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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Aug 16. 2023

보고 싶었던 곰을 막상 보니. - 그랜드 테턴

그랜드 테턴 - 델타트레일

설마 곰을 만나겠어? 했다.

그런데 곰이 그렇게 흔한 동물이었나?

우리가 델타트레일을 오르기 시작한 시간은 2시.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5시에 정상에 도착했다.

하산 시간은 5시 20분.

산속에서 해가 떨어지는 속도는 평지보다 빠르다.

산 너머 나무 사이로 해가 넘어가니 산은 순식간에

표정을 바꿨다.


낮에는 내가 마음 놓고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제는 온 감각이 산에서 벗어나라고 외쳤다.

무릎이 아파도 쉬지 않고 걷는데 트레일 왼쪽 수풀 사이로 검은 동물을 봤다. 풀 속에 고개를 넣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나한테는 관심도 없는지 고개를 흔들며 풀 속에서 뭔가를 찾는 듯이 걷고 있었다.


가슴이 쿵쾅쿵쾅 방망이질 쳤다. 사진을 얼른 찍고 빠른 걸음으로 하지만 발소리를 줄이고 앞서 걷고 있던 아이들에게 갔다.

“엄마 곰 봤어.”

“뭐? 나도.”

“가면 안 되지! 그냥 빨리 벗어나야지!”

“어. 그러네. 무서워.” 하고 다시 산을 내려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엄마 사슴이랑 새끼 사슴이 길 위에 떡하니 서있는 게 아닌가. 둘은 달아나지도 않고 미동도 없이 길 위에서 우리를 빤히 봤다. 그러다 새끼 사슴은 풀 속으로 들어가고 엄마사슴만 남아 우리를 빤히 바라봤다.


‘뒤에는 곰이 있는데’

급한 마음에 한 발 앞으로 내딛자 엄마 사슴은 고개를 치켜들고 한 걸음 다가왔다.

아! 하고 한 걸음 뒤로 갔다. 그리고 다시 한 걸음 뒤로.

그제야 엄마 사슴은 길을 비켰다. 천천히 급할 것 없다는 듯이.

“동물을 계속 보는 건 좋은 신호가 아닌 것 같은데. 정말 빨리 내려가자. “


무릎이 아프든 말든 뛰었다.

아이들도 겁이 나는지 힘들다는 불평조차 없었다.

곰이 나온다고 들었지만 실제로 3미터 거리에서 곰을 볼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해서 곰 스프레이를 사자는 남편을 만류했는데. ‘산을 내려가면 당장 곰스프레이부터 살 테다.’ 마음먹었다.


후다닥 내려가는데 백인 가족 4명이 길에 서서 뭔가를 보고 있는 걸 봤다. 이렇게 사람을 만나는 게 안심이 될 줄이야. 가까이 다 갔더니 아이들에게 저길 보라며 손짓했다.

곰이었다. 엄마 곰이랑 새끼 곰.

이 사람들은 왜 겁도 없이 보고만 있나 했더니 가방에 곰 스프레이를 하나씩 달고 있었다.

곰 스프레이에서 우러난 자신감인가!


곰을 두 번째로 보자 발걸음은 더 빨라졌다.

곰 스프레이가 있는 사람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짧은 다리를 얼마나 빨리 움직였는지 모른다.

그 백인 가족은 평균 키가 180센티는 되는 것 같아 그냥 슬슬 걸어도 우리 가족은 다다다다 걸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트레일 입구였다.

“야호. 살았다.”

시계를 보니 7시. 한 시간 반도 안되서 산을 내려온거다.

‘걸음아 나 살려라.’가 바로 이런거구나.

이렇게 심장이 쫄깃한 산행은 처음이었다.


교훈. 안전에 돈을 아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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