔에 들어가 잠만 자고 일어났으니 솔크레이크 시티의 첫인상은 공항이 전부였다. 공항은 정말 깨끗했다. 미국에서 이렇게 깨끗한 공항은 처음이랄까.


그래서 13일이 여행 첫날이나 다름없다. 필라델피아 보다 2시간이 느려서 야행성인 남편도 일찍 일어나고 아이들도 일찍 일어났다. 왠지 2시간이 공짜로 생긴 느낌이었다. 우리는 호텔 조식이 붐비기 전에 아침을 먹고 우리의 첫 목적지 그랜드 테턴으로 출발했다. 솔크레이트 시티에서 그랜드 테턴까지는 차로 5시간 거리다. 이번 여행에서는 짐을 최소한으로 가지고 왔다. 우리가 가지고 온 건 고추참치 몇 개, 컵라면 3개, 도시락김 8봉지, 햇반 4개. 그리고 냉장고에서 썩을까봐 넣어온 사과 2알이 전부였다. 그랜드 테턴보다는 대도시인 솔크레이트 시티가 장을 보기 나을 것 같아서 우리는 물과 먹을 거리를 사고 본격적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미국에 와서 신라면을 안 파는 월마트는 본 적 없다. 심지어 월마트 신라면은 h마트처럼 4.9불 정도라 필라델피아에서 봉지라면은 안 챙겨왔다. 그런데 우리가 갔던 월마트에는 한국라면을 전혀 팔지 않았다. 아쉽지만 라면 없이 그랜드 테턴으로 출발했다.


유타주에서 와이오밍주로 다시 아이다호로 넘어갔다가 다시 와이오밍주로 넘나드는 길을 따라 서쪽으로 달렸다.

침엽수가 자라는 산에는 대체로 키가 작은 나무가 자랐다.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에는 소가 무심하게 풀을 뜯고 있었다. 동물을 조심하라는 표지판도 사슴 그림인 필라델피아와는 달이 엘크 그림인 곳이 태반이었다. 역시 여긴 동부와는 다른 동물들이 주로 살고 있구나!



엘크 뿔로 만든 기둥 장식도 곳곳에 있었다. 엘크는 겨울이면 뿔이 떨어지고 봄이면 새 뿔이 난다는데. 그래서 뿔이 흔하디 흔한가 보다.


한시 반, 드디어 식당에 도착했다. 뱃 속은 진작에 꼬르륵 난리가 났다. 구글맵으로 검색했던 식당 이름은 '양키 카페'. 주변에서 이만큼 평점이 높은 곳은 중식당 외에는 없었다. 식당 앞에 도착했더니 지붕 위로 성조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식당 앞에는 왠지 근육질에 꽁지머리를 하고 콧수염을 기른 아저씨가 가죽재킷을 입고 탈 것 같은 오토바이 세 대가 나란히 주차되어 있었다. 식당에 들어갔더니 근육질에 꽁지머리를 하고 가죽재킷을 입은 사람이 없어서 오토바이 주인이 누군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식당에 들어가 주위를 쓱 둘러봐도 가족 손님이 앉아 있는 테이블, 나이 지긋한 여자 몇 명이 앉은 테이블만 있었다. 세 명이 함께 앉은 테이블은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이제 손이 떨릴 만큼 배가 고팠으니 주문부터. 아이들은 키즈메뉴로, 우리는 햄버거를 주문했다.

이런 로컬식당의 햄버거는 대체로 후회가 없다. 쉑쉑버거도 인 앤 아웃버거도 파이브 가이즈도 이름값에 비해 대단히 맛있다는 생각을 하진 못했다. 여행을 하다보면 프랜차이즈가 아닌 이런 숨겨진 햄버거집이 맛집인 경우가 많다. 나랑 남편은 기본 10달러짜리 기본햄버거랑 제일 비싼 15불짜리 양키버거, 두 개를 시켜서 나눠먹기로 했다.

‘알차다.’

햄버거는 패티와 치즈를 얹은 패티와 야채를 얹은 패티 두 개가 따로 나왔다. 내용물이 충실해서 쓰러질까 봐 그런 건지, 아니면 따뜻한 패티랑 치즈 때문에 야채가 눅눅해질까 봐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둘 다이려나?

뜨거운 패티덕에 살포시 흘러내린 치즈도, 양파, 피클, 양상추가 들어간 패티도 따로 먹어도 합쳐서 먹어도 맛있었다.


‘오늘 일정은 이걸로도 알차다.’ 생각했다.

그런데 일찍 일어나서인지 시간이 남는 김에 우리는 식당을 나와 내일 갈까 했던 트레일을 하기로 했다.

이제 그랜드 테턴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정도. 제니 호수에서 하이킹 할 시간이 될 것 같았다. 제니호수에는 트레일 입구까지 태워주는 셔틀보트가 있는데 4인 가족권도 있었다. 4인에 왕복 80불. 호수 옆을 걷고 싶지도 않았지만, 혹시 걸었다 해도 돌아오는 길에 해가 질 것 같았다. 왠만하면 고생을 사서하는 우리 가족도 보트를 타자는 의견에는 만장일치였다.


"혹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 있다면 보트에 버리고 가세요. 특히 스니커즈같은 건 가지고 가지 마세요. 여기는 곰이 있습니다." 보트에서 내리려는데 선장이 말했다. 가방에는 칸쵸가 한 봉지 있었지만 이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내리자마자 후딱 칸초를 먹고 하이킹을 했다. 다행히 곰은 나오지 않았다. 하이킹 코스도 왕복 1시간 정도 걸리는 짧은 길이었다. 나무가 빽빽한 숲에는 해가 들어오지 않아 어둡고 습했다. 트레일을 쑥 들어가면 폭포가 나오는데 8월이라 그런지 시원하게 물줄기가 쏟아졌다. 폭포 아래로 가지 못하게 나무로 막아뒀지만 사람들은 나무를 넘어서 폭포 아래 바위에 가서 사진을 찍고 바위를 염소처럼 뛰어다니고 있었다. 다행히 폭포 아래 물은 얕고 폭이 좁은 냇물이라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그랜드 테턴에서 보내는 첫번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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